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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민] 무대의 짜릿함, 정말 미친다
장미 사진 최성열 2009-08-28

뮤지컬 배우 홍지민

홍지민은 불의 여인이다. 몸속 어딘가에 꺼지지 않는 화덕을 숨긴 그녀의 화염은 폭발적이라고밖에 표현할 길 없는 뮤지컬 디바의 노래로, 열심히 하는 후배들에게 뭐라도 사먹이고 싶은 선배의 자상함으로,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 뮤지컬을 숨차게 오가면서도 불끈불끈 힘이 솟는 마법 같은 삶의 원동력으로, 세상 전체를 발그레하게 물들이고 싶은 ‘해피 바이러스’로, 자꾸만 전환된다. 심장 저 아래에서 에너지를 끌어내 노래하고 연기하는 홍지민은 객석을, 관객을 긴장하게 만들기보다 감동시키는 쪽에 가까운 배우다. 울림이 큰 목소리로 두팔을 휘저으면서 대화를 이어가는 그녀를 보노라면, 별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어쩐지 울컥하는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온에어>로 인지도가 훌쩍 뛰어오르고, 뮤지컬 <드림걸즈>로 무대 경력의 터닝 포인트를 맞았다는 홍지민은 가장 뜨거운 계절을 맞은 지금 “완전 미친 스케줄”에 따라 뛰어다니는 중이다. <온에어> 이후 드라마를 더 하라는 권유를 물리치고 <드림걸즈>의 에피를 선택할 때만 해도 고민스러웠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드림걸즈>는 만장일치의 찬사를 받았고, 방송에선 뮤지컬의 휘광을 공고히 한 그녀를 더욱 간절히 원했다. 뮤지컬 <샤우팅>이 막을 내리고 <태희혜교지현이>가 끝나면 <스타일>에 집중할 수 있을 테지만, 물이 잔뜩 오른 게 분명한 이 욕심쟁이 배우를 누군들 탐내지 않을 수 있을까. 바쁜 일정 속에 짬을 낸 그녀는 한전아트센터 분장실로 <씨네21>을 초대했다. 승리의 분장실이라고 했다. 유난히 큰 눈은 <드림걸즈>를 입에 올릴 때마다 촉촉해졌고, 빅뱅의 승리며 대성을 칭찬할 땐 한층 온건한 빛을 띠었다.

-<샤우팅>은 <드림걸즈> 후속작으론 다소 의외인 선택이다. =그런 질문 많이 받았다. 처음 제의가 들어왔을 땐 스케줄이 안될 것 같아 거절했다. 사실 한정림 음악감독이 나랑 15년지기인데 뮤지컬을 그동안 한번도 같이 안 해봤다. 기존 주크박스 뮤지컬 곡이 있지만 50% 이상 창작으로 쓰신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드림걸즈> 하면서 꿈에 대한 화두가 생겼달까. 꿈의 홍보대사가 되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다. 이 작품 역시 꿈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 않나. 사실 ‘꿈의 노트’라는 걸 2, 3년 전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요즘 아주 신기한 경험을 많이 하고 있다.

-대성은 아쉽게 무대에 못 서고 있지만 승리와는 협연하고 있다. 실제로 일해보니 어떤가. =초반엔 좀 걱정이 되더라. 나도 스케줄이 바쁘지만 이 친구들은 더 바쁘기 때문에. 무대는 거짓말을 안 한다. 연습량 때문에 우려했는데, 그 친구들이 처음 연습을 하러 왔을 때 대본을 다 놓고 왔더라고. 아예.

-이미 다 외운 상태였다고. =나는 들고 있었는데. (웃음) 따로 연습을 많이 했나 보더라. 상당히 놀랐다. 승리군은 나이에 맞지 않게 자신감이 넘친다고 해야 하나 그런 부분들이 있는데, 나에겐 너무 신선했다. 습득력이 조금 남다른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고. 대성군은 굉장한 연습벌레다. 수줍음도 많고. 너무 착하고. 갑자기 사고가 나서 같이 못하니까 굉장히 속상하더라고.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정통 뮤지컬을 하는 입장에선 탐탁지 않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번 작품은 아이돌 스타의 출연을 전제로 기획된 뮤지컬 아닌가. =분명히 단점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장점을 굳이 들자면 어릴 때부터 뮤지컬을 관람해야 나이가 들어서도 공연을 계속 보는 층이 되거든. 한국에서 뮤지컬이 많이 대중화됐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영화나 다른 매체에 비해.

