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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와 더불어 미래까지 속박할 매서운 칼 <야스쿠니>
이화정 2009-08-05

synopsis 매년 8월15일 광적으로 열리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야스쿠니를 옹호하는 일본인들의 대화, 유족들의 슬픔,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반대하기 위해 신사에 뛰어든 중국 청년, 야스쿠니 합사를 반대하는 한·중·일 유족들의 항의 광경 등 카메라는 태평양전쟁 60주년을 맞은 야스쿠니 신사 안팎의 여러 사건을 좇는다. 그리고 이 흐름의 사이사이, 야스쿠니 신사에 납품되는 ‘야스쿠니칼’을 제작해온 장인 가리야 나오하루의 야스쿠니도(刀) 제작과정이 교차편집된다.

동아시아의 뜨거운 감자 ‘야스쿠니’를 장장 10년 동안 질기게 물고 늘어진 감독이 있다. 20년간 일본에 머문 중국인 리잉 감독. 처음 호기심에 들고 나선 카메라가 쟁점이 있는 다큐멘터리 제작으로 이어졌고, 어느덧 그에게 ‘동아시아 역사의 가장 첨예한 문제를 제기한 감독’이라는 수식이 따라붙었다. 시사도 하기 전, 일본에서 우익 진영의 개봉 반대를 겪어야 했던 <야스쿠니>는 주제의 심각성에 더한 화제성으로 지난해 개봉 당시 13만명의 관객을 동원, 일본 다큐멘터리의 개봉 역사를 새로 썼다.

테러의 위협에도 개봉관을 찾은 관객이 줄을 이은 것은 이 영화가 제시하는 뜨거운 논쟁거리에 대한 기대였다. 태평양전쟁 종전 뒤, 미온적인 태도로 자신들의 ‘죄’를 얼버무리는 일본인의 태도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숙제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는 이토록 뜨거운 온도를 화면에 담아내지 않는다. 마치 야스쿠니 신사 앞에 360도 회전하는 붙박이 카메라를 설치하기라도 한 듯, 화면은 야스쿠니를 둘러싼 모든 이들을 그저 관망할 따름이다. 이쯤 되면 ‘정신의 자유’와 ‘마음의 문제’를 들먹이며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정당하다고 말하는 고이즈미 총리나, 야스쿠니 합사를 강행하는 일본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기 위해 참석한 대만 유족회 대표나 모두 동일선상에서 ‘각자의 이유’가 있을 뿐이다.

정작 하이라이트는 소란 속 교차편집되는 야스쿠니도를 만드는 장인의 묵묵함이다. 이 장면들은 일체의 내레이션을 배제한 영화에서 유일하게 감독의 목소리가 발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감독은 끈질기게 장인을 향해 야스쿠니도의 정신과 동아시아 전쟁에서의 검의 역할에 대해 질문하지만, 그는 미온적인 웃음으로 자신의 일을 수행할 뿐이다. 그러나 영화의 말미, 침묵으로 일관하던 장인의 본질이 드러난다. <야스쿠니>의 온도가 뜨거워지는 것은 이 지점부터다. 어느 것에도 개입하지 않을 것 같던 리잉의 카메라는 바로 그 순간, 가장 정확하게 야스쿠니의 핵을 뚫고 들어간다. 리잉 감독은 그저 피해자의 입장에서 분개에 그쳤던 무수한 다큐멘터리의 오류에서 벗어나, 가해자에게도 뿌리박힌 ‘무엇’을 드러내는 결실을 거둔다. 바로 야스쿠니가 지나간 집단의 ‘기억’이 아닌, 지금 현재와 더불어 미래까지 속박할 매서운 칼임을 시사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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