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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블레임: 인류멸망 2011>
정재혁 2009-02-25

synopsis 2011년 도쿄. 시립병원 응급센터에 한 환자가 실려온다. 의사인 마츠오카 츠요시(쓰마부키 사토시)는 단순한 감기라 판단하고 간단한 조제약을 주고 보낸다. 하지만 다음날 환자는 고열과 출혈 증세를 보이며 다시 실려오고 급기야 사망하기에 이른다. 뒤이어 환자와 접촉이 있었던 사람들이 비슷한 증세를 보이고, 일본 후생성은 이 질병을 신형 인플루엔자라 진단한다. 감염의 확산이 심각해지면서 WHO의 메디컬 담당자인 코바야시 에이코(단 레이)가 도쿄로 파견되고, 병원 사람들은 그녀와 함께 힘을 모아 질병에 맞서 싸운다.

일본 재앙 블록버스터에는 항상 두 가지 테마가 보인다. 언젠가 일본 열도 전체가 파멸될 거란 공포심과 그 안에서 가족,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 이 안에서 과거에 대한 향수가 살아나기도 하고 연인을 잃은 자의 후회와 슬픔이 묻어나기도 한다. <블레임: 인류멸망 2011>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미확인 바이러스로 일본 전체가 무너져내리는 공포를 블록버스터의 스펙터클로 구현한다. 긴자, 신주쿠, 시부야 등 도쿄의 트레이드 거리들이 황폐화한다. 조악해 보이는 CG가 눈에 거슬리긴 해도 영화의 의도는 충분히 전해진다. 재앙의 그림을 하나둘 완성한 뒤 영화는 갖가지 사연을 가진 인물들의 내부로 들어간다. 에이코의 목표 앞에 사랑을 참았던 츠요시, 남편과 어린 딸을 집에 두고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병원에 남은 간호사, 아빠가 운영하는 양계장 닭이 바이러스의 원인이란 뉴스 탓에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딸 등. 영화는 재앙의 공포 속에서도 인연의 소중함은 놓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는다.

일본 블록버스터의 진부한 틀을 그대로 답습하는 이 영화에서 새로운 대목은 바이러스에 대한 감독의 태도이다. “인간은 자신의 터전을 파괴하면서 스스로를 부수고 있다”, “나는 암과 함께 살아가는데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갈 순 없는 건가”라는 대사는 환경과 의학에 있어 꽤 진보적이다. 다만 이 태도가 혈청요법이라는 의료 시술법으로 옮겨지면서 영화는 우스워진다. 어떤 재난이 닥쳐와도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하라는 교훈을 단순히 의학에 응용한 꼴이다. 실소가 터져나오는 건 이 대목뿐만이 아니다. 휴머니즘을 의식한 과도한 인물 설정과 억지로 이어붙인 듯한 각 에피소드의 장면들은 두 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이 더 길게 느껴지게 한다. 핑크영화 감독으로서 제제 다카히사의 정체성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나마 항상 평균 이상을 보여주는 쓰마부키 사토시와 <무사의 체통>의 기품을 여전히 가진 단 레이의 연기가 이 영화의 유일한 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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