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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일] “삐딱한 영화들 다 철퇴맞음 어쩌나…”
강병진 사진 이혜정 2009-06-30

<반두비>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받은 신동일 감독, 표현의 자유를 고민하다

신동일 감독은 심란한 상태였다. <반두비>는 재심의에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반두비>를 향한 안티세력의 공격도 현재진행형이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전혀 고민하지 않았던 부분이다. 영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는 하겠지만, 그 때문에 작품이 묻힐 것 같아 걱정이다.” 이래저래 고민이 많은 그에게 세 번째 장편영화 <반두비>에 대해 물었다.

- 재심의에서도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이 났다. = 많은 문제를 내포하는 사안 같다. 표현의 자유뿐만 아니라 상상력을 침해하는 거다. 가치관의 충돌도 있다고 본다. 나는 청소년을 대화의 상대로 생각했지만, 영등위는 청소년들을 여전히 규제의 대상으로 보는 것 같다. <반두비>를 마지막으로 해서 등급 논란이 종식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의 영등위 임기가 2년 정도 남았는데, 아무래도 앞으로 모든 삐딱한 영화들이 다 철퇴를 맞지 않을까 걱정이다.

-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에서 상영되는 건 문제가 없나. = 영화제 심의등급은 또 별개다. 청소년이 유일하게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매우 기뻤다. 청소년들을 위해서 만들었는데, 그들이 주체인 영화제에 초청됐으니까. 그런데 기쁨이 사라지기 전에 철퇴를 맞은 거지. (웃음)

- 영등위에게 보낸 청원서에서 <반두비>가 고액의 학원비 때문에 부모와 갈등을 벌이다 어머니를 살해한 여고생의 사건에서 시작됐다고 밝혔다. = 입시이데올로기가 얼마나 폭압적인지를 보여주는 사건 같았다. 그 여고생은 세뇌될 대로 세뇌된 거다. 학원선생이 서울대에 보내주겠다는데, 부모가 학원비를 주지 못하니까 악마처럼 보였을 것이다. 2001년 말에 사건을 접한 뒤 준비를 하다가 그대로 만드는 건 포기했다. 당사자와 유족이 있는데, 아무리 좋은 의도로 만든다고 해도 상처가 될 것 같더라. 애초에 출발점이었던 ‘여고생’에서 다시 시작하려고 했다.

- 처음에는 여고생 둘이 주인공이었다고 하더라. = 공부 잘하는 여고생과 못하는 여고생이 주인공이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아빠가 입시학원장이다. 못하는 아이는 버스 운전사인 아빠와 공장노동자인 엄마와 함께 산다. 못하는 아이의 이름도 민서였는데, 이 친구가 대학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알게 된 것이 사회봉사제도다. 그걸 갖추면 사회복지과에 갈 수 있으니까. 그래서 하게 된 봉사활동이 이주 노동자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거였다. 그런 구도로 시나리오를 썼는데, 여러 문제로 포기했었다. 그러다가 민서만 살리고 제3의 인물인 카림을 끌어올렸다.

- 민서는 이제껏 한국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여고생이다. 정치적 성향이 두드러지는데다, 자유로운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입시 등 현실적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다. 개릭터를 구축하면서 어떤 고민을 했나. = 민서를 거꾸로 하면 서민이다. (웃음) 일반적인 서민의 자녀로 설정했다. 그래서 민서 역시 그 또래가 가지고 있는 관성을 지닌 아이다. 대학에 가려 하고, 뒤처지면 패배한다는 의식이 있는 거지. 하지만 조금은 또 다른 가능성을 품을 만한 환경을 주고자 했다.

- 촛불시위에 참가한 여고생들에게서 모티브를 얻은 건 아니었나. = 시나리오를 완성한 건 촛불시위가 이슈화되기 전이었다. 단지 촬영이 비슷한 시기에 맞물렸다. 물론 민서와 비교하면서 동질감을 느끼기는 했다. 내가 지금 만들고 있는 영화가 올바르다는 생각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예 민서가 촛불시위에 참가하는 모습도 담을까 했었다. 하지만 그러면 민서가 너무 특별한 아이가 될 것 같더라. 그래서 가방에 촛불소녀 배지를 다는 정도만 가져갔다.

- 여고생과 이주 노동자를 만난다는 설정을 놓고서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는 뭐였나. = 카림과 민서가 경찰서에서 나오는 장면이었다. 각자의 사연 때문에 경찰서에 간 두 사람은 취조를 받으면서도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서로의 사연을 듣고 말없이 함께 걷는 이미지가 강렬했다. 각자의 세계에서 소외받는 계층이 같은 곳에서 만난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으니까.

