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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애니스톤] ‘눈물의 여왕’은 잊어라
김도훈 2009-02-13

우리가 한번도 보지 못한 애니스톤을 <말리와 나>에서 만나보자

눈물의 여왕. 제니퍼 애니스톤을 따라다니는 별명이다. 어쩔 도리 없다. 그녀는 눈물의 여왕이다. 우리는 애니스톤의 얼굴을 보며 즉각적으로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를 떠올린다. 다들 아는 이야기지만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를 찍으며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는 사랑에 빠졌다. 애니스톤과 브래드 피트는 이혼했다.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는 아이를 낳았고 아이들을 입양했고 결혼을 했고 거대한 저택을 샀고 ‘브란젤리나’가 됐다. 애니스톤의 고난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프렌즈> 시리즈의 유일한 생존자

파파라치들은 애니스톤의 사진을 미친 듯이 찍어서 타블로이드 잡지들에 팔아먹었다. 타블로이드들은 애니스톤의 사진을 브란젤리나의 행복한 사진과 함께 실었다. 불행과 행복의 대차대조표였다. 타블로이드가 아닌 패션지 <보그>조차 “녹음기를 꺼달라고 요구한” 애니스톤의 말을 잡지에 그대로 실었다. “안젤리나 졸리의 언행은 정말 쿨하지 못했어요.” 그 발언으로 또 난리가 나자 애니스톤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파파라치들은 여전히 애니스톤을 따라다녔다. 빈스 본, 포크록 가수 존 메이어와의 연애와 결별이 타블로이드에 매주 실렸다. 꼭 처량한 표정의 애니스톤 사진만 골라서 실어댔다. 문제는 이거다. 대체 ‘여배우’ 애니스톤은 그동안 뭘 하고 있었는가. 아니, 우리가 브란젤리나의 희생자로서가 아닌 여배우 애니스톤에 대해서 아는 건 대체 뭔가.

하지만 희생자라니.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오히려 그녀는 생존자다. 그게 애니스톤에게는 더 어울린다. 그녀는 <프렌즈>(1994~2004) 시리즈의 유일한 생존자이기도 하지 않은가. <나인 야드>로 전도유망한 코미디 영화배우로 올라서던 매튜 페리는 금세 인기를 잃었다. 데이비드 시머와 맷 르블랑은 잊혀졌다. 코트니 콕스는 <스크림> 시리즈를 제외하면 기억에 남는 출연작이 없는데다가 리사 쿠드로는 <섹스의 반대말>(1998)로 뉴욕비평가협회 최우수 여우조연상을 받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반면 제니퍼 애니스톤은 운도 좋고 영리했다. 니콜라스 하이트너 감독의 유려한 퀴어 로맨스 <내가 사랑한 사람>(1998)과 인디영화 <굿 걸>(2002)로 ‘<프렌즈> 이후’를 착실하게 준비하던 애니스톤은 코미디 스타들과 함께 한 <브루스 올마이티>(2003)와 <폴리와 함께>(2004)로 수백만달러짜리 할리우드 스타 자리에 올랐다. 비평가들도 좋아했다.

역시 그 이후가 문제다. 2005년 브래드 피트와의 이혼 이후 말이다. 롭 라이너의 <루머 해즈 잇>(2005)은 성공적이지 못했고, 스릴러 <디레일드>(2005)는 실패했다. 빈스 본과 함께한 <브레이크 업>(2006)의 준수한 성공을 두고도 사람들은 말했다. 애니스톤의 사생활에 대한 암시가 담긴 듯한 제목과 빈스 본과의 열애설이 관객을 끌어들였을 뿐이라고. 신작의 제목들도 하나같이 의미심장하긴 했다. 소문(<루머 해즈 잇>)과 탈선(<드레일드>)과 결별(<브레이크 업>)이라니. 애니스톤 역시 최근 출연작들이 별로였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제 출연작에 대해 언제나 호의적으로만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니까 <루머 해즈 잇>과 <드레일드> 같은 영화들 말이에요.” 하지만 그녀는 덧붙인다. “이번에는 정말로 좋은 영화예요.” 신작인 <말리와 나> 이야기다.

도회적 독신여성에서 전업주부로

애니스톤이 처음부터 <말리와 나>의 출연에 호의적이었던 건 아니다. ‘그냥 흔해빠진 개 영화’라고 생각한 그녀는 대본과 원작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주변의 권유로 책을 읽자마자 마음을 빼앗겼다. 왜냐하면 <말리와 나>는 그저 개에 대한 로맨틱코미디가 아니라 개를 기르는 부부의 삶에 대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제임스 그로건의 논픽션을 소재로 한 <말리와 나>는 지구에서 가장 골치아픈 래브라도견 말리를 입양한 그로건 부부가 아이 셋을 낳고 직장을 옮기고 결국 말리를 땅에 묻기까지의 19년을 그린다. 제니퍼 애니스톤은 개를 길들이고 남편을 길들이고 아이들까지 길들여야 하는 20대에서 40대까지의 주부 제니퍼 그로건을 연기한다. “대본을 읽는데 이거야말로 나의 미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미래이기도 하고 말이에요. 그래서 발가락만이라도 한번 담가보고 싶었습니다.”

확실히 <말리와 나>의 애니스톤은 우리가 한번도 보지 못한 애니스톤이다. 레이첼처럼 도회적인 독신여성을 주로 연기해오던 그녀는 이 영화에서 가정을 위해 커리어를 희생하는 전업주부로 나온다. 산후 우울증에 걸려 개를 내다버리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애니스톤을 상상이나 해봤던가.

<말리와 나>는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눈물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걷어내고 싶었던 애니스톤과 자살 사건을 뒤로하고 새 출발하려는 오언 윌슨에게, <말리와 나>는 공히 근사한 재기작이 됐다. 브란젤리나가 오스카 시상식에 나란히 참석하는 걸 보더라도 애니스톤이 그다지 마음쓸 것 같지는 않다. 오스카 후보로 노미네이트되지 않아도 애니스톤은 여전히 대중이 가장 사랑하는 스타 중 한명이다. 게다가 그녀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조금씩 진화하는 배우다. “저는 제 커리어가 진화하는 방식을 매우 즐기고 있습니다. 여전히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요. 여전히 이 일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에도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새롭게 제 자신을 재발명하고 싶습니다. 뭔가 사람들이 기대하지 않는 것들을 해나가면서 말이에요. 그래야만 일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고 계속 흥미진진하게 도전할 수 있으니까요.” <섹스 앤 더 시티>가 성공적으로 영화화한 뒤 해외 언론들은 애니스톤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 물었다. “<프렌즈> 영화는 언제쯤 만들어질까요?” 그녀의 대답은 단호하다. “절대 만들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젠 레이첼도, 눈물의 여왕도, 다 놓아줄 때다. 제니퍼 애니스톤은 이미 과거와의 밧줄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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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이십세기 폭스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