-혹시 아까 얘기한 꿈의 노트에는 어떤 내용들이 더 적혀 있나. =200개 정도 된다. 단순하다.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그냥 막 적는 거다. 그리고 이미 한 건 지우면 되는 거다. 지운 게 50개 정도 된다. 예를 들면 <드림걸즈> 공연을 아프지 않고 약속한 날짜까지 소화해내기. 다 했거든. 한번도 빠짐없이. 그럼 거기에 선 긋고 별표 딱 하는 거지. 그런 소망들이 이뤄지고 있으니, 너무너무 신기하다.

-‘꿈은 이루어진다’군. =맞다. 라디오 DJ를 해보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DJ를 할 순 없잖나. 그래서 라디오에 고정으로 게스트 출연하기, 이걸 딱 적어놨다. 그리고 2주 만에 섭외가 들어왔다. 유치할 수도 있다. 근데 나는 이걸 하면서 너무 행복한 거다. 수시로 보면서 안되는 건 이루려고 노력하고. 그래서 주변 분들한테 막 강요한다. (웃음) 하라고. 우리 신랑도 하거든. 재미있다. 신나고.

-원래도 에너지가 넘치는 스타일 아닌가. 미니홈피에 보니까 ‘해피 바이러스가 되고 싶다’는 표현이 있던데. =어릴 때는 내가 왜 배우를 해야 하나, 이런 질문들을 안 했거든. 그냥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고. 그런데 어느 날 대학원 선배 언니가 넌 왜 배우를 하냐고 물어보더라고. 배우로서 목적과 소명의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다르지 않냐는 말을 들으면서, 그럼 내 몫이 뭘까 생각했다. 내 임무는 내가 품은 행복한 에너지를 공연이든 방송이든 무엇을 통해서라도 전파하고, 사람들이 거기에 감동받아서 더 열심히 살게 만드는 게 아닌가.

-<태희혜교지현이>에서 남편이 전업주부인 커리어우먼으로 나온다. ‘일하는 아줌마’의 이미지가 있어서 여성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되는 것 같다. =<온에어>로 각인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전문 직업을 다루는 작품이 이상하게 많이 들어온다. 씩씩하고 밝고, 그런 이미지가 있어서 그런지.

-<온에어> 이후 주변에서 드라마를 다시 하라고 권유했다던데, 정작 선택한 건 뮤지컬이다. =드라마 <시티홀>도 섭외가 들어왔다. 김선아씨 친구인 정부미 역할. 드라마 섭외가 많이 들어왔는데 <드림걸즈>와 드라마를 놓고 너무너무 고민을 많이 했다. <드림걸즈>가 길기도 했고.

-나중에 연장공연도 했잖나. =연장공연을 2주일 정도 했는데, 오디션부터 연습기간, 공연까지 1년 프로젝트였다. 연습이랑 공연이 거의 9개월이었거든. 주변 90% 정도가 드라마를 하라고 했는데, 에피라는 역할이 내게 너무 컸다. 지금 안 하면 두번 다시 못하지 않을까. 지금은 그 선택이 아주 현명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신랑도 반대했다. 드라마를 하라고. 그런데 <드림걸즈> 첫 공연 보고 잘했다고 그러더라.

-나도 봤다. 너무 잘하던데. =공연 봤구나. 언제 봤나.

-오픈하고 얼마 안돼서. =크, 뒤엔 더 잘했는데. 완전 잘했는데. (웃음) <드림걸즈> 하면서 논문도 썼거든. 에피 역할에 대해서. 논문 쓰고 더 잘했다.

-오디션에서 많이 떨었다고. =너무 떨렸지. <I’m Not Going>을 아침 10시에 부르라는 거다. 미국 연출가들은 그때부터 오디션을 보는 거지. 목을 풀려면 노래를 부르기 4시간 전엔 일어나야 하거든.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반신욕하고. 목 풀어야 하니까. 치열하게 봤다.

