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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할 만한 데뷔작 <불신지옥>
김도훈 2009-08-12

synopsis 서울에서 고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던 대학생 희진(남상미)은 동생 소진(심은경)이 실종됐다는 연락을 듣고 집으로 내려간다. 교통사고로 아빠를 잃은 뒤 광적으로 기독교에 빠진 엄마(김보연)는 기도를 하면 소진이 돌아올거라며 경찰서 대신 교회로 향한다. 불치병에 걸린 딸 때문에 고통받는 형사 태환(류승룡)은 소진의 실종이 단순 가출이라고 믿으며 대충 수사를 진행한다. 하지만 희진의 눈앞에서 투신자살한 이웃 정미(오지은)의 집에서 소진에게 남긴 유서가 발견되고, 아파트 주민들은 소진이 신들린 아이라는 증언을 하기 시작한다.

이용주 감독은 봉준호의 조감독 출신이다. 타이틀이 감독의 능력을 증명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연계점을 찾지 못할 것도 없다. 이를테면,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이 소도시 누아르라고 한다면 <불신지옥>은 소도시 호러다. 교외 소도시를 배경으로 위악적인 인간 군상의 욕망이 만들어내는 비극을 다룬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당연히 <불신지옥>은 전형적인 여름용 한국 호러영화와는 조금 다르다. 아니, 호러영화라기보다는 종교적 광신이 어떻게 한 소녀를 죽음으로 몰고갔는가를 파헤치는 일종의 오컬트 추리영화다. 전형적인 공포의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들림 현상에 대해서 유사과학적인 완결성을 바라지도 않는다. <불신지옥>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온갖 종류의 광신과 불가해한 현상으로 일그러진 지옥이라고 스산하게 읖조린다. 마지막에 가서 반기독교적인 내음을 살짝 제거하긴 하지만 <불신지옥>의 지옥 속에서 기독교와 무속신앙에 대한 광신은 결국 거울의 양면이다.

한국 호러영화 역사에서 <불신지옥>의 선배를 찾자면 <4인용 식탁>과 <소름>이다. 이 계보에 속한 영화들의 장점은 쓸모없는 쇼크 효과에 기대지 않고 무속신앙이나 정신질환 같은 현실적 소재들을 장르에 잘 버무려넣는다는 거다. 단점은 장점과 동일하다. 전형적인 호러 장르의 컨벤션을 비틀기 위해 쇼크 효과를 억누르다 보니 장르적 쾌감이 후반부에서 조금 힘을 잃는다. 좀더 공격적인 호러 시퀀스들을 첨가했더라도 전체적인 완성도에 누를 끼치진 않았을 거다. 그래도 스멀스멀 보이지 않는 불안감으로 관객의 목을 조이는 감독의 솜씨는 더없이 꼼꼼하고 자신감 넘친다. 특히 휴대폰 카메라의 불빛에만 의지하는 지하실 추적 장면은 근래 한국 호러영화 중에서 어둠의 공포를 가장 훌륭하게 이용한 명장면이다. 기념할 만한 데뷔작이자 보기 드물게 탄탄한 장르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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