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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렉: 더 비기닝>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점프
장미 사진 최성열 2009-03-12

<스타트렉: 더 비기닝> 클립 공개… 한국 찾은 감독과 배우들을 만나다

<스타트렉>이라니 이름만으로도 짜릿하지 않은가. 5월7일 그 비밀스러운 정체를 드러낼 <스타트렉: 더 비기닝>은 TV시리즈 <스타트렉>을 원작으로 한 열한 번째 영화다. 제작비로 1억5천만달러를 쏟아부은 프로젝트의 규모도 그렇거니와 스타플리트 생도들의 재집합에 머리를 맞댄 이들의 면면도 만만치 않다. 감독좌에 오른 이는 뛰어난 아이디어맨 J. J. 에이브럼스요, 각본가는 <트랜스포머>를 성공으로 이끈 로베르토 오치, 알렉스 커츠먼 콤비. 게다가 스포크의 또 다른 자아라 해도 과언이 아닐 배우 레너드 니모이까지 얼굴을 비춘다니, 올드팬은 물론 잘 만든 블록버스터라면 흔쾌히 지갑을 열 젊은 영화광들까지 모두 끌어안겠다는 심사다. 2월25일, <스타트렉>의 프리퀄인 <스타트렉: 더 비기닝>의 개봉에 앞서 J. J. 에이브럼스 감독과 주연배우 크리스 파인, 조이 살디나가 한국을 찾아 기자회견을 갖고 30분 분량의 클립 네개를 공개했다. 철저히 베일에 싸였던 이 SF블록버스터의 속내를 조금이나마 먼저 엿볼 절호의 기회였다. 벌써부터 피가 끓어오를 팬들을 위해 최초로 공개된 클립의 내용과 J. J. 에이브럼스 감독, 두 배우의 인터뷰를 함께 실었다.

우주, 최후의 개척지(Space, the final frontier). 한낱 인간의 상상력을 넘어선 광활하고도 매혹적인 무중력공간. 그러니 의외로 가장 큰 난관은 <스타트렉: 더 비기닝>의 원전 역시 숨막힐 정도로 광활하고 탄성이 새어나올 만큼 매혹적이라는 데 있지 않았을까. <스타트렉>의 오리지널 시리즈라 하면 각본가이자 프로듀서 진 로덴베리의 펜 끝에서 탄생해 1966년 <NBC>에서 방영된 <스타트렉>을 떠올리겠지만 그 뒤 TV를 점령한 시리즈만도 <스타트렉: 넥스트 제너레이션>(1987∼94), <스타트렉: 딥 스페이스 나인>(1993∼99) 등 애니메이션을 포함해 5편이요, 극장에 걸린 영화는 찬사를 받았든 비웃음을 샀든 간에 <스타트렉: 모션 픽처>를 선두로 무려 10편에 이른다. 그뿐인가. <스타워즈>가 채 빛을 보기도 전인 1960년대 후반, 서서히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이 전설적인 SF TV시리즈의 혁신적인 세계관에서 뻗어나간 소설은 얼마나 많은가. 21세기, 마침내 <스타트렉>의 새 함장 자리를 물려받은 J. J. 에이브럼스가 “나는 사람들이 <스타트렉>이 정확히 무엇인지 이해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도 수긍할 만하다.

그래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있다. J. J. 에이브럼스가 누구냐. 눈물 쏙 빼는 SF블록버스터 <아마겟돈>의 각본을 쓰는가 하면, 끝없이 비밀을 증폭시키던 TV시리즈 <로스트>로 주목받았고, 재미와 스릴만큼은 탁월했던 액션블록버스터 <미션 임파서블3>로 박스오피스를 휩쓸었으며, 새로운 영상언어를 개척했다 평가받는 재난블록버스터 <클로버필드>까지 선보인 걸출한 인물 아닌가. 하지만 트레커(trekker) 혹은 트레키(trekkie)라고 불리는 <스타트렉>의 광팬이라면 저주 섞인 불만을 연이어 쏟아내고도 남을 것이다. 하필 J. J. 에이브럼스라니! 이 아름다운 스페이스오페라가 닻을 올린 1966년, 막 지상에 밀려나온 핏덩이가 아닌가. 스스로 <스타트렉>의 팬이 아님을 공공연히 떠벌리는 것도 모자라 어린 시절부터 <스타트렉>이 아니라 <스타워즈>에 열광했다 강조하는 뻔뻔스러운 태도라니. 이번 영화를 그저그런 블록버스터로 포장하고도 남을 인간이야. 그가 지휘하는 엔터프라이즈호 따위 블랙홀에나 빨려들라지.