-그래도 <드림걸즈>는 일생일대의 경험이 아닐까 싶다. =<드림걸즈> 하면서 하, 뭐라 그래야 하지. 노래가 너무너무 어려운 거다. 해도 해도 성에 안 차고, 만들어지지 않는 느낌이 너무 많이 들더라. 뮤지컬 O.S.T도 나와 있는 상태고.

-영화도 있고. =맞다. 비교하기 쉬운 거지. 물론 많은 사람들이 흑인처럼 노래를 부를 순 없다고 인정하지만 어느 정도까지 해줘야 하는데 너무 어렵더라고. <Listen>의 작곡가인 헨리 크리거 할아버지가 열흘 정도 한국에 계셨다. 나는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웃음) 육십몇살이거든. 할아버지가 따로 불러가지고 명품 스카프를 선물해줬다. 내가 본 에피 중에서 네가 제일 사랑스럽다고. 펑펑 울었잖아. 그전까지 노래에 대한 자신감이 없는 상태였거든. 이젠 자신감을 가져도 되겠구나. 2막에서 부르는 <I Am Changing> 있잖나. 할아버지 머리가 빡빡이인데, 공연할 때마다 저 멀리 조명이 할아버지 얼굴처럼 보이면서 힘을 얻는 거지. (웃음)

-뮤지컬도 그렇고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활발하게 활동 중인데, 작품이나 역할을 선택하는 기준은 뭔가. =첫 번째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역할인가. 배우가 모든 역할을 다 잘할 순 없거든. 그 다음은 전체 작품이나 상대배우.

-어떤 역할이 자신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나. =<스위니 토드>의 러빗도 조금 아쉽게 마무리했지만, 에피도 그런 부분이 있었다. 그 캐릭터들은 사악한 부분이 좀 있어야 한다. 근데 천성이 안 사악해가지고. (웃음) 교활하고 요런 부분을 잘 못 살린 것 같고. 그나마 내가 누구보다 잘 살렸던 부분이 토드에 대한 사랑이다. 그게 다 사랑해서 벌어지는 일이잖나. <드림걸즈> 때도 2막에서 성숙한 에피의 모습은 잘 살렸지만 1막의 불만 많고 투덜거리는 모습은 조금 힘들었다.

-차가운 역할보다는 뜨거운 역할에 더 잘 어울린다. =그게 더 잘 맞더라. 그래서 정말 못된 악역은 못할 것 같고. 악역인데 귀여운 악역, 조금은 인간미가 있고 사랑스러운 악역.

-과장된 캐릭터를 즐기면서 연기한다는 느낌이 들던데, 뮤지컬이 워낙 드라마틱한 장르라 그럴까. =드라마에서 내게 요구하는 캐릭터가 그런 거다. 감초 같은 역할. 예컨대 <스타일>도 그렇다. 나는 촬영장에서 좀 누르려고 하거든. 너무 튀는 것 같아서. 그러면 감독님이 자꾸 요구한다. 아니야, 더 잘할 수 있는데 왜 그거밖에 안 해. 더더더더더! (웃음) 나를 불러다놓고 정적인 연기를 요구하진 않잖나.

-그래도 요즘 들어 뮤지컬 경력이 당신의 캐릭터를 쌓아가는 데 좋은 기초가 된다는 생각은 확실히 들더라. =너무너무. 무대에 서려면 아주 많은 트레이닝을 받아야 하잖나. 춤도 춰야 하고 노래도 해야 하고 연기도 해야 하고. 또 춤도 뭐, 하나만 추나. 한국무용도, 발레도, 재즈도, 탭도 해야 하고. 그래서 내가 예능을 가면 ‘거리’가 많잖아. 노래하라면 노래하지, 춤 필요하다 그러면 춤추지. 그리고 무대에 대한 동경들이 굉장히 많다. 배우들이 뮤지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이 물어본다. 박미선 언니만 해도 너무너무 하고 싶어 하는데 언니는 노래가 안되니까. (웃음)

