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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가 만난 사람] 지식소매상 유시민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인터뷰를 일주일 앞둔 토요일, 유시민은 급작스러운 상(喪)을 당했다. 그리고 나도 상을 당했다. 본래 긴 망설임 끝에 허락된 인터뷰였다. 5월 초 그는 회의에 잠겨 있었다. 사람의 말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만남을 주저했다. 어딘가에는 “나는 지금 망명 중이다. 내적 망명이다. (중략) 철골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도시 한가운데 살면서 정신적 유배생활을 하고 있다”고 쓰기도 했다. 5월23일 아침, 유시민은 스스로 처한 유배로부터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끌려나왔다. 지난 6년간 그의 삶과 떼어놓을 수 없었던 사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새벽 허공에 몸을 던졌다. 지난 3월 발간된 저서 <후불제 민주주의>에서 유시민은 세계 민주주의 역사 발전의 성취를 담은 헌법에 대해 대한민국은 뒤늦게 할부금을 치르고 있다고 썼으나, 그 비용에 이런 비탄까지 포함될 줄은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2008년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하고 공부하는 생활로 돌아간 유시민이 명함에 새긴 직함은 ‘지식소매상’이다. 그의 서재는 고금 학자들의 연구와 본인의 경험에서 추출한 지식을, 먹기 좋은 메뉴로 구성하고 개성적인 레시피로 조리해 일반 독자에게 공급하는 작은 부엌이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와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의 저자 유시민은 몇 세대에 걸쳐 10대 후반, 20대 초반 젊은이들에게 학회 선배 같은 존재였다. 시대가 강요한 양심과 법률의 비극적 모순을 유려하게 논파한, 서울대 프락치 사건 ‘항소이유서’는 사회 변혁을 꿈꾼 청년들이 애장한 격문이었다. 유시민은 지식을 단단한 벽돌로 구워 명료한 구조의 ‘집’을 짓는 재능이 탁월한 저자다. 머릿속이 서랍과 칸막이로 구성된 게 아닐까 싶을 지경이다. 신통하게도, 간명하고 단정한 그의 문체는 느낌표나 말줄임표의 추임새 없이도 독자를 흥분시키고 행동하도록 들쑤신다.

국회의원 시절 그를 취재했던 <한겨레> 김의겸 기자는 유시민을 가리켜 비등점이 낮은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남들은 100도에 끓는데, 80도만 돼도 부글거린다는 뜻이다. 그를 오래 알아온 도서출판 돌베개의 한철희 대표는, 살면서 주어진 시대적 상황을 한복판에서 돌파하다보니 정치계에 입문했고 냉혹한 공격이 일상인 환경에서 더욱 날선 캐릭터로 보이게 된 경우라고 말했다. 과연 유시민은 바른말을 밉살맞게 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현대 계열사는 그룹의 행태로 보아 기업 상호를 중세나 고대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거나 “운하 파기 전에 국민 마음속의 골부터 먼저 파는 위험성이 있으므로 이 공약은 잊어버리시면 좋을 것 같다”는 말은 유시민식 정중한 냉소의 맛보기다. 무심함으로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사소한 생채기를 내는 일도 잦단다. 이를테면 동료가 담배 끊었다는 얘기를 듣고도 번번이 담배 한 개비 빌려달라고 하는 식이다. 살가운 사람은 아니리라 예상했건만 막상 마주한 그는 감정 표현이 세세하고 제스처가 여성적이었다. 단지 그는 공적 생활에서 굳이 정서적 충족감을 구하지 않는 유형으로 보였다. 그는 시민의 각성을 희망하는 정치인이지만 인간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없어 보인다. “중요한 것은 마음먹었을 때 동시대 사람들에게 기여할 수 있는 용기, 쓸모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언젠가 대학생들에게 조언한 말은 본인의 신념이기도 할 터다. 유시민에게 귀기울이며 나는 드라이아이스를 생각했다. 냉랭하지만 손을 대면 불꽃처럼 뜨겁고, 녹아 흐르느니 연기가 될 사람. 낙타를 닮은 속눈썹이 차양을 드리운 곱상한 눈은 물기를 비쳤다가도 금세 파란 빛을 발했다.

-서울역 분향소에서 조문객에게 “죄송합니다”라고 인사하시던데 그 말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맨 처음에는 “감사합니다”라고 했는데 10분도 안되어, 이건 적당한 말이 아니구나 감이 왔어요. 보통 초상집은 망자, 상주, 문상객이 있는 구조예요. 누군가의 죽음이 상주에게 슬픈 일이니 그를 위로하러 온 사람들이 조문하는 건데 국민장은 조문객도 전부 상주니까 감사하다는 말이 경우에 맞지 않다고 느껴졌어요. 다 같이 상주인데 그중에서 저 같은 사람은 정치활동하면서 망자를 지켜주지 못한 경우니, 죄송하다는 말씀이 적절할 것 같았습니다. 심지어 제게 “정말 감사합니다. 절대 잊지 않을게요”라는 분도 있었는데, 자신이 심리적인 상주면서도 오래 빈소에 머물지 못하고 저희는 종일 자리를 지켜주며 대신 상주 노릇 해주니 고맙다는 뜻이었을 겁니다.

