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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내 청춘의 일부분
김용언 2009-07-17

어릴 때부터 춤을 잘 추고 싶었다. 열살 무렵 1939년작 흑백영화 <소공녀>에서 다가닥다가닥 탭댄스를 추는 꼬마 셜리 템플에게 홀딱 반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은 마이클 잭슨의 시대였다. 소풍을 가면 남학생 중 누가 문워크를 더 그럴듯하게 해내는가에 따라 교내 인기 순위가 달라졌다. 생각해보면 당시 우리 모두, 마이클 잭슨이 되고 싶어 했다. 중학생 땐 <더티 댄싱>, 고등학생 땐 <댄싱 히어로>가 다시 한번 ‘춤심’을 후끈 자극했다.

그러다가 2001년 <빌리 엘리어트> 때문에, 많이들 그랬듯 매튜 본의 발레 <백조의 호수>에 송두리째 빠져버리고 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매튜 본이 <백조의 호수>와 <호두까기 인형>의 내한공연을 펼쳤다. <호두까기 인형>은 기대에 못 미쳤고 <백조의 호수>가 훨씬 좋았다. 백조가 죽어갈 땐 무용을 보다가 눈물이 흐르는 경험을 처음 했다. 그러나 그보다도, 2003년 내한했던 피나 바우쉬의 공연 <마주르카 포고>가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 엔딩신에 삽입되기도 했던 <마주르카 포고>는, 2시간30분 내내 객석 전체를 ‘행복하고 따뜻하고 착한 마음’으로 채웠다. 무용과 연극의 경계를 넘나드는 탄츠테아터(Tanztheater)라는 형식을 통해 파두와 재즈, 탱고와 삼바의 다채로운 선율을 타고 청춘남녀의 사랑과 환희가 말 그대로 폭발했다. 무대는 꽃과 푸른 하늘로 반짝거렸고, 아름다운 무용수들은 관객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꽃을 던졌다. 셋쨋줄 맨 왼쪽 자리에 앉아 있던 나는, 뒤쪽에서 살금살금 걸어나오던 남자 무용수가 내 목덜미에 실수로 (들고 있던 물병에서) 물을 흘리는 바람에 기겁했다. 무용수는 씽긋 웃으며 “미안” 하고 내 어깨를 가만히 짚고는 무대로 뛰어나갔다. 내 옆자리 친구들은 부러워서 한숨지었다.

피나 바우쉬가 지난 6월30일, 마이클 잭슨이 6월25일 숨을 거두었다. 신체가 예술의 일부분임을 깨닫게 해주었던 20세기의 거대한 이름들이 생각보다 일찍 우리 곁을 떠났다. 메인스트림을 젊음의 하위문화로 뒤덮어버렸던 이가, 혹은 고전적인 무용의 틀을 뛰어넘어 자유분방하게 인생을 예찬하며 사람들을 행복하게 미소짓게 했던 이가 너무 갑자기 숨을 거두었다. 남겨진 우리는 삶의 환희를 엿볼, 청춘으로 돌아갈 수 있는 어떤 기회들을 잃어버렸다.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