-<스타일>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개인적으로 김혜수랑 붙는 장면이 재미있더라. 그녀는 딱딱 끊어 치는 서울 말씨인데, 당신은 애교있는 경상도 말씨니까. =원래 김혜수 언니 팬이다. 다이어리에 언니 사진 붙이고 다닐 정도로. 근데 붙는다는 거지. 매니저한테도 이야기했지만 다른 배우랑 할 때보다 혜수 언니랑 할 때 너무 편하다. 대사를 완벽하게 외우고 가지만 현장에서 말리거나 씹히는 경우가 있잖나. 그럼 다시 찍고 이러는데 혜수 언니랑 하면 그런 일도 거의 없다. 나는 누구랑 하면 더 잘되고 이런 편이 아닌데도 너무 잘 맞더라. 언니는 모를 거다. 내가 이런 이야길 안 해서. 더 떨리고 긴장돼서 불편하지 않을까 했는데 너무 좋다.

-핑크 헤어랑 애교 점은 본인 아이디어인가. =설정이다. 입술 위에 점이 있긴 한데 좀더 도드라지게 하고 싶어서. 헤어 피스는 컬러가 바뀐다. 핑크가 많았고. 파티신에서 잘은 안 보이지만 노란색이었고. 다음에 나오는 건 보라색이다. 작가님도 그렇고 감독님도 그렇고 과장하길 너무너무 요구하신다. (웃음)

-<스타일> 캐릭터 보고 남편은 뭐라던가. =우리 신랑은 내가 너무 오버하는 걸 싫어한다. 우리 신랑은 뭐랄까, 이른바 여배우스럽길 원한다. 그래서 내가 막 질펀하게 하는 걸, 어떤 느낌인지 알지? 그런 걸 별로 안 좋아한다. 살도 좀 많이 뺐으면 하고. 정형화된 배우이길 원한다. 그런데 그렇게 될 리는 없다고 항상 되뇌곤 한다. (웃음)

-혹시 생애 첫 무대를 기억하나. 돈 받고 처음 선 무대. =기억하지. <애랑과 배비장>이라고 마을 해녀 역할이었다. 이렇게 물동이 지고 지나가는. 그때만 해도 합창이 다 녹음이었거든. 15년 전이니까 다 MR이고 라이브가 아니었는데, 주인공들만 와이레스를 찼다. 근데 그 와이레스를 너무 차고 싶어서 면봉에 이렇게 까만 칠 해가지고 차고 나갔다. 그리고 돌아다녔다. (웃음) 서울예술단에서 스물몇살 신단원 때. 선배들이 어휴, 저거 뭐 되려고 저러는지, 하는 짓 좀 보라고. 욕심이 많았다.

-합창보다 독창이 잘 어울리는 목소리다. =합창할 때 튄다는 이야길 많이 듣지. 음악감독님들한테 많이 혼났다. 어릴 때는 합창이어도 내가 튀길 원했다. 상대방이 연기하고 있어도 내가 튀길 원해서 막 뭔가를 했다. (웃음) 근데 시간이 흘러보니까 그건 절대 잘하는 게 아니더라고. 지금도 후배 중에 그런 친구들이 꼭 있는데, 그러면 이야길 해준다. 그게 훌륭한 배우는 아니란다. 이게 내 신이 아니면 서포트를 해주는 게 맞다고.

-과거 서울예술단을 나와서 가수 데뷔를 준비한 적이 있다. 가수가 되겠다는 건 아직도 꿈의 노트에 있나. =있다. 정확히 가수가 되겠다는 건 아니고 이젠 내 앨범을 내고 싶다. 내 노래를 갖고 싶다. 극중 캐릭터가 돼서 부르는 노래 말고. 나는 <거위의 꿈> 같은 노래 너무 좋아한다. 메시지가 있고, 들으면 힘나잖나. 많은 사람들이 들으면 즐거워지는 그런 노랠 갖고 싶은 거다.

-예능도 좋고 드라마도 좋지만 그래도 역시 무대인가.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무대다. 그리고 무대에서 관객과 소통할 때의 짜릿함이 있다. 공연마다 오진 않는다. 매번 그걸 경험하면 정말 땡큐인데 그렇게 안되더라고. 근데 이게 딱 하나가 돼서 짜릿하게 오는 지점들이 있거든. 그럼 미친다. 너무 행복하고. 그걸 잊을 수 없어서 무대를 못 떠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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