민주주의란 욕망이 욕망을 통제하는 제도

-국민장 기간 중 네 차례에 걸쳐 손글씨로 추모시와 메시지를 써서 인터넷을 통해 공개됐습니다. 내용을 떠나서 메시지를 전달한 형식에서 뜨거움, 분노가 느껴졌는데요. =복사용지와 펜이 있기에 잠시 쉬는 동안 썼어요. 상황실 컴퓨터도 있었지만 공무원, 당직자, 기자, 지지자들이 뒤섞여 있어, 작업할 환경이 못 됐어요. 가신 어른의 삶, 인간됨, 내가 그분의 생에서 중요하게 보는 것들을 저처럼 황망하기만 한 사람들이 반추할 때 참고하라고 쓴 거죠. 기자들도 자꾸 소감이 어떠냐고 물어대는데 일일이 대답하기가 고달프기도 했고요. 두 번째 글(<넥타이를 고르며>)을 쓴 것은… 영결식장에 가기 싫었거든요. 국민장을 위해 받아들이긴 했지만, 가해자가 조문하러 와서 헌화하는 일종의 가면무도회 같은 행사였죠. 우리 삶에는 그처럼 논리적으로는 성립할 수 없는 것이 많이 존재해요. 장의위원으로서 안 갈 수 없지만, 저는 정당성이 기본적으로 없고 역사적으로 단죄받을 영결식이라고 봤어요. 그 마음을 표현한 것이죠.

-봉하마을에서 선생님이 <한겨레>를 화를 내며 내던졌다는 소문을 전해 들었습니다. =이런 얘기 하면 원망처럼 들려서 안되는데…. 노 대통령은 퇴임 뒤에 조중동은 보지 않았어요. 그들은 어차피 비난하는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비난할 것이라 여겨 개의치 않으셨어요. 이번 검찰 수사 진행 중에는 사저를 찾아가보면 눈에 띄는 신문이 <한겨레>와 <경향신문>뿐이었어요. 그런데 지난 두달간 두 신문의 보도, 그건 죄악입니다. 죄악. 조중동과 똑같이 ‘받아쓰기’했을 뿐 아니라…. 제가 <한겨레> 20년 독자인데 한달 동안 무서워서 신문을 펼치지 못했어요. 포털로 기사는 읽었지만 지면으로 보기는 끔찍했어요. 기자들이 인터뷰하자고 연락했기에 내가 무서워 읽지 못하는 신문에 어떻게 인터뷰를 하느냐고 반문했죠. 어느 기자에게 이런 법이 있느냐고 했더니 대통령은 인권이 없대요. 그래서 전직 아니냐 했더니 공인은 인권이 없대요. 대통령 돌아가시고 나서 여러 신문들을 보며 다시 한번 끔찍했어요. 불과 1, 2주 전에 노무현이 없어져야 진보의 새로운 길이 열린다고 썼던 칼럼니스트가 그 손으로 수백만의 노무현으로 부활하라는 칼럼을 쓰고 있어요. 제가 이럴진대 당사자는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노무현 자체가 재앙이고 노무현이 있는 한 진보가 재기할 수 없다는 글을 읽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후불제 민주주의>를 요약하면, 헌법에 다 있으니 법대로 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읽으면 학생을 위한 입문서 같은데 다 읽고나면 아주 기본적인 논리만 갖고도 현 정권의 행보를 완벽히 반박할 수 있다는 고수의 여유가 보입니다. 부채로 칼과 창을 제압한다고 할까. =<후불제 민주주의>는 물론 재미로 헌법을 알아보자는 책은 아닙니다. 우리 삶에서 논란이 되는 현상에 대해 규범적 판단을 할 때 그 준거로 헌법의 오랜 규정을 대보면 복잡하게 논쟁하지 않아도 분명하게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죠.

-우리 사회는 헌법에 정한 민주주의의 비용을 뒤늦게 치르고 있다는 내용을 쓰셨는데요. 최근 들어 남이 빼앗아가려고 해야, 가진 것을 지킬 힘과 가질 자격이 내게 있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시청 앞 광장 문제가 헌법이 완전히 짓밟힌 대표적 사례예요. 날마다 짓밟히고 있죠.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는 실제로 찾아먹지 않으면 빼앗겨요. 헌법재판소로 가는 길은 실제로 너무 힘들고 국민 개개인이 자기가 지닌 헌법적 권리로 인지하고 나의 이 권리를 건드리면 가만 안 둔다는 의지가 있어야 비로소 제 것이 되는데 우린 갈 길이 멀죠. 권력자가 선의를 갖고 있을 때는 민주주의가 작동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금방 꽝 되는 거예요. 대통령을 뽑을 때 국민이 예측을 못한 거죠. 이미 누리는 헌법적 권리는 기본으로 다 지켜주고, 말하자면 한정식에다 ‘경제 살리기’라는 일품요리를 추가해주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니 기본은 다 빠지고 약속한 일품요리도 안 올라오고 있잖아요? 정권을 바꾼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학습하는 중이죠.

