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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옹졸한 ‘국가적 자존심’
문석 2009-09-25

박재범이 미국으로 떠났다. 한국을 ‘비하’했다는 이유로 내쫓긴 것이다. 4년 전 그는 마이스페이스에 “한국이 싫다”, “한국인들은 내가 하는 수준 낮은 랩을 잘한다고 칭찬한다. 정말 멍청하다”는 등의 글을 올렸고, 누군가에 의해 들춰진 이 글이 인터넷의 황색 저널리즘을 통해 퍼지면서 사태는 커졌다. 그런데 정말 죄인처럼 출국해야만 할 정도로 박재범이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일까.

그의 글에 대한 비난을 거칠게 요약한다면 ‘그렇게 한국이 싫으면 한국을 떠나라’는 이야기로 정리할 수 있다. 사실 한국에 와서 인기를 얻었으면서도 한국을 비난하는 건 점잖은 일이 아니다. 게다가 랩을 못 알아들으면서 칭찬한다는 이야기는 솔직히 기분 나쁘다. 그런데 그 글은 그가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에 쓰여졌다. 그는 미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근황을 얘기하면서 연습생으로서 살아가는 것에 관해 이런저런 불평을 했을 것이고, 그 와중에 그런 말이 튀어나온 것일 게다.

그래서 박재범을 ‘용서’해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그건 애초부터 용서받을 일도 아니고, 용서할 일도 아니라는 얘기를 하려는 거다. 그 글은 사적인 공간에 쓰여진 사적인 글이다. 누군가 살인을 저지르고 싶다고 쓰건 방화를 하고 싶다고 쓰건 그가 어떤 행위를 저지르지 않는 한 비난할 일은 아니다. 우리가 그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행동은 만약 네가 이런 생각을 한다면 이래저래서 잘못이라고 충고해주는 것일 거다. 박재범의 입장은 어쩌면 일기장 ‘검사’를 하던 교사에게 ‘왜 이런 나쁜 짓을 했냐’며 혼났던 경험과 비슷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한국 비하’라는 문제에 유독 민감한 것일까. 아마도 너무 자기중심적이거나 너무 타인의 눈을 의식하기 때문일 텐데, 상호작용의 결과물일 게다. 박재범은 ‘우리’와 다른 생각을 하는 외부인에 대한 배척심 때문에, <미녀들의 수다>에 나왔던 독일인 베라는 외국에 보일 한국의 이미지 때문에 비난받은 것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 호들갑이야말로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여간 이번 일을 보면서 정말 나도 한국이 싫어졌다. 한국 비하냐고? 우리의 옹졸한 ‘국가적 자존심’에 대한 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