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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액세서리] 포드를 이기는 안경

발명가이자 교수인 로버트 컨스는 스스로를 변론하던 법정에서 찰스 디킨스의 책 <두 도시 이야기>를 꺼낸다. “이 책에 있는 단어들은 모두 사전에 나와 있는 겁니다. 디킨스가 한 일이라고는 그 단어들을 제 식대로 배열한 것뿐이지요. 그렇다고 이 책이 디킨스의 작품이 아닙니까?” 옳거니. 포드쪽 참고증인으로 나선 전기기술 박사의 “로버트 컨스의 와이퍼는 시중의 부품을 재조립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경솔한 주장은 이 한방으로 구린 냄새만 풍기고 잽싸게 꺼졌다. 의기양양하게 배심원을 둘러보는 컨스의 금테 안경이 반짝 하고 빛난다. 천재적 착상(Flash of Ginus)이란 이런 거다. 그 순간에 상관도 없는 찰스 디킨스를 끌어들이는 것.

영화 <플래시 오브 지니어스>는 포드 자동차와 컨스 교수의 ‘와이퍼’ 특허권을 둘러싼 12년간의 논쟁을 그린 실화다. 그렉 키니어와 더모트 멀로니처럼 이렇다 할 작품은 없지만 꽤 매력적인 배우들이 출연하고 1940년대 미국 남자들의 패션과 아이스크림 위에 통통한 체리를 올려주는 미국식 다이너, 길고 우아한 아메리칸 빈티지카들이 깨끗한 화면 위에 차례로 놓인다. 컨스(그렉 키니어)는 대부분 슈트 차림에 단정한 헤어스타일, 손가락에 ROTC 반지를 낀 흔한 스타일의 남자로, 검정 웰링턴 안경을 쓴 얼굴은 고지식해 보이는 한편 어딘지 어수룩하다. 그는 결국 와이퍼를 다 만들어놓고도 그걸 포드 자동차에 공짜로 넙죽 갖다바치는 꼴이 된다. 소심한 남자일수록 분노는 강해서, 컨스는 포드에 뺏긴 자신의 발명품과 명예를 되찾기로 결심한다.

어느 날 그는 스트레스성 건선피부병으로 자꾸만 손등을 긁는 아내에게 “이젠 우리 성품도 바꿔야 해”라고 말한다. 곧 컨스는 변했다. 특허법의 사례를 연구하고 합의금을 거절하고 대기업을 상대로 한 싸움에 주저하는 변호사들을 대신해 스스로 제 자신의 변호를 맡기로 결심한다. 몇년이 지나긴 했지만 컨스의 얼굴은 이전과 다르다. 대체로 각오와 표정 때문일 테지만 안경도 달라졌다. 그는 이제 사각의 금테 안경을 쓰고 있다. 컨스는 결국 포드를 이긴다. 냉정해 보이는 안경 덕분일까? 그랬으면 좋으련만. 컨스가 돈과 권력이 다 우스운 포드를 상대로 할 수 있는 일이란 건 결국 그런 종류의 사소한 노력을 몇 천개쯤 모으는 것이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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