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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의 독설] 작가주의 좀 그만 하자

관객의 공감과 즐거움 추구해야 할 상업영화, 더 상업적으로 만들기를

2008년 개봉영화 흥행 1위가 685만명을 동원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과속스캔들>로 넘어갔다. <과속스캔들>은 800만명을 넘어 한국영화 흥행기록 7위에도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 <과속스캔들>이 흥행가도를 달리기 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2008년 관객동원 1위라는 뉴스를 들으면서 기분이 묘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대한 영화적 평가는 아니다. 다만 제작사에 거의 수익을 남겨주지 못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한해의 흥행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한국의 영화산업 시스템에 어딘가 결함이 있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한국의 영화산업, 시장이 뭔가 뒤틀려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영화시장이 좁다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있었다. 그래서 100억원 이상의 제작비를 들이는 블록버스터를 만들려면 필연적으로 해외시장을 겨냥해야만 하고, 해외 합작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맞다. 블록버스터를 만들려면 그 정도의 계산은 해야 한다. 블록버스터가 한 예술가의 자아실현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은 대개의 경우 엄청난 낭비다. 가끔은 그런 낭비에서 걸작이 탄생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한국에서는 엄청난 재앙이 도래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장선우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처럼.

한국의 블록버스터는 왜 자멸했나

그런데 블록버스터가 주도하는 것이 일반적인 영화 흥행에서 한국의 경우는 유별났다. 1천만 관객을 넘은 <괴물> <왕의 남자>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중에서 제작할 때부터 성공을 확신하며 만든 영화는 <태극기 휘날리며> 정도밖에 없다. 만드는 사람들은 아련한 불안감 속에서도 영화가 성공할 것이라고 믿었겠지만, 그건 일종의 신념에 가까웠다. <괴물>은 한국에서 낯선 괴수물 장르였고(물론 완성된 <괴물>은 단순한 괴수물이 아니었지만), <왕의 남자>는 흥행 코드가 거의 없었고, <실미도>는 너무 무거운 주제라고 여겨졌다. 결과적으로 체계적이고 막대한 마케팅의 힘이나, 의도치 않은 스타의 등장 등으로 이 영화들은 성공했다. 그리고 신드롬을 일으키며 한국영화의 흐름을 바꾸었다.

영화사나 감독들이 대작에 도전하는 이유는 충분히 있다. 감독 개인으로서는 자신의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환경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설렐 것이다. 영화사 입장에서도 많은 제작비를 들여 그만큼 더 많은 수익을 올린다면 최선이다. 게다가 한국영화에서 50억원 이상을 들인 영화가 오히려 수익률이 더 좋다는 통계도 있다. 적당히 중간 규모의 흥행을 노리는 영화보다는 크게 지르고 대중의 이목을 끄는 편이 좋다는 계산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래서 한국영화의 중견은 물론 신인들까지도 무모하게 대작, 블록버스터에 도전했지만 몰락했다. <중천> <태풍> <형사 Duelist> 등등 최고의 스타가 출연하고, 실력을 검증받은 중견감독이 연출을 하고, 화제가 될 만한 요소가 충분했음에도 한국 블록버스터는 자멸의 길을 걸었다.

한국의 블록버스터가 자멸한 이유는 한 가지로 집약된다. 영화의 품질이 낮았기 때문이다. 물론 뛰어난 영화를 관객이 외면할 때도 있지만, 대성공을 거둔 영화가 언제나 잘 만든 영화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예술적으로 부족할지 몰라도, 오락영화로서는 고품질의 영화가 거의 흥행에서 성공한다. <디 워> 같은 영화는 예외로 하자. <디 워>는 800만명이 넘게 들었어도 수익을 내지 못했다. 그건 성공이 아니다. 다시 한번 <괴물> <왕의 남자> <실미도> 등을 보자. 어쨌거나 이 영화들은 수준이 높은 영화다. 적어도 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한 영화다. 한국에서는 그동안 흥행과 예술성에서 성공을 거둔 영화가 유난히 많았다. <올드보이> <살인의 추억> <웰컴 투 동막골> <스캔들-남녀상열지사> <반칙왕> 등등. 정말 행복한 경우다. 걸작, 수작이 관객에게 호응을 받고 비평에서도 절찬을 받는 경우는 해외에서도 의외로 드물다.

