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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에너지와 슬랩스틱 코미디가 버무려진 영화 <약속해줘>
문석 2009-08-12

synopsis 할아버지 지보인(알렉산다르 베르첵)과 시골 마을에서 사는 차네(우로스 밀라바노비치)는 착하고 성실한 소년이다. 죽음을 예감하는 지보인은 혼자 남을 차네를 걱정한다. 그는 차네를 도시로 보내면서 세 가지를 약속해달라고 한다. 첫째는 성 니콜라스의 성화를 사오는 것, 둘째는 기념품을 사오는 것, 셋째는 차네의 신붓감을 데려오라는 것이다. 차네는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아름다운 야스나(마리아 페트로뇨비치)에게 반하지만, 야스나를 노리는 악당과 맞서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에미르 쿠스트리차는 <아빠는 출장중>(1985)과 <언더그라운드>(1995)로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두번 수상한 흔치 않은 감독이다. 하지만 그의 영화적 성취는 하강곡선을 그려왔다.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1998)는 나쁘지 않은 반응을 얻었지만 차기작 <삶은 기적이다>(2004)는 환대받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약속해줘!>는 쿠스투리차 영화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라고 할 수 있다.

<약속해줘!>는 <집시의 시간> 이후 쿠스트리차의 노선이 돼온 ‘마술적 사실주의’를 극단적으로 밀고나가는 영화다. 여기서도 쿠스트리차 특유의 시끌벅적한 집시풍 음악과 하늘과 지상과 땅밑을 오가는 사람들의 대소동이 펼쳐지지만 뉘앙스는 전작들과 사뭇 다르다. 서커스장에서 인간포탄으로 발사돼 며칠 동안 하늘을 날아다니는 남자나 지보인이 설치한 부비트랩에 생쥐처럼 붙들리는 악당들은 저연령을 위한 만화 속 캐릭터와 흡사하다. <약속해줘!>의 세계에는 선인과 악당이 존재하지만, 실질적인 갈등이라곤 없다. <르몽드>는 성적 에너지와 슬랩스틱 코미디가 버무려진 이 영화를 가리켜 “페데리코 펠리니와 버스터 키튼의 결혼”이라며 칭찬했지만, 알맹이는 사라지고 스타일만 앙상하게 남았다는 느낌 또한 지울 수 없다.

결론적으로 현실과 판타지를 오묘하게 넘나들며 정치적 이슈와 인간의 본성을 예리하게 짚어내던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약속해줘!>는 더 실망스러운 영화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의 전작들에 대한 추앙심이 없는 관객이라면 해맑은 코미디의 즐거움을 찾겠지만. 쿠스트리차는 <약속해줘!>를 놓고 가진 한 인터뷰에서 “나는 권투선수와 비슷하다. KO 당하기 전에 무대에서 내려올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쿠스트리차여, 약속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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