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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액세서리] 면 포켓치프 하나로 누명을?

<비오는 수요일>

<비오는 수요일>은 히치콕의 단편이 차곡차곡 채워진 ‘앨프리드 히치콕 프레젠트’ 중 한편이다. 히치콕 특유의 무섭고 웃기고 아슬아슬한 짧은 영화들 사이에서 <펄햄씨의 경우> <죽음의 쇼핑> <크게 사랑받은 남자>와 함께 가장 기억에 남는 스토리일 이 필름은 영화라기보다는 연극에 가깝다.

첫 장면, 잘 꾸며놓은 거실에 가족이 모여 있다. 슬쩍 보기에도 좀 모자란 딸은 펑펑 울고 있고 엄마는 딸을 부둥켜안고 눈치만 보고 있다. 아들은 작은 체크무늬가 단정하게 배열된 재킷을 입고 목에는 실크 스카프를 둘렀다. 아버지는 단추가 여섯개 달린 더블 브레스티드 블레이저와 같은 소재의 팬츠, 흰색 셔츠와 리버스 타이를 갖춰 입고 가슴에는 흰색 면 포켓치프를 꽂았다. 페르솔 같기도 하고 모스콧 같기도 한 뿔테 안경이 완고해 보이는 성격을 더 부추긴다. 딸은 멍청한 얼굴에 딱 어울리게 멍청한 살인을 이제 막 저질렀고 아버지는 이걸 어떻게 하면 수습할까 방도를 찾는 중이다.

이때 이웃인 캡틴 스몰렛이 거실로 들어온다. 플란넬 재킷과 어두운 팬츠, 칼라가 좁은 셔츠에 레지멘털 타이를 맸는데 단추가 세개짜리 재킷의 두 번째 단추를 채운 모양새와 타이를 아주 짧게 맨 방식으로 볼 때 치장에 공을 많이 들이는 성격인 걸 눈치챌 수 있다. 그는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재킷에 꽂은 면 포켓치프를 탁 뽑아 어깨 위의 빗방울을 닦는다. 아버지는 그걸 지켜보고 있다가 시체가 있는 차고로 들어가 살해도구로 쓰인 크리켓 채를 자신의 포켓치프로 꼼꼼히 닦아낸다. 이윽고 포켓치프를 손에 감아쥐고 하수구 뚜껑도 열어본다. 늘 몸에 지니고 있는 포켓치프를 이용해서 순식간에 딸이 어질러놓은 범행 현장의 증거들을 없앤 아버지는 거실로 돌아와 캡틴 스몰렛에게 능청스럽게 차를 대접한다. 이때 아버지의 포켓치프는 다시 가슴에 뾰족한 산 모양으로 꽂혀 있다.

아버지는 캡틴 스몰렛에게 살해혐의를 뒤집어씌우고 의기양양하게 가족들 앞에서 일장연설을 한다. 주로 사건의 은닉과 알리바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다. 중요한 대목 전에는 포켓치프를 뽑아서 안경을 한번 닦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아버지의 계획은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곧 히치콕이 등장한다. 익히 알다시피 딸기코에 턱은 두겹이고 반쯤 대머리다. 그는 주석 주전자에 담긴 차를 졸졸 따르면서 가족의 살해 은닉은 실패로 돌아갔음을 알린다. 그러고는 이 짧은 이야기의 주제는 “피는 물보다 진한 것”이라고 말한다. 세상에, 이처럼 엉뚱한 종결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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