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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후반, 예고없이 찾아온 사랑 <우리도 사랑한다>
이화정 2009-05-27

synopsis 60대 중반의 잉에(우루슬라 베르너). 수선일을 하던 중 그녀는 옷수선을 의뢰한 76살의 칼(호르스테 베스트팔)과 격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30년 넘게 남편 베르너(호르스테 레흐베르그)와 단란한 결혼생활을 지켜온 유부녀다. 뒤늦게 찾아온 새로운 사랑. 자신의 열정을 일깨워준 생의 마지막 사랑 앞에서 잉에는 설레는 소녀처럼 들뜨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에게 드는 죄책감을 지울 수 없다. 죄의식을 못 이긴 잉에는 결국 남편 베르너에게 자신의 외도를 고하고 평온했던 가정은 순식간에 상처로 얼룩진다.

30년간,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지켜보며 함께 살을 맞댄 남편 베르너는 기차 여행을 좋아한다. 남편과 함께 기차 여행을 하면서 부인 잉에도 그 여행이 좋아졌다. 그녀는 창밖의 아름다운 풍경이 아름다워서 기차여행이 즐겁다고 한다. 그런데 60대 중반에 만난 남자 칼은 그녀에게 말한다. ‘난 자전거 여행을 좋아한다’고. 자전거 여행은 그저 바라만 보는 기차 여행과 달리 가다가 맘에 드는 곳이 있으면 내려서 모든 풍경을 만지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잉에에게 남편이 기차를 타고 가는 정적인 여행과 같다면, 뒤늦게 만난 남자 칼은 익사이팅한 자전거 여행과 같은 존재다. 격정적이고 열렬하며 가슴 뛰고 살아 있다.

<우리도 사랑한다>는 인생의 후반부, 어쩌면 더는 이런 감정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는 순간, 예고없이 찾아온 사랑을 그린다. ‘이렇게 나이 들어서 이게 무슨 꼴이냐’고 남편이 그녀를 탓해도, 잉에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그 일에 대해서 자제할 수가 없다. 그건 바로 이 주책맞은 사랑이야말로 생의 환희이자 여전히 자신이 늙고 병들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가장 확실한 신호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 ‘Cloud 9’이 가장 행복한 순간을 뜻하는 것처럼 이 사랑은 지울 수 없을 정도로 짜릿하다.

안드레아 드레센 감독은 세 노인에게 닥친 사랑을 가감없이 묘사한다. 영화의 초반, 잉에와 칼의 5분간의 정사신을 잡는 카메라는 집요하고 대담하지만 그건 단순히 선정적이라거나 엿보는 시선에 머물지 않는다. 카메라 앞에 놓인 세 노인의 몸은 스스럼없다. 좁은 집 안에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별 말 없이도 서로 통할 수 있는, 일상 속에 위치한 섹스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우리가 ‘늙었다’고 표현하는 영화 속 노인들은 그들보다 더 늙은 사람들을 보며 자신을 반추하고, 또 더 늙은 사람들의 성을 농담으로 삼을 줄 안다. 결국 주관적인 입장으로 보자면, 그 누구도 늙지 않는 젊음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인’이라는 꽤 자극적인 소재를 가지고 오지만 이 영화의 방점은 거기에 찍히지 않는다. 40대의 사랑이나 70대, 80대의 사랑은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 혹은 별로 알고 싶지 않아할 뿐 결국 같은 농도다. 소수자를 그렸지만, 이 영화의 온도는 그래서 꽤 높고 설득력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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