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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삶과 폭력의 관계 <이스턴 프라미스>

비고 모르텐슨 남성슈트 어울림 및 구입충동 지수 ★★★★ 런던 낯설게하기 지수 ★★★★★ 임신부 관람불가 지수 ★★★★★

시작은 살인이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평범한’ 이발소는 갑작스럽게 살인의 공간으로 변한다. 그리고 14살 소녀의 죽음과 한 아이의 탄생. 영화 속 누군가의 말 그대로, ‘삶과 죽음은 함께 온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신작 <이스턴 프라미스>에서 소녀의 죽음과 크리스틴의 탄생과 관련한 비밀이 중요하긴 하더라도, 그것이 밝혀질 때 발생하는 깜짝 충격 따위는 크로넨버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비밀은 안나(니오미 왓츠)와 러시아 마피아가 각각 표상하는 이질적인 두 세계를 충돌시키기 위한 맥거핀에 가까울 뿐이다.

간호사 안나는 출산 도중 죽은 소녀의 유품에서 러시아어로 가득한 일기장을 발견한다. 일기장에 속에 시베리아 트랜스라는 식당의 명함이 끼워져 있고, 안나는 그곳에서 주인인 세미온(아민 뮤러 스탈)과 망나니 아들 키릴(뱅상 카셀)을 만난다. 소녀의 죽음이 이들 부자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그들이 런던에서 활동하는 러시아 마피아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평범한 안나가 러시아 마피아에 맞서는 것은 불가능한 대립 구도에 가깝지만, 그것은 아들의 운전사이자 친구인 니콜라이(비고 모르텐슨)가 없었을 때의 이야기다. 안나와 마피아가 천사(혹은 평범함)와 악마(혹은 폭력)의 세계를 각각 표상한다면, 니콜라이는 이 두 세계가 서로 뒤섞이지 못하도록 그 통로를 지키고 서 있는 문지기 같은 존재이다. 니콜라이가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이 두 속성을 모두 갖춘 ‘샴쌍둥이’이기 때문이다. 니콜라이에게서 <폭력의 역사>의 ‘톰/조이’의 잔영이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크로넨버그가 A가 B로 전환하는 형태 변환이나 이질적인 대상의 공존하는 세계를 묘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음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스턴 프라미스>는 그것이 또 하나의 경지로 도약했음을 증명한다.

<이스턴 프라미스>에서 크로넨버그의 관심은 폭력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삶과 폭력이 결코 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는 것이다. 평범한 삶은 폭력에 의해 위협받기도 하지만(살인이 자행되는 공간들을 주목하라), 또한 폭력을 통해 평범한 삶이 보호받는다는 모순은 ‘인물의 육체 위에’ 선명하게 새겨진다(이는 은유가 아니다). ‘이스턴 프라미스’라는 제목의 함의가 명확하게 제시되진 않는다 해도, 영화의 엔딩 무렵 안나와 크리스틴이 맞이한 행복의 순간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약속이 어떤 희망과 맞닿아 있음이 감지된다. 하지만 크로넨버그는 결코 순진한 낙관주의자가 아니다. 이 장면 바로 다음, 심각한 표정으로 상념에 잠긴 니콜라이의 모습을 담은 엔딩장면은 그 약속에 대한 크로넨버그의 의문이자 불안이다.

Tip/ 비고 모르텐슨은 <폭력의 역사>의 ‘톰/조이’에 이어 <이스턴 프라미스>에서도 평범함과 폭력이 혼재된 인물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어떻게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는 <반지의 제왕>의 아르곤에게서 이처럼 얼음장 같은 표정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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