-‘후불제’라는 표현에는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오랜 속설이 포함되는 건가요? =살벌한 표현이지만 똑같은 이야기죠. 다만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면 좌빨이 준동한다고 난리가 나는데 “세상엔 공짜 점심이 없다” 이러면 보수들이 좋아하죠. (좌중 웃음)

-몇몇 저서를 읽어보면 선생님은 궁극적으로 주권자인 시민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처럼 이타적 개인을 상정하진 않아도 역시 이상적인 면이 있고 정치인을 계몽자로 상정하는 거 아닌가요? =민주주의란 기본적으로 욕망이 욕망을 통제하는 제도예요. 이기적 행동을 용인하는 거거든요. 각자의 권리인식이 먼저죠. 헌법의 기본권은 재산의 과다, 교육수준, 연령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허용된 것이지만 향유주체는 개인이에요. 인식하면 누리고 인식하지 못하면 법 위에서 잠을 자는 것이죠. 그러니까 여기서 계몽은 누가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체험과 학습을 통해 내 권리를 알아가는 과정이고 그것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연대가 필요해요. 타인에게 주어지지 않으면 내게도 주어지지 않으므로, 필연적으로 헌법의 규정은 연대의식의 발생을 내포하고 있어요. 당장 자신의 권리를 침해당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침해당하면 격분하면서 시민행동이 조직되는 것이죠. 그게 잘되는 나라가 민주주의 선진국이고요. 물론 대통령이나 권력자가 계기가 될 순 있어요. 대통령이 선의를 가지고 국민이 권리를 맘껏 향유하도록 해줌으로써 그 다음에 누군가 빼앗아가려고 할 때 마찰이 생기게 하는 방식으로 계몽에 기여할 수도 있고 혹은 이미 부여된 것을 자기가 빼앗아가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계몽에 기여할 수도 있고. (좌중 웃음) 전자가 목적의식적 계몽주의, 후자를 결과적 계몽주의라고 생각해요. 노 대통령은 목적의식적 계몽주의에 빠져 고생했고 이 정부는 민주주의가 뭔지 몰라서 결과적 ‘계몽군주’ 역할을 하는 셈이죠.

아버지는 굉장한 이상주의자셨어요

-대구가 고향이십니다. 자신 안에 TK적 면모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 들이받고 그런 건 좀 있죠.

-4남 2녀의 다섯째입니다. 여자형제가 많았다는 사실이 남긴 흔적이 있을까요? 요리도 잘하신다고 들었는데요. =두살 아래 여동생, 두살 위, 네살 위 누나가 있었으니 여자형제들 사이에서 자랐죠. 초등학교 4학년까지는 누나보고 언니라고 불렀던 기억이 나요. 결혼 전까지 6년 정도 자취했어요. 식당에 가면 입에 맞는 맛있는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졌나, 젓가락으로 헤집어서 재료가 무엇이고 어떤 순서로 버무렸겠다 짐작한 다음 집에 가서 만들어보면 맛이 비슷하게 나와요. 샤브샤브, 구절판도 그렇게 만들고, 돼지고기 삶으면서 이것저것 넣어보다가 인스턴트 커피를 반 숟갈 넣었는데 맛있더군요.

-맛을 그리는 능력이 있으시군요. 다른 가사일도 잘하세요? =요리를 가사일 중에선 제일 괜찮게 생각해요. 집안일이라는 것이 요리를 빼면 모두 원위치시키는 노동이잖아요. 유일하게 최초와 달리 새로운 무엇이 나오는 건 요리밖에 없어요. 제일 싫어하는 일은 다림질이죠. 입식 스팀다리미 사달라고 졸랐는데 아내가 요새 양복도 안 입으면서 뭘 그런 걸 사냐고, 책 팔리는 거 봐서 사준대요. (좌중 웃음)

-남매 중 세분이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도 강직하고 탈권위적이었다는 회고를 읽었습니다. 그랬다면 학생운동에 대해 가족의 이해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아버지는 역사 교사셨는데 굉장한 이상주의자였어요. 80년 5·18 당시 제가 체포돼 가족들이 한달 반 가까이 행방을 몰랐어요. 합수부에서 구치소로 가는 도중 관악경찰서에 1주일 있을 때 아버지가 찾아오셨어요. 보자마자 두팔 들어봐라, 앉았다 일어났다 해봐라 하셨어요. 그리고 가셨어요. 사지 멀쩡하니 됐다고 가신 거죠. 군법회의에서 재판받은 날도 참관을 오셨다는데, 재판장이 공소장을 읽고 똑같은 상황이 오면 다시 이런 일을 하겠냐고 묻더군요. 자존심이 상했어요. 지금 생각으로는 똑같은 상황이면 똑같이 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했더니 화를 벌컥 내더군요. 전날 집에서 신체검사통지서를 받은 아버지는 일말의 기대를 품고 오셨는데 제 대답을 듣고는 그냥 나가셨대요. 저놈, 나오긴 틀렸다고. 근데 전 그날 저녁 풀려나서 이틀 뒤 새벽에 군에 갔습니다.