- 안마업소의 장면을 연출할 때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굳이 보여줘야 할까 하는 생각도 했을 것 같다. = 첫 심의에서 19금이 나왔을 때. 딱 그 장면이 떠오르더라. 예민한 부분이지만, 꼭 필요한 설정이라고 생각했다. 그 장면의 포인트는 민서의 눈이다. 서비스를 받는 남자를 향하기도 하지만, 관객을 향한 경멸의 시선이다. 민서를 그렇게까지 몰고 가는 현실과 배경에 대해 곱씹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처음부터 이 장면 때문에 시비가 있을 것 같기는 했다.

- 이 장면에서 다시 민서는 어떤 아이인가가 궁금해졌다. 또래에 비해 약간은 의식이 있다면 있는 아이인데, 과연 학원비를 벌겠다고 그런 일까지 해야 했을까. = 민서도 미성숙한 철부지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순적인 측면을 민서도 가지고 있다. 정의롭기도 하지만 카림에게 드러내는 차별의식도 있고. 일관성이 없게 볼 수도 있지만, 그런 모습들이 일관성이라고 봤다.

- 안마업소에서 <방문자>의 호준을 연기한 김재록이 등장하더라. 또 그 앞부분에는 민서에게 치근덕거리는 주유소 사장 아들로 양해훈 감독이 출연한다. 영화 외적인 이야기지만, 캐스팅 과정을 묻고 싶다. = 영화제 상영 때 관객이 가장 많이 웃은 장면이다. 담임선생은 재록씨를 위해서 만든 역할이다. <방문자>의 호준이 계상을 만나기 전의 상태가 아닐까. 시나리오를 주면서 형이 맡을 역할을 맞혀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딱 맞히더라. (웃음) 양해훈 감독은 평소 내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했었다. 제일 마지막에 캐스팅했는데, 평소 이 친구와 술을 마시면서 관찰한 결과 그 역할을 잘할 것 같더라. 양해훈 감독은 “이런 경험을 해보지 않아서 상상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고 했지만. (웃음) 극중에서 양해훈 감독이 하는 “내수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식의 대사는 즉석에서 애드리브로 한 거였다. 나로서는 상당히 맘에 들었다.

-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한국사회의 풍경이 집요하게 담겨 있다. 이번에는 MB란 구체적 인물이 있어선지 더 직접적으로 느껴지더라. = 영화를 만들 때가 MB정권 1년째였다. 당대의 분위기와 풍경을 담아야 한다는 건 앞으로도 가져갈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렇게 볼 때 MB의 등장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생각보다는 강한 인상을 느끼는 관객이 많은 것 같더라. 좋았다는 분도 있고, 너무 과도하다는 분도 있다. 카림이 바닷가에서 “너희들도 우리 같은 노예야!”라고 외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감정을 누르고 묵묵히 인내하던 카림이 감정을 표출할 때, 어떤 이야기를 할까 생각하면 역시 자연스러운 것 같다.

- 결국 <반두비>는 이방인을 통해 이 나라의 현실을 보는 이야기다. = 신동일표 영화의 귀결점이라고 보면 된다. (웃음) 개인적으로는 이미 파산선고를 받은 신자유주의를 가지고 이 정권이 파시즘으로 밀어붙이고 있는데, 이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끼리 연대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의 현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거니까. 백인부터 이주 노동자까지 우리나라에만 110만명이 넘는 외국인이 있다고 하더라. 결국 한국도 다문화사회로 진입할 수밖에 없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게 필요할 수밖에 없다.

- 감독 스스로 전작들을 포함해 ‘관계 3부작’이라고 했었다. 그렇다면 <반두비>에는 정리와 종합, 혹은 완결의 의미가 있을까. = 내 스스로 붙인 거긴 한데, 그게 맞나 싶기도 하다. 앞으로도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 것 같다. <반두비>에서는 한국사회의 미래를 영화적으로 풀고 싶었다. 민서의 미래가 한국의 미래니까. 민서라는 아이를 통해 우리도 자기를 둘러싼 관계나 세상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었으면 했다. 그런 게 필요한 세상 아닌가.

- 다음 작품은 준비 중인가. = 이번 등급과 관련한 문제들을 계기 삼아 일단 제목을 정해놨다. <타협은 없다>로…. (좌중 웃음) 농담이다. 20대 중반의 갓 대학을 졸업한 여성 실업자가 주인공인 영화다. 88만원 세대를 상징하는 이 인물의 좌충우돌 모험담으로 보면 된다. 내 영화 중에서 가장 강렬한 주제를 가지고 있으면서 가장 대중적인 영화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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