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영화에 대한 영화 <리튼>
김도훈 2008-12-24

익스페리멘털 지수 ★★★ 익사이트먼트 지수 ★★ 익스트림 지수 ★

김병우 감독의 한양대 졸업작품인 영화 <리튼>은 메타 영화다. 영화에 대한 영화라는 의미다. 일단 내용을 한번 정리해보자. 차가운 물이 가득한 욕조에서 남자 A가 깨어난다. 벽에는 ‘Go to the hospital!’(병원으로 가시오!)이라고 쓰여 있다. 배에는 큰 상처가 벌어져 있다. 누군가가 A의 신장을 강탈해간 것이다. A는 신장을 찾아 헤매다가 시나리오작가라는 여자를 만난다. 그녀는 A가 집필 중인 시나리오 속의 캐릭터에 불과하며 언젠가는 A를 연기하는 진짜 배우를 만나게 될 거라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작가가 시나리오를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A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자신을 연기하는 배우를 찾아나서지만 배우는 그를 피한다. 한편, 영화의 감독과 스탭들은 영화의 결말을 알기 위해 사라진 작가의 집을 뒤지며 촬영을 계속한다.

여기까지 시놉시스를 읽고 혼란에 빠졌다면 그건 당연한 일이다. <리튼>은 ‘창작’에 대한 초현실적인 아이디어로 시작된 영화다. 완성되지 않은 시나리오 속 허구의 인물이 자신을 창조한(혹은 창조 중인) 시나리오작가, 감독, 배우에게 도전한다는 이야기는 논리적인 설명 자체가 가능하지 않다. 스릴러의 외피를 쓰고 있긴 하지만 <리튼>이 다소 관념적인 실험영화의 한계에서 완벽하게 탈출하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리튼>은 대신 공들여 제작한 인공 세트 속에서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영상화하는 데 주력한다. 마지막 장면을 예로 들자면, A는 자신을 연기하는 배우와 결국 마주치지만 배우는 스산하게 웃으며 문을 열고 나가버린다. A는 그를 뒤쫓아가지만 이미 문은 사라지고 없다. 배우는 이미 영화 바깥의 공간으로 나가버렸고 A는 영화 속 공간에 여전히 갇혀 있다. 결국 모든 것은 영화 속의 공간일 따름인 것이다. <리튼>이 간단한 편집과 프로덕션디자인의 마술을 통해 아이디어를 영상화하는 방식은 꽤 재치가 있다. 상업영화 진영 안에서의 차기작을 기대해볼 만하다.

tip/ <리튼>은 2007년 부산영화제 공식 초청작이며 올해 카를로비 바리 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을 수상했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