-서울대 프락치 사건으로 재판을 받을 때 쓴 ‘항소이유서’는 명문으로 회자됐고 청년들이 널리 돌려읽었습니다. ‘항소이유서’를 읽으며, 상상의 독자가 누구였을까 궁금했습니다. 판사가 읽으라고 쓴 것이라기보다는 외부 독자를 의식한 팸플릿 같거든요. 그리고 첫 저서 <거꾸로 읽는 세계사>의 첫장이 드레퓌스 사건인데요. 혹시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를 염두에 두셨나요? =당시에는 <나는 고발한다>가 번역돼 있지 않았어요. 관련이 있다면 유신시대 지학순 주교가 쓴 <정의가 강물처럼>에 실린 상고이유서였죠. 자료도 메모지도 없으니 예전에 읽은 책들의 내용을 떠올리며 원고지 110매쯤 되는 글을 이틀 반 동안 총 10시간에 걸쳐 미농지 넉장에 먹지 석장을 끼워 잉크 없는 볼펜으로 꾹꾹 눌러썼어요. 퇴고도 할 수 없었죠. ‘항소이유서’는 밖으로 내보낼 생각은 전혀 없었고 정말 억울해서 판사 보라고 쓴 거예요. 근데 이돈명, 홍성우 변호사가 보시고 우리끼리 읽기 아깝다고 저희 누나를 불러서 밖으로 나가게 된 거죠. 그렇게 널리 읽힐 줄 알았으면 100원씩이라도 받을걸. (웃음)

-‘항소이유서’에는 제갈공명의 <출사표> 같은 고전적 글쓰기의 느낌이 있는데, 혹시 한문학을 좋아하십니까? =아이고, 그런 글과 어떻게 견줘요. 그저 마침 그 어름에 누군가가 <맹자>를 읽어보라고 줬고 구치소에서 평소 읽고 싶던 <사기열전> 두권을 차입해서 읽던 중이었어요. 그래서 주나라가 망한 이야기 같은 것이 예화로 등장했을 거예요.

정치인의 일상엔 짐승의 비천함이…

-언젠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싶은 글을 쓰는 것은 누구에게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고 쓰신 적이 있는데요. 독서와 글쓰기는 스트레스 없는 즐거운 활동인가요? =재주가 이것밖에 없는 데 딴 일을 하려니 고달프죠. 그러나 책쓰기는 제가 좋아하는 일이고 정치는 본질적으로 더욱 뜻 깊고 위대한 일이에요. 좋은 정치를 편다면 몇 천만 국민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으니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중에 그만큼 고귀한 게 어딨겠어요? 그래서 다른 직업보다 고양된 심성과 통찰력, 책임, 용기, 희생을 요구해요. 성인의 고귀함이 있는 영역이죠. 근데, 정치인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짐승의 비천함이 있어요. 야수적 탐욕도 함께 있고요. 그래서 하루하루가 너무나 괴로워요. 정치를 하려면 국회의원직을 유지해야 하니까 효도잔치 가서 노래하고 초등학교 총동문체육대회 가서 텐트마다 돌며 소주 먹고 하는 거죠. 그런 일을 즐기는 정치인도 있으나 그런 사람은 성인의 고귀함에 도달하기 어려워요. 반면 정치에서 고귀함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런 일상이 괴로워요.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기 위해 야수적 탐욕을 상대하며 짐승 같은 비천함을 감수하는 일, 절대 아무나 못하는 거예요.

-<MBC 100분토론> 400회 특집을 기한 여론조사에서 대표논객 1위로 선정되셨습니다. 글과 말 가운데 어떤 도구로 사고를 표출할 때 더 유창하고 자유롭다고 느끼나요? =정치하는 동안 논객 1위로 뽑히지 않아 다행입니다. 정치하면서 1위로 뽑혔다면 어떤 문제에 접근할 때 해결을 중심으로 임하기보다 주로 문제를 드러내는 분석, 해석에 치중했다는 뜻이니 제대로 정치 못했다는 반증이죠.

-보통 사람은 말과 글의 밀도 차이가 많이 나는데 선생님의 경우 큰 차이를 못 느끼겠어요. =그건 글이 형편없다는 뜻이죠. 글이 말보다 훨씬 밀도가 높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니까요.

-‘글 잘 쓰는 법’을 묻는 질문에 “박경리 선생의 <토지> 1, 2부를 5회 이상 읽어라”라는 구체적 충고를 한 적도 있는데요. =저는 따로 글쓰기 훈련을 받은 적도 대가의 작품을 필사해본 적도 없어요. 그런데 좋은 책을 여러 번 읽을 때 내 글에 도움이 된다는 걸 느껴요. <토지>는 어휘와 문장 용례도 굉장히 다양하고 같은 어휘도 어떻게 다른 단어와 어울리면서 다른 의미를 만들어내는가를 보여주죠.

-선생님 저술의 간결한 문체로 미루어볼 때 문학이 아닌 법조문이나 경제학의 수식에서 아름다움을 느낀 적도 있을 거라는 짐작이 드는데요. =과문하지만 우리나라 판결문에서는 아름다움을 느낀 적이 없고요. 독일에서 공부할 때 읽은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 판결문 전문 두편을 기억하고 있어요. 첫 번째는 예수가 매달린 십자가상을 교실마다 걸도록 돼 있는 바이에른주 교육법에 대해 종교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위헌판결을 낸 판결문이었어요. 다른 한편은 아우슈비츠를 조작이라고 주장하는 일을 처벌하게 돼 있는 법이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주장한 우익단체의 위헌 소송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판결문이었어요. 표현의 간결함과 정밀함, 논리적 연쇄의 치밀함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이 있었죠. 수학도 잘은 못하지만, 말로 하면 두세 페이지의 설명을 한줄로 정리해버리는 수식엔 압축의 아름다움이 있어요. 몇개의 공리를 토대로 정리를 쌓아나간다거나 배리법을 이용해 반증을 함으로써 명제를 무너뜨리는 과정도 아름답죠.

