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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다 팔아버려, 신세계를 위해서라면
이화정 2008-12-09

4년 반 동안 28개국에서 사재까지 털어 촬영한 타셈 싱의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제작기

“내가 단지 <더 셀>을 만들었던 감독이라는 이유로 혹평이 쏟아졌다. 제작자인 데이비드 핀처와 스파이크 존즈를 전면에 내세웠으면 달라졌을까.” 타셈 싱의 판타지 대작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이하 <더 폴>)은 찬사만큼이나 무수한 혹평도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일말의 관심도 없는 대상에게 끊임없이 애정을 퍼붓는 구애자처럼 싱의 마음은 거센 비난에도 좀체 요동치 않는다. 판권을 구입하기까지 15년, 장소 섭외 17년, 주인공을 찾기까지 7년, 촬영기간 4년 반이 걸렸다. CGI 사용은 배제.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사재를 털어서 만든 <더 폴>은 단순히 영화 한편이 아닌, 그가 자신의 인생을 모두 걸고 고백한 영화에 대한 사랑이다. 생활의 95%를 공항과 비행기 안에서 보내고, 파란 하늘이 배경인 단 하나의 장면을 위해 마드리드로 날아가는 것이 예삿일이 돼버린 지난한 세월. 비록 가혹하고 냉담한 대상을 향한 구애지만, 이 사랑을 통과하지 않고 그에게 다음 영화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의 진심어린 고백에, <더 폴>은 결코 진짜라고 상상하기 힘든 장면을 당신의 눈앞에 고스란히 불러온다. ‘반드시 스크린에서 봐야 할 영화’라는 싱의 전언은 그러니까 0.1%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펩시광고를 만든다면 말이죠….’

캔음료 하나의 CF라 하기에 이건 분명 블록버스터다. 바닷가, 호나우지뉴가 메시에게 패스를 하고 메시가 받은 공은 풀로 뒤덮인 행성으로 떨어지고 파브레가스는 정글에서 그 공을 받고, 베컴이 이들과 함께 피지에 모여 콜라를 마신다. 세계 각국, 사람들의 소원을 고스란히 화면에 옮긴 영상. 눈으로 쫓기에도 바쁜 엄청난 화면이 펼쳐진 건 불과 1분5초 사이다. 입이 딱 벌어지는 로케이션과 캐스팅을 가능하게 한 이는 다름아닌 인도 출신의 할리우드 감독 타셈 싱이다. 여기까지가 전부가 아니다. 광고에서나 가능한 ‘미친 짓’을 그는 겁도 없이 <더 셀>에 이은 두 번째 영화 연출작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이하 <더 폴>)으로 확장한다. 머릿속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거대한 코끼리가 망망대해 바다를 헤엄치고, 나무가 제 스스로 불에 타는 초현실적인 광경이 연출되며, 사막 위의 하얀 천이 붉디붉은 피로 물드는 광경이 펼쳐진다. 지금껏 할리우드의 어떤 감독도 보여주지 않았던, 혹은 시도하지 않았던 충격적인 마법의 영상이 주조된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건 ‘내가 할리우드영화를 만든다면 말이죠…’라는 스크린 버전의 펩시콜라다.

싱이 제작을 결심한 것이 지금으로부터 약 23년 전이다. 우연히 본 불가리아 원작영화 <요호호>(YO HO HO)에 매료돼 판권을 구입하는 데 걸린 시간이 15년, 스코틀랜드를 시작으로 파리·인도·캄보디아·볼리비아·나미비아·아르헨티나·중국·터키·남아프리카·이탈리아·체코 등 총 28개국 로케이션을 위한 장소 섭외에만 17년 소비, 딱 맞는 주인공을 찾기까지 7년, 실제 촬영기간 4년 반이 걸렸다. CGI의 사용은 배제. 제작비 6500만달러의 많은 부분을 사재를 털어서 만든 <더 폴>은 싱의 집요함이 낳은 결과물이다. 그 사이 제작비 마련을 위해 자신을 빗대어 ‘예술과 사랑에 빠진 창녀’라고 말하며 CF와 뮤직비디오 촬영을 했고 일에 미친 싱에게 넌더리가 난 여자친구를 떠나보냈으며, 준비해뒀던 결혼자금을 다시 영화에 투자했다. 이 정도라면 “만일 새로운 영상을 찾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멸할 것이다”란 신념 하나로 온 스탭을 ‘죽음’의 촬영현장으로 몰아넣었던 독일 감독 베르너 헤어초크의 미친 집착과 다르지 않다. ‘일생 단 한번의 집착’ 영화를 짝사랑한 감독 싱이 만든 환상적인 세상, 그 문을 열어본다.

