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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 그의 영화] 그래 목숨 걸고 투표해야해
김연수(작가) 2009-05-21

딸과 함께 애니메이션 <초코초코 대작전>을 보다가 현실과 허구 사이를 오락가락

영화배우도 된 마당에 이번 어린이날에는 영화를 보면서 보내기로 결심하고 아침부터 딸과 함께 집에서 가까운 극장으로 나갔다. 그간 조조상영을 보면서 자유직업인의 이점을 한껏 활용했던 나로서는 입이 쩍 벌어질 수밖에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아침부터 극장에 나와 있었다. 그런 식으로 1년에 한번뿐인 어린이날을 때우려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좀 놀라웠다. 어쨌거나 우리에게는 세개의 영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제일 먼저 <몬스터 vs 에이리언>, 그 다음 <케로로 더 무비: 드래곤 워리어>, 마지막으로 <초코초코 대작전>. 그중에서 우리는 <초코초코 대작전>을 보기로 했다. 뭔가 달콤한 내용일 것 같아서.

그러나 보는 내내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더라. 내용은 다음과 같다. 투표에 의해 건강최고당의 헬시 총리가 집권한 이후, 새 정권은 건강 제일을 내세우면서 몸에 좋지 않은 초콜릿을 금지시키는 법안을 통과시킨다. 이 법안에 따르면 초콜릿을 제조하거나 판매하는 사람은 물론 그걸 먹는 사람까지도 경찰에 구속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우리가 건강을 중시하는 총리를 뽑은 것이지, 어디 초콜릿을 먹지 못하게 만드는 총리를 뽑은 것이냐고 반발하며 시민광장에 모여들던 국민들도 경찰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진압 작전으로 사람들을 강제 해산하고 연행하자, 하나둘 자신들이 괴물을 뽑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국민들은 두 가지 덫에 걸렸는데, 하나는 자신들이 직접 투표해서 그 괴물을 뽑았다는 점이며(이른바 ‘국개론’), 또 하나는 국민이라면 정권이 제정한 법률의 바깥을 상상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는 점(그러니까 ‘법치’)이었다. 국민들의 저항은 이 두 가지 덫에 의해 무력화된다. 정권의 주된 공격 방법은 ‘우리를 뽑은 사람들은 너희들이다’와 ‘모든 불법적인 것은 나쁜 것이다’라는 논리를 번갈아 사용하는 것이다.

두 가지 덫, 국개론과 법치에 무력화된 우리를 마주하다

그리하여 헌법에 보장된 집회 및 결사의 자유와는 무관하게 주간이든 야간이든 모든 집회는 이 나라에서(어느 나라에서?) 금지된다. 정권은 초콜릿 금지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집회를 가지는 건 불법행위라고 말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불법행위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과 합치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공권력은 합법 영역에 대해서 사유하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괜찮고 그 다음부터는 법적 논란의 영역이라는 식으로 신중하게 접근하지 않고, 오직 불법의 가능성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공권력은 그 불법의 가능성이라는 잣대로 기본권을 포함한 국민의 모든 행위를 구속 수사할 수 있다고 믿는다(이렇게 되면 ‘먼지털이’로 전락할 가능성이 많지만, 어쨌든). 그렇기 때문에 신고된 집회마저도 원천봉쇄하고 참가자들을 불법시위자로 연행한 뒤 엄중처벌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 기본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나오니 바로 ‘중딩 3년생’들이다. 이 중학생들의 주장은 간단하다. 왜 초콜릿을 먹을 수 없는가? 이에 대한 정권의 설명은 그건 불법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초콜릿을 먹는 게 불법적이라면 애당초 법이 잘못된 게 아닌가? 중학생들이 다시 되묻는다. 법의 잘잘못을 따지는 일은 정권의 영역을 벗어난 일이다. 법 자체가 그 정권의 사적 이익에 부합되게 제정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되물음에 대해 정권은 이런 식으로 빠져나간다. 나를 뽑은 건 너희들이지 내가 아니다. 고로 그런 법을 만든 건 너희들이지 내가 아니다. 나는 위임받은 권력을 정당하게 행사할 뿐이다. 어른들은 이 덫에 빠져서 무기력해졌지만, 중학생들에게는 어림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모든 법률의 효력을 정지시키고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다시 사유하자. 왜 초콜릿을 먹으면 안되는가?

뿔난 중딩들 vs 촛불소녀, 초콜릿 경찰 vs 민주 경찰

그리하여 이 무서운 중딩들은 ‘초콜릿 언더그라운드’라는 지하조직을 만들고, 헌책방을 뒤져 인터넷에서 검색이 금지된 초콜릿 제조법을 알아낸 뒤 밤마다 모여서 초콜릿을 먹는 불법집회를 연다. 정권과 그들의 사병으로 전락한 경찰, 그리고 알아서 스스로 통제하는 언론은 이들 중딩들을 체제전복세력으로 규정하고 검거에 나선다. 말하자면 이놈의 정권은 초·중·고와 싸우는 셈이다. 결국 경찰은 다른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채증자료를 토대로 불법집회에 적극 가담한 증거를 다수 확보한 중학생 한명을 연행해 구속시킨다. 출동 직전, 경찰본부장의 독백은 경찰 수뇌부가 집회에 나선 이 중학생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보여준다. “법을 어기는 쓰레기 같은 놈들.”

경찰이 친구를 강제 연행하는 데 흥분한 스매져가 정부의 편을 드는 반장 프랭키에게 소리친다. “데이브가 뭘 잘못했는데? 물건을 훔쳤어? 사기를 쳤어? 사람을 죽였어? 이런 사회가 무슨 건강한 사회야.” 이런 사회가 무슨 건강한 사회냐고 비아냥거리는 데에는 정권의 통제를 받는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는 건강최고당 헬씨 총리가 나와서 연방 초콜릿 없는 건강사회를 만들어가자고 떠들어댔기 때문이다. 초콜릿에 대한 정당한 욕구를 강제 진압하면서 국민들의 속은 부글부글 끓어서 마침내 폭발할 지경이 되는데도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건강최고당은 시민광장에서 무슨 페스티벌인가의 개막식을 한단다. 한마디로 제 무덤을 파는 것이다.

며칠 전에 서울광장에서 열린 이 개막식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더라? 만화영화를 보는데 이게 현실인지 허구인지 헷갈린다면 그 사람의 정신세계의 오묘함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바로 그꼴이었다. 어린이날을 맞이해서 딸과 극장에 갔다가 정부 말대로라면 폭력시위를 선동하는 좌파영화를 봤다고나 할까. 연초에 용산참사를 보면서 앞으로는 목숨 걸고 투표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만화영화의 주제 역시 정치를 외면하지 말고 반드시 올바르게 투표하자는 것이었다. <초코초코 대작전>은 이명박 시대의 컬트 작품이 될 확률이 매우 높았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인 건 초콜릿을 사수하려는 학생들을 진압하려는 경찰들 이름이 ‘초콜릿 경찰’이라는 것. 그게 꼭 ‘민주 경찰’이라는 말처럼 들렸다. 권력이 비판세력의 언어까지 선점하면 독선은 불가피하다. 마침 영화를 보고 난 뒤 뉴스에서 들으니 청와대로 초청한 어린이들 앞에서 대통령은 퇴임한 뒤에 ‘녹색운동가’가 되겠다고 말했다더라. 이 &#47973;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