-취미로 낚시와 축구를 즐기시는 걸로 아는데, 각각의 낙은 무엇인가요? =낚시는 그냥 물만 보고 아무 생각없이 시간 보내기 좋은 레저예요. 항상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제게 는 쉼표 같은 것이죠. 축구는 지난해 5월 부상당한 이후로 1년째 못하고 있어요. 포지션? 이 나이 되면 아무 데나 끼워주면 해야지 포지션 따질 처지가 아니에요. 야구도 좋아해요. ‘시민광장’ 내에 부산, 울산, 고양, 대구 네 군데 야구팀이 있어서 6월에 U리그를 개최한대요.

스타 정치인은 호랑이 등에 올라탄 사람

-정치인 생활을 하면서도 글쓰는 이로서 정계, 정치인, 공무원에 대한 관찰을 멈출 수는 없었을 것 같아요. =그게 문제인데 관찰자적인 심성이나 태도가 있기 때문에 내부 메커니즘에 몰입이 잘 안되는 거예요. 1998년부터 1년간 학술진흥재단에서 일했는데 6개월이 지나니 내 권한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끝났고 CEO의 결심만 기다려야 했죠. 국회의원 보좌관을 할 때는 1월1일 눈뜨면 12월31일까지 1년이 훤히 보였어요. 가을이면 국정감사 예결위 들어가고, 몇월에는 어떤 민원이 주로 발생하고 계절별 지역구 행사는 무엇이 있고 똑같죠. 정치인 중에는 안정되고 예측 가능한 그 생활에 맞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성격상 반복되는 일을 잘 못해요. 책쓰기는 일은 같아도 매번 다른 책을 쓰니 괜찮아요.

-참여정부 국정체험담을 <계간 광장> 신년호에 기고하셨습니다. 공무원들에게 보내는 가이드와 같은 내용이었는데요. =관료조직이란 특별히 경계하고 점검하고 격려하지 않으면 저절로 인간을 억압하는 시스템이에요. 서열화, 상명하복, 복지부동, 눈치보기, 찍어누르기, 줄세우기, 핑퐁치기 등이 개인의 의도와 관계없이 생래적으로 존재하죠. 핑퐁치기요? 예를 들어 장애인 이동권 문제라면 복지부에서는 건설교통부로, 그곳에서는 다시 복지부로 보내기를 반복해서 왔다갔다하다 지쳐 떨어지게 하는 거죠. 조직의 경향성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강력한 대항력을 가해줘야 완화돼요. 인사, 훈시, 표창을 통해서 낡은 관행을 깨거나 부하직원의 창의성을 살려주는 간부, 혁신적 아이디어를 내는 직원을 북돋워주지 않으면 구습대로 가요. 민간조직과 달리 관료조직은 장관이 하라고 해도 듣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이 사람이 왜 움직이지 않는지 살펴야 해요. 책임지기 싫어서라면 장관 사인 밑에 부기해서 “실무자 반대에도 불구하고 장관이 관철시켰다”는 설명을 써주고, 이력을 보아하니 이해관계의 그물망에 얽혀 있는 눈치면 자리를 바꿔줘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장관은 직원들이 왜 일하지 않는지 신경질만 내다 시간을 다 보내게 돼요. 공무원들도 장관이 성심껏 일하는지 다 고려해서 움직여요.

-선생님의 정치 여정을 보면, 1년4개월 보건복지부 장관을 하면서 새로운 에너지, 확신을 얻은 것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정치생활 6년 중에 제일 행복했죠. 마음을 먹고 방법만 찾으면 구체적으로 몇명의 사람을 덜 불행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가시적 성과가 나오니까요. 어떤 정책을 세우면 시설아동들이 18살에 얼마를 쥐고 나갈 수 있고, 기초노령연금 도입하면 몇명한테 얼마를 드릴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나오니까요.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보는 세상은 슬픔으로 가득하다”라는 글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을 들여다보면 슬픈 일 뿐이니까요. 형님과 누님이 장애를 가진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와 대화하면서 “뻔히 고충을 보면서도 돈이 부족해 어쩌지 못하는 게 괴롭다”고 토로했더니 위로해주더라고요. 난 형제인데도 어느 때는 모른 척 지나가는 때가 있다고, 감당이 안된다고. 위안을 받았습니다.

