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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촉구] 5. 찰리 카우프먼의 <시넥도키, 뉴욕>
정재혁 2009-07-09

역시 비틀기의 천재!

별난 작가의 별난 영화다. 각본가 찰리 카우프먼의 연출 데뷔작 <시넥도키, 뉴욕>은 제목부터 별나다. 멀쩡한 건물에 7과 1/2층을 지어내고(<존 말코비치 되기>), 사람을 철창 안에 가두고(<휴먼 네이쳐>), 스스로를 콤플렉스 똘똘 뭉친 작가로 그린(<어댑테이션>) 남자니 별난 게 뭐 새롭겠나 싶겠지만 <시넥도키, 뉴욕>은 그 별남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주는 영화다. 조금씩 어긋나는 이야기는 어느새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퍼지고, 그 안에서 튀어나온 세계는 이성과 논리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불규칙함의 덩어리를 만든다. 미국 개봉 당시에도 영화는 절대적인 호평과 악평으로 갈렸는데 악평의 대다수는 “따라잡기 힘든 이야기, 자기 중심적인 전개, 자만하는 태도”에 대한 내용이었다. 실제로 찰리 카우프먼의 자전적인 이야기처럼 보이는 영화는 100% 주인공 케이든의 시점에서 흘러간다. 어떤 순간엔 케이든의 내면이 그대로 화면이 되어 표현되기도 하고 또 어떤 순간엔 그 화면이 픽션의 경계를 뚫고 튀어나온다. 극중극까지 안고 있는 <시넥도키, 뉴욕>은 비틀기에 능한 찰리 카우프먼의 특기가 확연히 돋보이는 영화다.

영화는 극작가인 케이든과 그의 아내 아델, 딸 올리브의 일상으로 시작한다.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가정의 이야기지만 영화는 시작부터 미스터리한 죽음의 그림자를 하나둘 드리운다. 신문에서 본 작가 해럴드 핀터의 부고, 앨라배마대학 역사상 첫 흑인 학생의 죽음, 터키에서 발생한 조류독감 이야기 등. 묘하게 죽음을 감지하는 케이든은 신경질적으로 변해간다. 아내 아델이 작업상 베를린으로 떠난 뒤엔 그 상황이 더 악화된다. 케이든은 자신의 이야기, 잔인한 삶의 형상을 그대로 담은 연극을 올리려 하는 데 그 과정이 또 지난하고 고통스럽게 늘어진다. 그리고 여기서 영화는 또 다른 뉴욕을 구축한다. 제유법을 의미하는 시넥도키는 케이든이, 찰리 카우프먼이 그리는 자기 세계에 대한 제유다. 죽음으로 종결되는 삶의 공포 속에서 케이든은 자신의 세계를 무대 위의 세트로 그대로 형상화한다. 순수한 의미의 자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찰리 카우프먼 특유의 재치와 상상력으로 표현된다. 두려운 줄 알면서도 선택하고 마는 ‘불타는 집’이랄지, 자신을 연기할 배우를 지정하고 극과 현실의 위치를 바꿔버리는 설정이랄지, 그리고 점점 확장하는 케이든의 세계와 달리 점점 축소되는 아델의 작품 등은 카우프먼의 장기 그대로다.

<시넥도키, 뉴욕>은 사실 극 중반까지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과 시뮬라르크를 유치하게 복습한 느낌을 준다. 미셸 공드리의 그림자도 확연히 보인다. 하지만 케이든이 스스로의 삶에 좀더 가깝게 다가가면서, 그리고 영화가 덕지덕지 붙었던 장식을 하나둘 떼어내면서 영화는 진심의 흔적을 보여준다. 특히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이 인생의 마지막 무대에서 힘없이 거닐 때의 초라해진 자아의 모습은 가슴 깊이 다가온다. <시넥도키, 뉴욕>은 카우프먼의 재주, 그리고 첫 영화에 대한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다릴 가치가 있는 영화다.

TIP/ <존 말코비치 되기> <어댑테이션> <이터널 선샤인>까지. 항상 실망보단 기다린 보람이 컸다. 기상천외한 작가 찰리 카우프먼의 첫 연출작. 그의 재능을 100% 맛볼 수 있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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