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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한 청년을 망가뜨리는 과정 <라콤 루시앙>

신선도 지수 별 ★★ 청춘들의 눈빛 지수 ★★★★ 감독 루이 말에 관해 알고 싶어지는 지수 ★★☆

1944년 6월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 나치의 휘하에 눌려 지내던 그 시절 라콤 루시앙(피에르 블레즈)이라는 아직 어린 청년이 있었다. 아버지 없이 홀로 사는 그가 처음에 원했던 건 레지스탕스 되기였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를 쉽게 받아주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당돌하게도 독일 경찰의 끄나풀이 된다. 그들의 비호 아래 수혜를 입으면서 라콤 루시앙은 권력이 얼마나 달콤한지 알게 된다. 그 때쯤 멋쟁이가 되기 위해 유대인 재단사 알베르 오른(홀거 로웬나들러)의 집을 드나들다가 그의 딸 프랑스(오로르 클레망)도 알게 된다. 프랑스에게 한눈에 반한 루시앙은 이 집에 오는 일이 더 잦아지고 프랑스도 그에게 호감을 갖는다. 루시앙은 프랑스에게 뽐내기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갖은 권력을 다 동원한다. 그는 아무 생각이 없으며 단지 이 상황이 즐겁게 흘러가기만 바랄 뿐이다. 하지만 역사는 그를 그대로 두지 않는다. 어느 날 오른이 유대인들을 실어 나르는 기차에 강제로 태워지고 루시앙은 그걸 막지 못한다. 나치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루시앙은 남아 있는 프랑스와 그녀의 할머니를 데리고 도피길에 오른다.

순진하지만 별다른 생각이 없던 청년 루시앙이 되고 싶었던 건 그냥 어떤 힘있는 자였지 레지스탕스거나 나치거나는 상관없었다. 이 영화도 갑자기 그가 왜 나치의 끄나풀이 되었는지, 그게 얼마나 큰 오판이었는지 말하지 않는다. 단지 전쟁이 한 청년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담담하게 보여주는 정도다. <라콤 루시앙>은 특별히 어떤 영화적 향료를 넣지는 않았지만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는 영화이고 루이 말은 차분하게 루시앙의 이야기를 전한다. 하지만 이야기는 많이 보아온 것이고 그보다는 아직 연기에 서툰 소년과 소녀가 사상과 상처를 뛰어넘고 서로를 쳐다볼 때 묻어나오는 그 텅 빈 시선을 잡아낸 순간이 가장 아름답다. 특히 주인공인 남자배우 피에르 블레즈보다는 <라콤 루시앙>으로 데뷔한 뒤 샹탈 애커만의 영화 <안나의 랑데부> <남쪽> <갇힌 여인> 등에 출연해온 여배우 오로르 클레망의 그 눈빛의 매력을 두고두고 잊기 힘들다. 한편 마지막 시퀀스인 루시앙이 프랑스와 할머니를 데리고 도피길에 올라 순진무구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은 영화에서 루시앙에게도 그걸 보는 관객에게도 가장 아름답고 평온하고 슬프다.

이 영화의 감독 루이 말은 생애 19편의 장편 극영화를 만들었는데 한국 관객에게는 1992년작 <데미지>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1971년에 만들어진 전작 <마음의 속삭임>이 유년기의 주인공이었다면 <라콤 루시앙>은 청년기의 주인공에 관해 다룬다. 예술적인 독창성은 좀 떨어지는 편이지만 극을 끌어가는 자연스러움과 보편적인 리듬에 대한 이해는 즐길 만하다.

tip/ <라콤 루시앙>으로 주인공을 맡아 배우가 된 피에르 블레즈는 그 다음해 교통사고로 사망하여 이 한 작품을 데뷔작이자 유작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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