-2007년 대선 후보 당내 경선에 출마해 결국 이해찬 후보와 단일화하셨지만 꽤 오랫동안 독자적 캠프를 이끌어 갔습니다. 출마로 당선하겠다는 목적도 있겠지만, 출마 행위를 통해 뭔가를 드러내고 싶었던 게 아닌가요? =출마해봐야 못 이긴다는 건 처음부터 알았죠. 빅뱅의 <세상에 너를 소리쳐!>라는 책 제목처럼 제 목소리를 내고 싶었어요. 야당을 할 때는 하더라도 의연하게 행동해서 나중에 국민들이 알아줄 때 집권당을 하면 된다. 패배하는 한이 있더라도 참여정부 5년간의 국정운영 성과와 부족함을 솔직히 이야기하고 개선할 방법을 말하고 정책 노선을 계승해가자. 단 한번이라도 소리칠 기회를 얻고 싶은 게 동기였어요.

-정치에서 스타란 무엇을 의미하나요? =스타 정치인은 호랑이 등에 올라탄 사람이죠. 여기서 호랑이는 대중의 열망이에요. 한번 올라타면 놓고 떨어지든가 죽기 살기로 매달려서 끝까지 가든가 둘 중에 하나예요. 위험하죠. 위험을 벗어나고 싶으면 지지자를 실망시키더라도 빨리 손을 털고 그만두든가 정치를 하는 한은 중간에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더라도 끝까지 가는 것이요. 야수랑 싸우다가 야수가 되는 수도 있죠. 야수와 싸울지라도 성인의 고결함을 견지해야만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어요. 그러면 국민들이 알아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의지와는 관계없이 어깨에 짐이 얹히는 기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안희정 최고위원, 문재인 비서실장, 이광재 의원 등 노 대통령과 가까웠던 측근이 여러 분 있지만 대중적 인지도도 높고 노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잇는 면에서 많은 사람이 유시민 선생님을 급격히 주목하고 있으니까요. =제가 선택할 문제죠. (사이)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상중에 거리에서 마주친 시민들, 서울역에서 버스를 타고 지나갈 때 창밖에 보이는 시민들이 건넨 말들은 있죠. 정치인들이 그런 데 혹하기 쉬워요. 하지만 그렇게 의사결정을 할 수는 없어요. 제 인생도 있고 제가 속해 있는 공동체의 여러 상황도 함께 고려하는 거죠. 또한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나 그분의 시대가 끝난 것인가, 노무현의 시대가 있었다면 시대정신은 뭐였나, 그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는 어떤 뜻이 있나, 그 모든 것을 국민은 어떻게 생각하나를 더 고민해봐야 합니다.

참여정부 재평가는 지식인들이 해야 할 일

-국민장 기간 중에 국민들의 반응은 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의도가 선한 정치인이었다는 데에 집중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동력이 되려면 참여정부 5년의 국정에 대한 재평가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요? =그건 지식인들이 하는 일이죠. 국민들에게는 분석없이 직관적으로 확 오는 평가가 있어요. 인간 노무현, 참여정부의 가치와 정책노선, 정치인 노무현 이게 구분되지 않고 한꺼번에 묶여서 와요. 우리나라는 공화국이기 때문에 진정한 변화가 있기 위해서는 다수 국민 마음속에 뚜렷한 하나의 소망, 열망이 형성되어야만 해요. 권력에 대한 불만, 비판만으로는 시대의 조류가 바뀌지 않거든요. 지난번 대선에서는 그것이 ‘경제 살리기’ 였죠. 무슨 비리를 저질렀건, 국민들은 그걸 취했어요. 다수 국민이 하나의 소망을 갖고 있으면 반드시 어떤 형식으로든 이룬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현재 그런 게 있는지 저는 못 느끼겠어요. 조류가 아직 안 보인다고 생각해요. 국민들 스스로가 내가 뭘 원하는지 알고 거대한 흐름으로 형성해내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봐요. 1987년 이후 20여년 동안 제가 지켜본 우리의 지난 궤적은 너무나 엄혹합니다. 보수정당과 조중동을 중심으로 한 정부수립 이후 대한민국을 반 세기 동안 지배해왔던 지배 카르텔에 대항한 정치지도자는 노무현 한 사람입니다. 그가 비참하게 눌려서 죽은, 모든 퇴로를 차단당하고 굴욕적인 생물학적 삶을 받아들이든가 죽든가 양자택일의 벼랑으로 몰려 죽은 지금, 누가 다시 용기를 낼 수 있을까요.

-민주당에 대해 더이상 희망이 없다고 진단하고 탈당하셨습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는 어떨까요? 진중권 선생님은 유시민 선생님의 거취에 대해 “분명 참여정부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것이고 차기 대권 후보로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내가 보는 유시민은 철저한 현실주의자이기 때문에 개혁당 때처럼 친노 세력을 결집하고 민주당 내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다”고 보시던데요. =그걸 그렇게 다 엮어서 생각하면 곤란하고요. 할 이야기가 없어요. 저희가 5년 내내 억울하다며 한 이야기를 모든 언론이 하는 상황에 보탤 것도 없어요. 언론이 우리한테 물어보고 쓰지도 않고요. 노 대통령을 지지해온 사람들의 울음 속에는 원통함과 더불어 국민들에 대한 고마움이 있어요. 무슨 종교집단처럼 지난 몇년간 매도당해 왔는데 너무 고맙죠. 기쁨과 슬픔이 뒤범벅된 모순된 상황이고, 앞으로도 그런 시간을 한참 보내겠죠. 그러나 그것을 확대해석해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국민들의 생각이 바뀐 것은 지난 일에 관한 것이고 앞날은 앞날이에요. 보상심리로 노 대통령을 열심히 모신 사람이 선거에 나오면 지지해줄 수도 있겠으나 그것이 정당의 존재근거가 되고 우리 사회 발전에 제대로 기여할 수는 없어요. 민주당은 나름의 역할이 있는 필요한 정당이에요. 다만 제게 정치는 역시 이상주의 운동이거든요. 민주당에는 이상을 품고 있는 조직이 풍길 수밖에 없는 향기가 없었기에 당을 나온 것뿐입니다.