오락영화 수준이 너무 낮아 켕기네

하지만 한국 흥행영화의 기묘한 성공 사례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상업영화를 만드는 제작자와 감독들이 예외적으로 등장하는 선례에 지나치게 집착하며 상업영화로서의 완결성보다는 상업영화에서의 작가주의를 시도한 것이다. 공포영화를 만들면서도 공포가 아니라 그 이면의 의미에만 주목해 달라고 주장하거나, 지나친 자의식으로 장르의 완결성을 망쳐놓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김기덕이나 홍상수의 영화는 분명 감독의 영화다. 하지만 상업영화는 단지 감독의 것만이 아니다. 상업영화라면 관객이 공감하고 즐거워해야 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한국영화가 더욱더 상업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주장할 때마다 켕기는 이유가 있다. 그건 재미나 즐거움에 매진하겠다고 주장하는 오락영화들의 수준이 지나치게 낮기 때문이다. <조폭마누라> <두사부일체> <가문의 영광>은 그나마 낫다. 이 영화들에서는 작품의 질을 떠나서 액션영화에서의 여성 캐릭터를 창조했다든지 학교라는 공간에 조폭을 끌어들여 사회적 의미를 확장시켰다든지 하는 등 나름대로 영화적, 사회적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오락영화들은 차마 말을 꺼내기도 힘들 정도로 엉망진창이다. <고死: 피의 중간고사> <유감스러운 도시> 등 흥행작들도 한심하고, 흥행에서 외면받은 얼치기 상업영화들은 차마 눈뜨고 보기에 민망할 정도다. 이 정도면 관객이 웃을 거야, 이 정도면 관객이 무서워하거나 감동할 거야 등으로 제작자와 감독이 지레짐작을 해서 만들어낸 한심한 장면들로만 가득하다.

<과속스캔들>이 반가웠던 것은 그런 이유다. <과속스캔들>은 잘 만든 오락영화, 상업영화다. 사회적 함의도 있다. 미혼모 문제나 가족의 해체와 복원 등 경제위기를 맞은 한국사회에서 <과속스캔들>이 성공을 거둘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아낼 수도 있다. 무엇보다 <과속스캔들>이 중요한 이유는 기존 한국 상업영화가 저지른 오류에서 벗어난 웰메이드 오락영화라는 점이다. 제작자인 안병기 감독의 인터뷰에서 재미있는 말을 봤다. 자신의 영화사에서 영화를 준비하던 감독들에게 기존 영화를 편집하여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미리 보여달라, 고 했더니 강형철 감독만이 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세계에만 빠져 있는 다른 감독들을 은근히 비판했다. 물론 안병기 감독도 그런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가위>는 몇개의 섬뜩한 장면이 있었고 <폰>은 소재라도 참신했지만, <분신사바>와 <아파트>는 명백한 졸작이다. 무서운 장면만 무한복제하는 것은 결국 실소로 변해버린다. 상업영화는 결코 예술가의 의도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치밀하게 기존 영화의 장점을 따르고, 거기에 새로운 요소를 투입하여 관객의 예상을 반 걸음씩 앞서 나가는 치밀한 세공력이 있어야 한다. 그건 상업적 판단이고, 관객과 커뮤니케이션을 해야만 가능한 능력이다. <조폭마누라> <가문의 영광> <두사부일체>의 속편들이 망한 것은 1편의 성공법칙을 그대로 답습했기 때문이다. <과속스캔들>은 한국의 상업영화들이 안이하게 반복해왔던 코미디와 신파의 공식을 유쾌하게 변주한다.

<추격자>와 <과속스캔들>에서 배울 것

그동안 한국 상업영화는 지나치게 편향적이었다. 작가적인 욕심만 앞세워 기형적인 상업영화를 만들어내거나 상업적이라는 미명 아래 구태의연하고 시대착오적인 코미디와 신파를 남발했던 것이다. 결국 문제는 원칙 자체에 충실해지는 것이다. 상업영화를 만들고 싶다면 가장 먼저 관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해야만 한다. <추격자>는 나홍진이라는 천재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걸작이 아니라, 치밀한 기획 아래 프로듀서와 감독 그리고 스탭들이 함께 만든 숙련된 상업영화다. 어떻게 관객에게 긴장과 공포를 안겨줄 지를 치밀하게 고민한 결과로 만들어진 상업영화의 수작이다.

나는 <추격자>와 <과속스캔들> 같은 순수한 오락영화, 상업영화들이 더욱 많이 만들어지기를 원한다. 상업영화에서만은 작가가 아니라, 장인의 세련된 수작을 만나고 싶다. 오래전에, 단지 재미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걸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가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럼에도 지금도 나는 그 말을 바꿀 생각이 없다. 나는 한국영화에서, 오로지 재미만을 추구하는 진짜 상업영화를 보고 싶다. 예술영화가 필요한 것처럼 세상에는 오락영화도 그만큼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