테크놀로지의 수혜로 액션신 화려해져

과연 그럴까. 분명한 사실은 팬들의 극렬한 반발에도 스튜디오의 태도는 확고했다는 것이다. “모든 제작사들이 이같은 프랜차이즈를 찾고 있다. 우리로선 재시동을 거는 게 중요했다. 동시에 말끔하고도 신선한 해석이 필요했다.” J. J. 에이브럼스는 화답한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는 하드코어 트레커들을 행복하게 할 영화를 만들지 않을 거다. 그건 불가능하다. 나는 영화팬을 위한 영화를 만들 거다. 나는 이 작품이 모험적이고 재미있고 섹시하고 무섭고 서사적이면서도 친숙한, 그 모든 걸 담은 영화가 되길 원한다.” 그러니까 파라마운트와 J. J. 에이브럼스의 비전은 처음부터 일치했다. 골수팬들의 분노를 사는 한이 있어도 낡디낡은 엔터프라이즈호의 동체에 현대 블록버스터의 신선한 공기를 주입할 것. ‘더 비기닝’이라는 부제를 내걸고 제임스 커크(크리스 파인)와 스포크(재커리 퀸토), 우후라(조이 살디나), 본즈(칼 어반), 체호프(안톤 옐친), 술루(존 조), 스코티(사이먼 페그) 등 엔터프라즈호 영웅들의 운명적인 의기투합을 뒤쫓은 이유 역시 이 영화를 웅장한 프랜차이즈의 첫걸음이라 여겨서가 아닐까. 그런 임무에 어울리는 함장이라면 음산하지 않으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작품들을 스타일리시하게 뽑아낸 J. J. 에이브럼스가 더할 나위 없는 인사였을 테다.

2월25일 오후 2시 CGV압구정에서 공개된 클립에서도 J. J. 에이브럼스의 야심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엔터프라이즈호 내부에서 좀처럼 시선을 떼지 않는 고상한 실내극에 가까웠던 원작과 가장 이질적인 건 10분가량으로 가장 길었던 네 번째 클립이다. 절멸의 위기에 처한 벌칸들을 구하고자 커크, 술루, 올슨이 스페이스 점프에 도전한다. 행성을 폭파시키기 일보 직전인 거대한 드릴을 멈추는 게 그들의 임무다. 소형 우주선에서 뛰어내려 대기권에 진입해 상상도 못할 높이를 자유낙하한 청년들은 불길이 솟아오르는 살벌한 기계 장치 위에서 악당들과 한판 난투극을 벌여야 한다. 온종일 계기판이나 두드릴 법한 술루의 놀라운 펜싱 솜씨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가장 아찔한 순간은 지상에 떨어져 산산조각나려는 찰나, 커크와 술루가 순간이동을 이용해 단숨에 함대로 복귀하는 장면. 테크놀로지의 수혜를 빌려 액션신이 드물었던 원작을 업그레드시키겠다던 J. J. 에이브럼스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오프닝을 담은 첫 번째 클립은 다른 의미에서 인상적이다. 주인공 중 다수가 빛을 보기도 전인 과거를 배경으로 한 이 장면에선 비극의 원흉 네로가 소개되는데, 치솟은 눈썹조차 전투적인 이 로뮬란 제국의 악당은 놀랍게도 에릭 바나다. <트로이>의 건실한 장수로 깊은 인상을 남긴 그는 사뭇 충격적인 변신을 꾀한 듯 보인다. 커크와 우후라가 처음 대면하는 두 번째 클립이 혈기 왕성한 스타플리트 생도들로 득실대는 아이오와의 바를 그렸다면, 세 번째 클립에선 트레커들이 하루빨리 보고 싶어 안달할 엔터프라이즈호의 구석구석을 드디어 목격할 수 있다. 좁은 공간에서도 유려하고 스피디하게 움직이는 카메라를 따라 메인 조종실이며 복도, 의료실 등이 스쳐가는데 큰 변화는 없지만 흰색을 모티브로 삼고 조명을 키워 한결 모던한 느낌이다. 구형 몸체를 중심으로 커다란 엔진이 돌출된 엔터프라이즈호의 외부 디자인 역시 친숙한 모습 그대로다. 물론 CG의 발달에 힘입어 우주를 유영하는 이 눈부신 우주선의 위용이 그 어느 때보다 숨막히게 다가오는 건 사실이다. 그 와중에도 아직 덜 여문 커크의 반골 기질이 재치있는 대사들과 어울려 간간이 폭소를 자아내곤 하지만.