‘진정한’이라는 단어는 말의 폭력

-본인의 이념적 포지션에 대해 진보자유주의, 사회자유주의라고 규정했는데 조어에 고심하셨을 것 같습니다. 정치 기사를 읽다보면 우리 정치인들이 진보, 보수, 자유주의, 사회주의에 대해 서로 다른 사전을 갖고 대화한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많은데요.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지만,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은 명품과 짝퉁을 나누려는 사고가 있어요. 그런데 역사는 늘 배신자 취급당한 짝퉁의 승리로 갔거든요. 사회주의 운동도 결국은 소련, 동유럽은 다 망하고 서유럽의 사민주의만 살아남았잖아요. 사민주의는 베른슈타인 주의. 짝퉁 사회주의란 말이죠. 저는 ‘진정한’이라는 단어가 말의 폭력이라고 봐요. 국회 앞에 가서 “여기 오로지 국민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진정한 국회의원 있으면 나와봐!” 하고 외쳐봐요. 나오는 놈은 사기꾼이고 안 나오는 놈은 전부 진정한 국회의원이 아닌 거죠. 그런 식의 이야기는 내전이나 이데올로기 전쟁에서 적개심 유발하기는 좋지만 헌법에 규정된 절차를 이용해 다수의 지지를 획득하려는 정치운동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배제의 언어라는 말씀이군요.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사이엔 샛강, 열린우리당과 민노당 사이에는 한강이 있다는 말이 나온 적이 있어요. 그건 마케팅 전략으로도 어리석어요. 그렇다고 한나라당 지지자가 민노당으로 올 리는 없죠. 왜냐하면 한강 지나서 또 샛강까지 강을 두개나 건너야 하는데, 억수로 수영 실력 좋은 놈 말고 누가 오겠어요. 바로 옆에 강 하나만 건너면 되는 사람을 데리고 와야죠. 사실 우리쪽은 항상 민노당, 진보신당이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우리를 바라보는지 건너다보고 있거든요. 그분들의 주장이 조금 비현실적인 면이 있지만 논리적으로 맞고 정의롭고 시련에 굴하지 않으며 좁은 길을 가는 분들이라는 존경심이 항상 있어요. 짝퉁이 망해야 명품이 팔린다는 전략을 참여정부 5년 동안 내내 구사하는 동안 남은 정서적 반감이 있는 것이죠. 비판은 좋지만 그럴 필요는 없지 않나 싶어요.

-<대한민국 개조론> 이래 한-미 FTA에 대한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지요? 제 주변에서는 이런 것을 궁금해합니다. FTA는 양날의 칼이라 득을 보는 부문에서 이익을 떼어내 피해 보는 부문에 지원하는 것이 정부기능인데, 정권이 교체되면 재분배 정책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떤 생각으로 참여정부가 FTA를 추진했냐는 거죠. =첫째, 국가적으로 한-미 FTA 가 좋으냐 나쁘냐를 먼저 검토해 장기적으로 이익이라는 판단을 먼저 내렸습니다. 둘째 그렇다면 참여정부가 할 거냐 다음 정권으로 넘길 거냐를 고민했는데, 정치적으로는 완전 손해고 국가적으로는 비용이 덜할 것이라는 결론이었어요. 참여정부 지지층은 FTA를 반대하는데 그분들이 지지하는 정부가 결행하면 반대를 완화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죠. 역풍을 각오하고 보수정부가 할 일을 감행한 거죠. 또 우리가 하면 초기 협상조건을 유리하게 잡고, 임기 내에 비준동의가 나가면 보상책도 포함될 거라고 상정하고 추진한 것이죠. 노무현 대통령이 특이한 점입니다. 그분도 나중엔 후회를 하셨어요. 굳이 그것까지 우리가 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라고.

