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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홈비디오의 큰손들 바이바이
이영진 2008-11-18

워너홈비디오코리아 철수, 영화 부가시장 급락 가속화

“소니도 없고, 워너도 가고.”

11월10일 워너홈비디오코리아가 국내 VHS 및 DVD 사업을 접겠다고 발표했다. 2006년에 이십세기 폭스, 유니버설, 파라마운트, 2007년 브에나비스타, 2008년 소니픽쳐스에 이어 워너브러더스까지 사업 철수를 결정함에 따라 지난 10년 동안 홈비디오를 움켜쥐고 영화 부가시장의 큰손으로 불렸던 할리우드 직배사들이 썰물처럼 모조리 빠져나간 형국이 됐다. 워너홈비디오코리아의 이현렬 대표는 “소비자의 구매형태는 뛰어난 디지털 인프라를 기반으로 크게 변화했다”고 철수 배경을 설명했다. 홈비디오 사업에서 물러서는 대신 워너홈비디오코리아쪽은 “인력을 보강한 디지털 배급사업부 중심으로 콘텐츠 유통사업을 펼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장점유율 1위 업체였던” 워너홈비디오코리아마저 손을 떼면서 국내 VHS와 DVD 시장은 더욱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영화진흥위원회 김현정 연구원은 “예상했으나 워너홈비디오코리아의 철수 시점이 앞당겨져 당황스럽다”면서 “이번 결정은 한국 홈비디오 산업의 비전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이뤄진 것 같다”고 말했다. “붕괴 판정을 받았던” 영화 부가시장에 또 한 차례 ‘사망선고’가 내려짐에 따라 홈비디오 시장의 회생이 더이상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이준동 부회장은 “할리우드 직배사들의 철수는 한국에서 DVD나 VHS 시장이 더이상 성장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2003년부터 홈비디오 시장 부진 급속화

국내 홈비디오 시장은 2003년을 기점으로 매년 급락(표2 참조)했다. 이에 따라 한국영화의 시장 규모 또한 하향 국면을 면치 못했다(표1 참조). 영화진흥위원회가 올해 7월에 발표한 <미디어 융합시대-영화 부가시장 활로 모색>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VHS 시장 규모는 1/5, DVD 시장 규모는 1/3 수준으로 급격히 축소됐다”며 “1990년대 말 <쉬리>를 시작으로 한 한국영화의 흥행과 멀티플렉스 확산 등으로 불붙기 시작한 한국영화산업의 성장은 극장 매출의 지속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홈비디오 시장의 급감으로 2005년부터 하락세를 걷고 있다”. “전체 수익의 80% 이상을 극장에 의존하는” 기형적인 구조는 더욱 고착되는 추세다.

홈비디오 시장의 퇴조는 “3천개 수준으로 떨어진 대여점 수”뿐 아니라 관객의 소비 성향 변화에서도 확인된다. 2007년 영화소비자 조사(영진위 영상산업정책연구소)는 부가매체별 관람 경험률을 제시했는데, DVD(40.7%)와 비디오(33%)는 무료 파일 공유 및 다운로드 사이트(70.7%)와 유료 다운로드 및 VOD 사이트(34.7%)에 각각 밀려났다. 지난해까지 홈비디오 부문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타진했던 K사의 한 관계자는 “불과 1년 전만 해도 판권료로 2억, 3억원씩 건네주는 영화가 있었는데 올해는 그런 작품을 찾아볼 수가 없다”면서 “관람 편의성을 중요시하는 소비자의 요구를 감안하면 홈비디오 시장 복구는 불가능한 것 같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계속됐던” 대여 중심의 전근대적 유통구조, 불법 다운로드에 따른 연간 2400억원의 피해(저작권 보호센터, 2007년 기준), 뉴미디어들의 경쟁에 따른 홀드백(이를테면 극장 개봉 뒤 부가창구를 통해 콘텐츠를 선보이는 시점 및 순서) 파괴라는 3중고를 넘어, 홈비디오 부문이 소비자들의 요구를 따라잡을 뾰족한 방도를 마련할 수 있을까. 한 프로듀서는 “영화 부가시장의 새로운 강자가 IPTV가 될지, 아니면 VOD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면서 “다만 홈비디오 시장이 10년 전 영화계를 먹여살리던 영광을 되찾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단정했다.

그렇다면 홈비디오 시장이 폐기처분되도록 내버려둘 것인가. 기대할 수 없으나 방관할 수도, 포기해서도 안된다는 견해도 있다. 영진위 김현정 연구원은 “각종 통계들을 볼 때 홀드백에서의 우선권 등을 주장할 만큼 뉴미디어들이 성장하지 못한 상태”라면서 “뉴미디어가 좀더 많은 매출과 수익을 거둘 것이라는 낙관만 갖고서 기존 윈도인 홈비디오 시장을 버릴 순 없다”고 말한다. 영진위가 이른바 RCS(Rental Checking System)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RCS란 VHS 및 DVD 대여점에 단말기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대여 수익을 파악한 뒤 이를 콘텐츠 제공자, 대여점, RCS 운영자가 나누는 방식이다.