소녀에게 들려주는 영웅들의 복수담

<더 폴>은 이야기를 하는 스토리텔러와 그걸 듣는 사람, 둘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가 실제 눈앞에 화면으로 펼쳐지는 마법 같은 영화다. 관객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두 사람이라는 ‘실재’와 그들의 이야기 속에만 존재하는 ‘판타지’의 양극을 스크린에서 모두 경험한다. 영화는 1920년 미국 할리우드의 한 병원을 배경으로 한다. 오렌지 나무에서 떨어져 팔에 깁스를 한 소녀 알렉산드리아(카틴카 언타루)와 무성영화를 촬영하다 다리를 다친 배우 로이(리 페이스)의 만남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무료한 병원생활, 호기심 충만한 소녀를 위해 로이는 자신이 지어낸 한편의 거대한 서사시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는 악당 ‘오디어스’를 향한 다섯 영웅의 복수다. 오디어스 때문에 쌍둥이 동생을 잃은 마스크 밴디트와 아내를 잃은 인디언, 오디어스의 노예였던 오타 벵가, 오디어스 때문에 나비를 잃은 천재 찰스 다윈, 그리고 오디어스의 추방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폭파 전문가 루이지. 로이를 통해 소녀에게 전달되는 이야기는 한편의 복수활극으로 또 하나의 운명적인 로맨스로, 영웅들의 모험담으로 살을 더해간다.

매일 조금씩, 야금야금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서 소녀는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자신의 의견을 첨가하며 이야기의 비극적인 결말을 막아보려 적극 개입한다. 그러나 이 판타스틱한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딸을 잠재우려는 자상한 아빠가 들려주는 머리맡 동화가 아니다. 로이의 목적은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돼 애인을 잃고, 배우생활마저 위기를 느낀 자신을 하루빨리 죽여줄 모르핀을 구하는 일이다. <아라비안나이트>의 공주가 왕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 1천 가지의 이야기를 지어냈다면, 로이는 죽기 위해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을 연상시키는 모험담을 매일매일 지어내는 것이다. 이야기의 결말이 알고 싶어 안달이 난 꼬마는 로이의 속임수에 철저하게 이용되는 셈이다.

싱이 원작 <요호호>(1981)를 본 건 단 한번뿐이다. 설정은 가져오지만 원작을 철저히 분석해서 똑같은 영화를 만들고, 다시 평론가들의 비교를 당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가 만들 영화는 이제껏 단 한번도 선보인 적 없는 ‘새로운 세상의 창조’였다. 영화에 나온 장소들이 언젠가는 변할 것이고 또 아무도 완벽하게 복원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싱의 마음을 좇았다. 단 한장의 시나리오도, 어떤 구체적인 제작 계획도 없었다. 영화 속 알렉산드리아처럼 잡다한 물건을 넣은 상자 하나가 전부인 감독, 허황된 망상가의 ‘사기’에 돈을 대려는 제작자가 있을 리 만무했다. “광고계 사람들은 모두 언젠가는 자신의 돈으로 영화를 만들 거라고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프로듀서인 데이비드 핀처는 나를 두고 ‘그걸 현실화한 유일한 멍청이’라고 했다.”

로이 역 배우를 12주 동안 불구라 속이다

“이건 여섯살 아이가 쓴 시나리오다.” 싱은 자신의 공상이 알렉산드리아 역을 맡은 루마니아 소녀 카틴카 언타루를 통해서 나왔다고 말한다. 싱은 촬영 내내 어린 소녀의 공상을 놓치지 않고 그날그날의 시나리오에 반영했다. 그가 요구했던 배우의 요건은 영화를 본 적 없는, 영화를 모르는 아이였다. 배우생활을 경험해서 공주병에 걸린 아이라면 사절이었다. 장장 7년, 광고 촬영을 할 때마다 스탭들을 시켜 그 지역의 학교를 촬영했고, 마침내 찾은 루마니아 소녀 언타루는 원석 같은 존재였다. 애초 싱은 순수함을 담보하기 위해 영화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4살 이하의 아이를 설정했는데 언타루는 6살이지만 영어를 모르니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언타루를 만나자마자 싱은 그의 제작지원자인 동생에게 연락을 해 “다 팔아버려. 이 아이의 이가 자라기 전에. 4개월 뒤면 이 아이는 다른 사람이 될 거야”라고 전했고 결국 집을 팔아버리기 직전에서야 촬영은 끝났다.

이후의 모든 과정은 언타루를 영화가 아닌 실제상황으로 내몰기 위한 싱의 노력으로 점철되었다. 리얼한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싱은 로이를 연기한 리 페이스를 무려 12주 동안이나 불구로 속였다. LA 병원이 재현된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 촬영 때 싱은 영화의 원래 스탭 대신 다른 스탭과 함께했고 리 페이스가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임에 착안해 그의 이름을 다른 이름으로 바꾸고 그가 뉴욕에서 연극배우였다고 말했다. 카메라맨도 조명담당도 프로덕션디자이너도 몰랐다. 화장실에 데려다주는 딱 한명의 간호사를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이 싱에게 속았다. 촬영 내내 스탭들과 분리된 채 유사장애 체험을 한 페이스는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었고, 사실을 안 스탭들은 자신을 속인 감독에게 울고 화내고 욕하고 촬영을 거부하기까지 했다.