-토론자로서 매섭다는 평을 듣습니다. 진중권 선생님이 센 표현을 사용한다면 선생님께서는 독설은 아니지만 냉소적이랄까, 듣고 난 뒷맛이 당한 듯한 느낌이 강해서 그런 평을 듣는 것 같습니다. =나한테 주어진 역할은 최선을 다했으므로 후회가 없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했느냐는 이견의 여지가 있죠. 돌이켜보면 인간에 대한 무례 앞에서 격분을 다스리지 못했어요. 사람을 괴물로 그려놓고 비방하고 모욕하고 저주하는 언어들이 활개치는 상황에서 미소지으며 “일리가 있으십니다. 그런데” 하는 식의 토론은 할 수 없었어요. 만약 그랬다면 제 개인적으로는 좋았겠죠. 노무현은 엉망인데 유시민은 인간됐다 그런 말을 들었겠죠. 근데 전 그러면 대통령을 욕보이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저를 위하는 보좌관들이 제발 꼭 보면서 하라고 메모지에 몇 가지 키워드를 적어줘요. 미소, 긍정, 참을 인자 몇개. (웃음) 방송할 때 메모를 옆에 놓고 해도 소용없어요. 막말은 안 했지만 아주 차갑게 했죠. 그러지 않으면 진짜, 암 걸리겠더라고요. (좌중 웃음) 사실 제 내면에는 냉소적이고 갈 데까지 가보자는 측면이 있는 한편, 타협을 굉장히 잘하는 면도 있어요. 상대가 나를 인정하고 존중할 때는 절충과 타협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대단히 전투적으로 임해요. 정치적으로 더 큰 사람이 되려면 그런 점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에는 지금보다 정치적으로 더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답했어요.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토론해보면 너무 재밌는 ‘지식인 노무현’

-대중의 사랑보다 특정 국면에서 자신의 쓰임새에 더 치중하는 것 같습니다. 이타적 인간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런 데서 만족을 찾는 것 같다는 거죠. =사랑받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우선 유용한 인간이 되자고 생각하거든요. 제 자신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요. 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많이 당했을 때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를 6주 만에 썼어요. 노무현을 보위하기 위한 정치 팸플릿이라 6주 만에 쓴 거예요. 그런 심리상태로 6년을 살았거든요. 저를 아끼는 분들은 만류했지만 저는 적어도 정치적인 면에서 보면 제가 아니라 대통령이 중요하다고 본 거예요.

-그렇게 한 시기 삶을 지배한 존재를 잃은 상실감은 슬픔이란 말로는 표현이 안될 것 같습니다. =저는 조언자를 잃기도 했지만 굉장히 좋은 지적인 동반자를 잃었어요. 노무현 대통령은 굉장히 훌륭한 지식인이에요. 토론해보면 너무 재밌어요. 대통령께서는 저를 가벼운 모임에 부르신 적이 없어요. 의논하거나 토론할 일이 있을 때만 부르셨죠. 대통령님과 관계에서 고비들도 많았습니다. 의견이 다르기도 했고 토론하다 좁혀지지 않으면 어른 말씀대로 소극적으로 동의해드렸죠. 이렇게 하면 사람 다 떠나고 당 없어지고 대통령님은 버림받고 퇴임하시고 나면 아무도 지켜줄 사람 없게 된다고 말씀드려도 “그래도 내 판단대로 해보세요” 고집하셨죠.

-앞으로 저술 계획을 알고 싶습니다. =현재 작업 중인 책은 책과 지식인에 관한 것이에요. 제가 10대, 20대에 읽었던 고전을 다시 읽는 프로젝트죠. 그리고 경북대 강의 ‘생활과 경제’의 내용을 토대로 책을 만듭니다. 연말까지 두권을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몇해 전 얼굴을 보면 본인이 봐도 사납다고 쓰신 걸 읽었어요. 살아오면서 성격의 전환점이 있었다면 언제라고 생각하세요. =한때 엄청 사나웠죠. 국회의원, 대통령 후보 낙선하고 나니까 참 좋았어요. 책임을 면제받았다는 안도감 같은 게 컸어요. 돌이켜보면 결과가 비슷했는데 괜히 싸웠다는 생각도 많이 했고요. 요새는 생각하는 걸 다 말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새삼 노무현은 용기있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하게 돼요. 어떻게 그렇게 전체를 상대로 싸울 생각을 하셨을까. 진짜,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追伸 비보를 받아들고도 마감의 대안을 찾을 경황이 없었다. 유시민은 잡지쟁이의 곤경을 배려해, 어떻게든 약속대로 해보자고 했다. 그가 상주로 있다는 서울역 분향소로 향했다. 줄의 끄트머리를 찾는 데 한참이 걸렸다. 그렇게 조용한 군중은 본 적이 없었다. 혼자 조문 온 시민들이 많아 정적은 더 무거웠다. 추모객 대열 옆을 지나가던 중년 남자가 낮술 기운이 어린 소리로 고함쳤다. “당신들이 노무현을 위해 한 일이 뭐야?” 아무도 맞받아치지 않았다. 헌화를 마치고 돌아서자 플라스틱 의자에 구겨져 앉은 유시민이 보였다. 붉은 눈에 붉은 마음이 비쳐났다. 오른쪽 눈꺼풀 안의 검은 점이 돋보기로 태운 초점처럼 도드라졌다. 며칠 뒤 약속장소에 일찍 도착한 나는 그가 오는 모습을 내다보았다. 주차를 한 뒤에도 유시민은 한참을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일주일 동안 도합 스무 시간을 잔 그에게는 두어잔의 커피가 필요했다. 해질 무렵 아득해지는 정신을 깨우기 위해 얼굴을 문지르던 그가 흘린 한마디가 사금파리처럼 가슴에 박혔다. “우리가 사랑스러운 사람을 사랑했음이 증명되었죠.” 오직, 그것만이 그를 위안하는 한 떨기 국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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