‘낙관론의 그림자’는 미국인을 사로잡을까

“혁신과 공조, 가능성, 모험, 그리고 낙관론의 정신, 그것이야말로 <스타트렉>의 정수다.” J. J. 에이브럼스의 선언대로 1960년대에 뿌리내린 <스타트렉>의 심장에는 냉전시대의 문화를 전복시키려는 대담무쌍한 정신이 숨어 있었다. 미지의 세계로 노를 젓는 이 선지자적인 함선을 차별이라곤 없는 평등한 파라다이스로 지켜내리라는 낙관론. 지구인, 나아가 외계 종족인 불칸, 클링곤까지 우주 평화라는 깃발 아래 굳건히 힘을 합칠 수 있으리라는 낙관론. 그 어떤 갈등에도 휴머니티는 마침내 승리하리라는 낙관론. 그렇다면 <다크 나이트>의 암울한 세계관이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불황의 그림자가 두터운 지금, 우주 저편을 끊임없이 탐험하고자 하는 지극히 미국적인 블록버스터는 장밋빛 미래를 맞을 수 있을까. 결과는 두고봐야 알겠지만, <스타트렉>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레너드 니모이의 말을 빌리자면, 한 가지는 확실하다. “<스타트렉>은 다시 궤도에 올랐다.”

J. J. 에이브럼스, 크리스 파인, 조이 살디나 인터뷰

“스판덱스는 못 입겠다고 했다”

-<스타트렉>의 팬이 아님에도 연출을 결심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 =(J. J. 에이브럼스) 시나리오가 워낙 좋았다. 그게 가장 큰 이유다.

-애호가가 아닌 입장에서 원작을 어떻게 연출하고 싶었나. =(J. J. 에이브럼스) 무엇보다 오리지널 시리즈를 존중하려 애썼다. <스타트렉>의 매력은 캐릭터가 다채로울 뿐 아니라 가족 이야기라 불러도 될 만큼 그들의 공존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 있다. 원작에서 가장 좋았던 게 낙관주의였는데, 이를 토대로 로맨스, 흥분, 모험, 스펙터클, 액션 등이 한데 어우러진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내 인생에서 다시 안 올 기회라고 생각했다.

-배우들에게 묻고 싶다. J. J. 에이브럼스와의 작업은 어땠나. 코스튬을 처음 입었을 때의 느낌도 궁금하다. =(크리스 파인) 제이제이는 대단하다. 친절하고 잘생기고 재미있고, (J. J. 에이브럼스가 “관대하다”고 말해달라고 속삭이자) 관대하기까지 하다. (좌중 폭소) 사실 나는 <스타트렉>에 큰 관심이 없었다. 윌리엄 섀트너가 커크 역을 이미 훌륭하게 소화한데다 원작의 팬들이 굉장한 주인의식을 갖고 있어서 긴장한 상태였다. 하지만 오디션장에서 제이제이를 만나고 나니 재미있게 작업할 수 있겠구나 싶더라. 사실 배역을 따내자마자 제이제이에게 스판덱스만은 안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웃음) 바보처럼 보일까봐 걱정했지만 막상 코스튬을 입은 채로 엔터프라이즈호를 내려다보니 모든 게 현실적으로 다가오더라. =(조이 살디나) 남자배우들은 배려해주던데 내 경우는 좀 다르더라. 의상이 점점 짧아지던걸. 다들 예뻐 보인다고는 했지만. =(J. J. 에이브럼스) 의상이 짧아진 게 아니라 그녀가 계속 자라고 있는 거다. (좌중 폭소)

-크리스 파인, 당신은 윌리엄 섀트너와 편지를 주고받은 걸로 안다. 혹시 편지에 뭐라고 썼는지. =(크리스 파인) 내 소개와 더불어 당신이 만들어낸 캐릭터에 누가 되고 싶지 않다, 넘버 원 커크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건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그 역시 축하한다면서 언제 한번 같이 밥을 먹자는 친절한 답장을 보내왔다. 내가 보낸 편지는 한통뿐이었다. 덧붙여 말하자면 그로부터 3주 정도 뒤에 아버지(배우인 로버트 파인)가 저가항공권을 판매하는 회사의 광고를 찍을 일이 있었다. 우연히도 섀트너가 그곳의 대변인이어서 그를 세트장에서 만났다고 하더라. 아버지가 그에게 다가가 “안녕, 아들”이라니까 무슨 영문인지 몰라 당황했다던데. (웃음)

(※위 인터뷰는 공동기자회견과 라운드테이블 인터뷰를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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