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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액세서리]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담배

푸에르토리코 작은 섬의 어느 여름날. 태풍이 짓밟고 간 섬을 복원하고자 열리는 자선 파티를 위해 헨리(진 해크먼)는 연설문을 준비한다. 빳빳한 턱시도 셔츠 윙 칼라 위에 정확하게 놓인 실크 보타이와 오른손 새끼손가락과 왼손 넷째 손가락에 각각 나누어 낀 보석 반지, 손에 든 하이볼 잔은 크리스털이고 문장을 고치는 필기구는 몽블랑이다.

<언더 서스피션>

<언더 서스피션>(Under Suspicion, 2000)에서 무엇이든 마음에 드는 것을 보면 “베리 엘리건트”라고 추임새를 넣는 헨리에게 일생의 목표는 고상한 삶인 듯 보인다. 돈이라면 아쉬울 일이 없고, 아름다움이 유일한 재능인 어린 아내와 섬에서 제일 큰 집에 살며 푸에르토리코의 가장 성공한 변호사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헨리의 삶. 그러나 어느 날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몰리면서 헨리의 호화로운 인생, 고상한 취향은 천장의 전구마저 깨진 너저분한 경찰서의 취조실로 불려간다. 이때부터 영화는 아주 더딘 템포로 헨리와 그의 아내 샨탈(모니카 벨루치), 형사반장 빅터(모건 프리먼)와 신참 형사 오웬스(토머스 제인)의 신경전으로 전개된다. 느린 화면으로 보는 탁구 경기 같은 공격과 리시브. 공이 오고갈 때마다 헨리의 천박한 사생활, 샨탈의 병적인 집착, 빅터의 자기 연민적 시기심, 오웬스의 무례한 혈기가 ‘짓이겨지듯이’ 드러난다.

처음 취조실로 불려갔을 때 헨리는 완벽한 턱시도 차림으로 빳빳하게 앉은 채 손에 든 코트를 내려놓지도 않는다. 이 저급한 곳에서는 조금도 더 머물지 않겠다는 거만한 의지랄까. 그리고는 필터를 골드로 싼 초콜릿색의 가느다란 담배를 꺼내 피운다. 빅터와 오웬스로서는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아름다운 담배를 든 채 이 부유한 용의자는 말끝마다 ‘엘리건트’를 섞는다. 결국 빅터는 시체 사진을 헨리의 얼굴에 들이대며 “그럼 이것도 엘리건트한가?” 조롱하듯 묻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 우아하고 고상한 담배는 도대체 뭔가 궁금해진다. 영국제 ‘소브라니 블랙 러시안’이거나 넷 셔먼의 ‘블랙 앤드 골드’? 재미있는 건 이 둘 중 어느 하나의 담뱃갑에는 ‘모스트 엘리건트 시가렛 인 더 월드’라고 써 있단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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