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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인 추리와 날카로운 풍자 <추적>
장영엽 2008-11-19

마이클 케인의 주드 로 압도 지수 ★★★★★ 주드 로 변신 지수 ★★ 두뇌 게임 해독 지수 ★★

<추적>은 희곡작가 앤서니 셰퍼의 1970년작 연극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은 젊고 섹시한 무명배우와 돈 많은 노년의 추리소설가가 한 여자를 두고 경쟁하는 웰메이드 심리극이었다. 당시 언론은 “애거서 크리스티와 해럴드 핀터의 중간지점에 서 있다”는 말로 셰퍼의 희곡을 치켜세웠다. 그건 지적인 추리와 날카로운 풍자 사이에서 줄타기를 훌륭하게 해냈다는 칭찬의 다른 말이었다. 그로부터 37년 뒤, <추적>의 각본은 흥미롭게도 해럴드 핀터에게 넘어갔다. 이 영화에 그 이상의 부가설명은 필요없을 듯하다. <추적>은 서늘하고, 독설이 넘치며, 동성애적 판타지가 부유하는 핀터의 세계를 고스란히 스크린에 옮긴 영화니까.

영화의 기본 줄거리는 연극과 같다. <추적>은 무명배우 마일로 틴들(주드 로)이 추리소설가 앤드류 와이크(마이클 케인)의 집에 찾아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마일로는 앤드류의 아내와 불륜의 관계라는 사실을 고백하며 앤드류에게 아내와의 이혼을 권한다. 그러자 앤드류는 마일로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자신의 금고 안에 있는 보석들을 훔치면 아내와 도망쳐도 좋다는 것. 마일로는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앤드류의 계략에 걸려 죽을 위기에 처한 뒤 모습을 감춘다. 그로부터 3일 뒤, 마일로의 실종을 알아챈 형사가 앤드류의 집을 방문한다. 형사는 앤드류에게 마일로와의 관계를 집요하게 물으며 노작가를 추궁한다.

핀터의 각색으로 <추적>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작품으로 거듭났지만, 반드시 충족시켜야 하는 조건은 원작과 다르지 않다. 그건 바로 앤드류 와이크와 마일로 틴들의 극명한 대비다. 앤드류는 뼛속까지 지적이고 품위있어야 하며, 마일로는 뼛속까지 섹시하고 저급해야 한다. 너무 다른 두 사람이 부딪히고 깨지는 데서 발생하는 에너지가 이 영화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주드 로의 ‘불안정한’ 마일로 틴들 연기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는 좀더 불안하고 비열해도 좋을 뻔했으나, 그의 마스코트인 세련된 바람둥이 연기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듯 보인다. 반면 마이클 케인은 더할 나위 없는 앤드류 와이크로 변신했다. 그가 <추적>의 오리지널인 조셉 맨케비츠의 영화 <발자국>에서 뼛속까지 마일로 틴들(앤드류 와이크는 로렌스 올리비에가 연기했다)이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릴 만큼 케인의 노작가 연기는 압도적이다. 그의 연기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tip/해럴드 핀터는 <추적>이 개봉한 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앤서니 셰퍼의 원작 희곡을 한번도 읽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핀터의 모습은 영화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앤드류 와이크가 집 안의 안락의자에 앉아서 TV를 볼 때, 브라운관 속의 인물이 바로 해럴드 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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