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국가권력에 맞서는 한 개인의 팽팽한 대립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2008-12-10

숨은 가세 료 찾기 지수 ★★★★★ 법정 방청객 대리 체험 지수 ★★★★★ 러닝타임 체감 지수 ★

일본의 형사사법재판에는 폐해가 있다. 무죄라는 가정 아래 피고인을 조사하는 무죄추정이 원칙임에도 체포 즉시 피고인은 관행상 유죄로 인식되고 인질사법으로 구속된다. 피고인이 죄를 벗으려면 법정이라는 국가권력에 맞서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권력의 벽은 높고 견고하다. 그 지루한 싸움의 승률은 0.1%가 채 안된다. 수오 마사유키 감독은 긴 인고 끝에 무죄판결을 받은 어느 치한사범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접하고 그 길로 영화화를 결심한다.

26살의 텟페이. 고정직 없이 아르바이트로 지내오던 그는 중요한 면접이 있던 날 아침 만원전철을 타게 됐고, 그때 문에 옷이 끼어 빼려고 몸을 움직이다가 치한으로 몰린다. 경찰은 현행범으로 구금된 텟페이를 범인으로 단정짓고 그를 감금한다. 결국 사건은 검찰로 넘어간다. ‘자백하면 쉽게 끝날 일’이라는 주변의 권고에도 텟페이는 줄곧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다. 텟페이의 결백을 믿는 엄마와 단짝 친구 다츠오는 변호사 아라카와 마사요시와 스도 리코에게 텟페이의 사건을 의뢰, 무죄를 입증하기 위한 지루한 싸움을 시작한다.

수오 감독은 텟페이의 무죄를 조장할 만한 어떤 영화적 장치도 허용하지 않는다. <으랏차차 스모부> <쉘 위 댄스> <팬시 댄스>로 이어지는 수오 감독의 웃음코드, 개성있는 캐릭터는 모두 빠진다. 또한 관객이 캐릭터에게 심정적 동요를 불러일으킬 만한 여느 법정영화의 회상장면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143분의 긴 러닝타임을 꽉꽉 채우는 것은 철옹성 같은 국가권력에 맞서 무죄를 입증하려는 한 개인의 팽팽한 대립뿐이다. 무표정하고 암울한 영화의 분위기는 관객을 법정의 방청석으로 데려가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삼엄한 공간, 성추행범으로 몰린 텟페이를 변호하는 건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판결이 진행되는 동안 관객의 심경은 신기하게도 무죄를 호소하는 텟페이에게 가닿는다. 절제된 감정으로 수오 감독은 제도의 모순이라는 간과할 수 없는 진실을 설파한다. 가세 료라는 명배우의 입을 빌려.

tip /영화에는 텟페이의 친구가 재판을 메모하는 장면이 등장하지만, 일본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법정 안에서 방청객의 메모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재판을 방청하던 한 외국인이 부당함을 제기했고 뒤늦게 실행됐다. 일반 국민이 재판관과 책임을 분담, 협동하여 재판내용의 결정에 주체적, 실질적 관여를 할 수 있는 재판원제도(일종의 배심원제도)는 2009년 5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