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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단편] 너도 느끼니? 나도 느껴!
글·사진 이주현 2009-01-21

윤지석 감독의 <스위치>

녹음실에서 “다시 갈게요”를 연발하는 오페라 가수와 “당신 쉬는 10년 동안 이 바닥도 많이 변했다”며 면전에서 가수를 구박하는 PD. 언젠가 터지고 말 휴화산처럼 두 사람의 속에선 용암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10년을 쉬고 컴백을 준비하는 오페라 가수 미나는 자신의 속사정도 모르면서 녹음이 지연된다고 차가운 시선을 던지는 정 PD가 야속하고, 정 PD는 자기 말은 듣지 않고 고집 부리다 재차 NG를 내는 미나가 짜증스럽다.

<스위치>

그러나 영화는 한판 제대로 붙어 끝장을 보겠구나 싶은 순간에 피식, 봉합되고 만다. 싸움만 크게 붙여놓고 얼렁뚱땅 화해시켜버리는 용두사미 아니냐고? 감독의 말에 따르면 “인생의 전환점은 의외로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계기를 통해 일어나고, 사람들은 보통 그 계기에 혼자 의미를 부여하고, 혼자 비장”해진다. <스위치>는 깜빡깜빡 점멸하는 형광등에도 불이 들어와 환해지는 것처럼 중요한 건 인생의 스위치를 먼저 힘껏 누르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다.

KT&G 상상마당 이달의 단편 11월 우수작 중 한편인 윤지석 감독의 <스위치>는 이미 지난해 9월 극장에서 상영됐다. 한국독립영화협회가 10주년을 맞아 2008년에 기획한 옴니버스영화 <내 안의 영화> 중 한편이 바로 <스위치>다. 윤 감독은 <내 안의 영화>의 키워드인 ‘10년’과 ‘영화’를 어떻게 엮을까 고민하다 10년의 공백을 가지고 컴백하는 오페라 가수 이야기를 생각해냈다. “개인 포트폴리오용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싶다면서 오페라 가수 김민아씨가 도와달라더라. 유럽에서 활동하다가 귀국해 크로스오버로 국내 활동을 시작하려던 참이었는데 한때 외국에서 잘나갔다고 해도 국내 경력이 없으니 기반을 다시 닦아야 했다. 뭔가 내가 생각했던 영화의 모티브랑 비슷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10년을 쉬었다가 컴백하는 가수, 공백에서 오는 낯섦, 그걸 무릅쓰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 집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시놉시스를 쓰고 민아씨에게 바로 전화를 했다.” 미나 역에 김민아씨가 캐스팅된 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윤지석 감독

표면적으로는 가수와 PD의 신경전이지만, 윤 감독은 또 다른 의미를 영화에 심어뒀다. “가수로 대변되는 건 한국독립영화협회 전체이거나 우리나라 영화계 전체일 수 있으며, 정 PD로 대변되는 건 우리나라 영화 관객과 팬들이다.” 정 PD가 가수에게 잘 좀 하자고 다그치는 건 영화 팬들이 한국독립영화협회와 영화계를 향해 잘 좀 하자고 소리치는 거란 얘기다. 10년간 한국영화가 크게 발전했지만 또 후퇴한 부분도 있고, 늘어난 팬만큼 실망한 팬도 많아졌으니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10년을 새롭게 준비하자는 의미도 담겨 있다. 그러나 윤 감독은 메시지를 강조하기보다 두 사람의 긴장감을 부각시키는 데 힘을 쏟는다.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이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공감된다면 그것이 바로 좋은 영화다. 너도 느끼니? 나도 느껴! 이런 감정의 소통이 중요하다.”

그런 영화관의 반영인지 윤 감독의 시나리오 작업 방식은 조금 독특하다. MP3에 영화의 정서에 맞고, 이야기 전개에 맞는 음악들을 골라서 가상의 O.S.T를 만들어놓은 뒤 그걸 들으며 시나리오를 쓴다. 다음 작품으로 준비 중인 장편 <기적의 사나이>(가제)도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까지 “혼자서 대충 음악을 꾸려놓고 이런 느낌의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하며 작업한다고 한다. 윤 감독은 또 “독립운동하듯이 독립영화를 만들고는 있지만 그렇기에 대중적으로 소통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면서 차기작은 “추운 겨울에 가족과 따뜻하게 손잡고 볼만한, 가슴 뻐근한 감동을 전하는 영화”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바람은 <기적의 사나이>가 2010년 개봉하는 독립영화 중에서 가장 관객을 많이 모으는 영화가 되는 것. 올해 마흔둘. 조금은 뒤늦게 인생의 스위치를 켜게 됐지만 그의 영화에 깜빡깜빡 불이 들어오게 될지도 모를 내년을 기대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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