“누가 누구를 믿고 안 믿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어린 소녀의 마법이 필요했다. 싱은 스탭들의 불만보다 영화가 중요했다. 특히 그에게 언타루의 자연스런 연기는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아이에게 ‘지금 눈앞에서 개가 죽어가고 있다’라고 설명하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촬영은 병실 안의 조명을 모두 빼 창문 밖에 설치하고 테이블 아래 숨어들어가 텐트 같은 걸 치고 거기 구멍을 뚫고 진행됐다. 촬영장에서 스탭들에게 소리내지 못하도록 요구했다. 카메라의 포커스를 잡는 것조차 힘들어 촬영을 망치는 날이 허다했지만, 언타루는 페이스에게 귓속말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정도로 영화 속 상황을 진짜로 인식했다. 매일매일 대본없이 상황만 주어지는 현장은 스텝들에게도 수수께끼였고, 누군가에게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라고 들은 언타루는 촬영 내내 자신이 찍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영화의 첫날이 촬영의 첫날, 둘쨋날이 촬영의 둘쨋날이었다. 언타루는 리를 알아갈수록 영어를 잘하게 될수록 그와 사랑에 빠졌고, 새로운 이가 자라났다. 전문배우가 아닌 연기자가 한 연기 중 가장 훌륭한 진짜 연기와 함께.

언론의 무자비한 혹평에 자신만만 응수

<더 폴>이 이룩해낸 불가사의한 영상에 대한 언론의 화답은 가혹했다. 이미지에 비해 빈약한 스토리를 두고 <버라이어티>는 ‘속 빈 프로젝트’라 명명했다. 제니퍼 로페즈가 어린아이의 무의식으로 들어가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싱의 전작 <더 셀> 역시 기존의 스릴러영화와 달리 이미지의 향연에 불과하다는 혹평을 피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싱이 말한 것처럼 그건 어디까지나 <더 폴>이라는 감독 자신의 꿈의 프로젝트 이전에 만들 ‘400만달러짜리 팝콘무비’에 불과했다. 불과 몇년 전 언론의 혹평에 대해 싱은 “헛, 제니퍼 로페즈가 정신과 의사를 연기하는 걸 보려고 돈을 냈다면 당신을 위한 여행을 준비해드리죠”라고 자신만만하게 응수했다.

그러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라면 언제든 수다쟁이가 될 준비가 돼 있는 싱이 감당할 수 있는 비난의 범위는 어쩌면 <더 셀>까지일지 모른다. <더 폴>은 지금까지 싱이 다른 영화를 하지 못하도록 막는 코르크 마개였다. 자신조차 그렇게 오래 지속될지 몰랐던 4년 반 동안의 촬영 기간, 싱은 악전고투를 완수해낸다. 그러나 분명한 건 10년 혹은 15년이 걸렸더라도 싱은 이 일을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를 “전세계를 통틀어 아무도 이런 시험적인 영화를 만들 만큼 돌지 못할 것이다”라고 평가하는 감독. 그는 “앞으로도 난 대중적이지 않을 것이고 머슴처럼 할리우드가 원하는 영화를 찍지는 않을 것이다”라며 자신의 영화의 당위성을 주장할 줄 아는 감독이다.

“널 호적에서 파버리마”

아버지와 의절하고 동생의 지원 받으며 영화 공부했던 타셈 싱

“마치 <금발의 미녀와 자는 법 101>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미국 유학 도중, 영화 서적 <Guide To Film Schools In America>를 발견한 사춘기의 타셈 싱은 그 길로 영화와 사랑에 빠졌다. 하버드에 가서 경제학을 전공하길 원했던 아버지의 바람을 등지고 싱은 영화학도가 된다. 아버지가 항공사 직원이라 무료 지급되던 비행기표 대신 배표로 가라는 게 시작이었다. 영화를 보려고 거짓말을 일삼는 아들을 보다 못한 아버지는 결국 싱을 없는 자식으로 여겼고 재정적 지원 역시 끊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턱도 없이 부족했다. 뒤늦게 타셈 싱을 따라 미국으로 유학 온 동생은 싱의 뜻을 이해해줬고, 수위일을 하면서 그의 작업을 위한 재정적 지원자 역할을 자처했다(이후 싱이 학비를 대줬고, 동생은 변호사이자 싱의 제작자가 된다). 10센트짜리 뜨거운 물에 27센트짜리 티백이 아까워 따로 집에서 차를 싸가지고 다닐 정도로 빠듯한 생활, 영화에만 미친 인도계 싱에게 친구는 없었다. 그러던 중 같은 학교 학생인 래리 퐁(<300> <왓치맨>의 촬영감독)과 지금은 <300>의 감독으로 유명해진 잭 스나이더를 만나 학창 시절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면서 본격적인 연출가의 길에 접어든다. 싱이 처음 두각을 나타낸 것은 REM의 뮤직비디오 <Losing My Religion>. 인도의 색감을 활용한 강렬하고도 초현실적인 영상은 화제를 모으며 영상의 마술사 타셈 싱을 각인시켰다. 이후 스미노프, 코카콜라, 나이키, 리바이스 등을 통해 선보인 독특한 영상으로 싱은 일류 CF감독으로 자리를 굳혔다. 영화 데뷔작은 <더 셀>(2008). 지금은 <300>의 제작진과 함께 만드는 액션 대작 <워 오브 더 갓>(2010)을 촬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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