차세대 DVD 블루레이 디스크 성공 미지수

RCS 사업은 아트서비스가 올해 4월부터 서울 10개 대여점을 시작으로 현재는 경기지역 10개 대여점으로 확대해 시범 운영 중이다. 아트서비스 강두환 차장은 “홈비디오 출시사들이 대여점에 장당 2만2천원(DVD), 2만7500원(VHS)을 받고 타이틀을 판매하는 방식이었으나 이는 대여점의 급감으로 인해 제작비도 건지지 못하게 됐다”면서 “RCS는 장당 2천, 3천원의 제작비만 받고 대여점에 넘긴 뒤 수익을 분배하는 형태라 대여점은 같은 돈으로 더 많은 편수를 구입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소비자들의 이용만족도 또한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RCS 방식을 도입한 대여점의 경우 “기존 매출보다 30% 이상 높아졌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이 사업의 한계에 대한 지적도 적지 않다. 한 DVD 업계 관계자는 “개별 대여점들이 RCS를 갖춘다고 해서 대여점 매출이 늘까. 리모컨과 마우스를 누르면 원하는 영화를 볼 수 있는데 대여점에 직접 들러 반납하고 대여하는 고객이 얼마나 될까”라고 반문한다. RCS 사업이 “DVD와 VHS를 찾는 소수 관객들을 위한 배려”라는 점에서는 분명 의미가 있고, “현재 홈비디오 대여점의 급감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을지 모르나” 이 사업 또한 시장 활성화를 꾀할 수 있는 해법으로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고화질을 보장하는 차세대 DVD 블루레이 디스크 또한 확실한 구원투수가 될 지는 아직 미지수다.

부가시장의 부활이 한국영화산업의 성작을 위한 절체절명의 과제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영화는 “극장 외에” 수많은 창구들을 갖고 있고, 이를 활용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독특한 상품이다.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극장 이상의 부가시장을 가진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오직 한국만이 극장에서의 성패가 모든 영화의 운명을 결정짓는 기형성을 지녔다. 이는 “홈비디오 시장의 형성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했던” 영화인들의 책임이기도 하다. 할리우드 직배사들의 홈비디오 철수가 부가시장 활성화를 위한 영화계 안팎의 활발한 논의를 촉발하는 기회였으면 한다.

이현렬 워너홈비디오코리아 대표 인터뷰

“아시아에서 추가철수할 것”

이현렬 대표는 1999년 창립 때부터 쉬지 않고 워너홈비디오코리아를 이끌어왔다. 삼성물산, 삼성영상사업단 출신으로 3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워너홈비디오코리아 대표가 됐던 그는 “내가 문 열고 내가 문 닫게 됐다”면서 “이번 결정은 디지털 부문에 전력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홈비디오 사업 철수는 언제부터 논의됐나. =본사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고민을 했다. 처음에는 구조조정안도 있었다. 전략적 기반을 위해서는 의미있는 사업이니까. 하지만 시장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게다가 스튜디오 내부의 사정 또한 여유롭지 않았다. 호황 때 뒤늦게 뛰어들었던 지역들이 불황 때는 맨 먼저 정리된다. 매출 지역이 떨어지는 아시아의 경우 한국 외에 추가 철수 지역이 있을 것이다.

-2006년부터 할리우드 직배사들의 홈비디오 사업 철수가 시작됐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까딱 안 했다. 직원들이 철수 이야기가 없냐고 했는데 그런 걱정 말라고 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동안 시장점유율 수위를 지켜왔다. =그래서 맨 마지막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 아니겠나. 2000년만 하더라도 수익이 200억원 가까이 됐다. 그게 이 시장의 정점이었다. 대여에 의존했던 VHS와 달리 DVD는 셀스루(소장용) 시장을 형성하기 위해 애썼고, 실제 가능성을 눈으로 확인했다. <매트릭스>의 경우 VHS는 10만장, DVD는 30만장을 판매했다. 플레이어 보급률이 90%에 이르던 VHS에 비해 DVD 플레이어 보급률은 10%에 불과하던 때였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 <해리 포터> <프렌즈> 등도 효자였다.

-철수를 결정할 만큼 홈비디오 시장이 줄어든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DVD의 하락 시점은 2004년부터였는데 일단 경기와 상관이 있다. 경제가 어려우면 새로운 제품은 절대 안된다. 칫솔이 편한데 전동칫솔로 바꿀 이유가 없다. 또 출시가격이 너무 높았다. 마지막으로 업체들이 재고 떨이용 프로모션에 매몰됐다. 제값 주고 구매했는데 곧바로 가격이 다운되니 신뢰가 생기겠나. 이 과정에서 헤비 유저들이 떨어져나갔다. 우리야 원칙을 고수하려고 애썼지만.

-홈비디오 시장의 미래를 어떻게 예측하나. =흔히 미국에서 DVD의 등장으로 셀스루 시장이 그 이전보다 7배 이상 커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간과해선 안될 점이 이미 미국에선 그전부터 셀스루 시장이 존재했고 소비자들의 구매 습관 또한 역사가 오래됐다. 우리는 10년도 채 안됐다. 가장 빨리 돈이 될 수 있는 것을 찾기보다 가장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공급자 입장에서든 소비자 입장에서든 창구는 하나인 것보다 여러 개인 것이 낫다. 디지털이 대세라고, IPTV에 올인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블루레이 디스크에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앞으로 몇년을 유지하고 견뎌낸다면 좋은 그림도 충분히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