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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가족의 일대기 <세비지 그레이스>
문석 2009-07-08

synopsis 1946년 뉴욕, 창백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여성 바바라 베이클랜드(줄리언 무어)가 아들 안토니(에디 레드메인)를 낳는다. 플라스틱 개발자의 손자인 거부 남편 브룩스(스티븐 딜레인)와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았던 바바라는 아들을 신처럼 추앙한다. 벼랑 끝에 매달린 듯 위태롭게 살아가던 이 가족에게 마침내 큰 위기가 찾아오니, 그건 브룩스가 안토니의 여자친구를 가로챈 것이다. 상실감에 젖은 바바라와 안토니는 샘이라는 한 남성을 공유하기도 하고, 근친상간을 했다는 의혹을 사기도 한다.

1972년 토니(친한 사람들이 안토니를 부른 이름)가 바바라를 식칼로 살해하면서 일단락된 베이클랜드 가문의 삶은 엽기 그 자체였다. 존속살해는 근친상간, 한 남자에 대한 엄마와 아들의 공유 등의 어쩔 수 없는 결말로 보이긴 했지만, 실제로 고고한 저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세비지 그레이스>는 이 기묘한 가족의 일대기이자 극단적인 부르주아적 삶에 대한 섬세한 묘사다. 1992년 <졸도>로 뉴퀴어 시네마의 도래를 알렸던 톰 칼린 감독은 이 두 번째 장편영화에서 퀴어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대신 극도의 탐미주의로 이 가족의 삶을 보여준다.

하지만 ‘왜?’라는 질문은 <세비지 그레이스>에 존재하지 않는다. 왜 브룩스가 아들 토니의 여자를 가로챘는지, 왜 모자(母子)가 샘 그린을 공유했는지, 왜 어머니가 아들의 사타구니 위에 올라탔는지에 관한 친절한 설명은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칼린은 심지어 토니가 왜 그토록 사랑했던 엄마의 배에 칼을 꽂았는지조차 아리송하게 드러낸다. 영화 초반 토니의 “그 모든 일은 사랑 때문에 일어났다”라는 독백조차 큰 신빙성은 없다. 칼린은 이 해괴한 일련의 사건들에 논리를 부여하기보다는 이러한 사건들을 배태할 수밖에 없었던 분위기와 정황을 묘사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인다. 1940년대에서 70년대 사이의 럭셔리 라이프 스타일이 고증 속에서 등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들 관계의 비극성은 오로지 인물들의 표정을 통해서 드러난다. 에디 레드메인의 깨질 듯한 순수, 스티븐 딜레인의 단단한 냉소, 그리고 장마철 날씨마냥 시종 변화하는 줄리언 무어의 파리한 얼굴에서 이 유사 그리스 비극의 정조는 살아난다. 때로 근사한 사진처럼 느껴지는 이들의 포즈는 표정들을 통해 공허함과 고독감과 광기로 돌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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