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사람들
[spot] 한국영화계의 섭외를 기다린다
이화정 사진 오계옥 2009-12-10

대학생국제평화영화제 심사위원으로 내한한 배우 오다기리 조

오다기리 조는 주문이 많은 배우다. 기자회견 전, 구두가 도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자들의 발을 묶어둔 야사나, 얼마 전 한국에서 촬영한 CF 현장을 철저히 비공개로 할 것을 요구해 제작진을 애먹였다는 일화는 오다기리 조와 관련한 심심치 않은 ‘뒷담화’ 중 하나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소속사는 그와 관련된 사진 한장도 허투루 나오지 않도록 직접 사진 셀렉팅을 요구하는 까다로움까지 잊지 않았다.

그럼 이건 어떤가. 그가 <피와 뼈>에서 작은 배역도 마다하지 않았던 성실한 배우이자, <박치기!>의 코믹한 모습에도 개의치 않았던 변신형 배우라는 점, 김기덕 감독의 <비몽>에 선뜻 도전했던 모험심 강한 배우라는 점 등은 또 다른 오다기리 조의 모습이다. 그는 메이저영화와 독립영화를 자유롭게 오가며, TV와 영화 어느 하나도 구분짓지 않는 종횡무진의 잡식성 배우다. 그러니 배역에 관한 한 오다기리 조만큼 자유로운 배우도 없을 것이며, 활동에 관한 한 그만큼 보수적인 연예인도 없을 것이다. 오다기리 조가 춘천에서 열리는 2009 대학생국제평화영화제의 심사위원 자격으로 참석했을 때도, 적잖이 놀랐다. 영화제쪽에서도 기대하지 않았던 뜻밖의 수락이라고 했다. 춘천에서 그를 만났다.

-이번 영화제는 어떤 계기로 참석하게 됐나. =영화제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내 영화를 이번 영화제에 상영하려고 하는데 무대인사를 해줄 수 있겠냐고. 작품을 상영하는 건 관계없지만 무대인사는 힘들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사실은 심사위원으로 초청하고 싶었는데 그건 어떠냐고 하더라. 아, 심사위원이라면 괜찮다. 기꺼이 하겠다고 했다.

-심사위원이라면 오히려 더 부담스러운 제안이 아니었을까 싶다. =난 배우로 활동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배우의 본분은 ‘연기’까지다. 인터뷰나 무대인사에서 나 자신이 연기 이외의 말을 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나를 광고한다거나 말을 하는 것은 연기 이외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사위원으로 영화를 보고, 내 가치관으로 영화에 평가를 한다는 데 대해서는 그와 달리 긍정적이다. 그건 평소 내 취미와도 맞아떨어지는 일이다.

-직접 작품을 연출하기도 하니, 연출자의 입장이 다분히 반영돼서 그런가보다. =어려서부터 연출자적인 눈으로 영화를 보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가족이 어머니와 단둘이었는데, 어머니는 볼일이 있으시면 나를 극장에 데려다주셨다. 하루에 똑같은 영화를 계속계속 외울 때까지 본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때부터 배우라기보다 감독의 눈으로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이번 심사도 그래서 어렵거나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평가할 때 자신만의 선정 기준은 무엇이었나. =카메라 움직임, 편집, 연기, 연출, 스토리, 아이디어 등을 평가했다. 대본에 대한 아이디어, 촬영에 대한 아이디어, 표현에 대한 아이디어, 영화에 대한 철학, 미술적인 부분 등을 표로 만들어서 각 항목에 점수를 줬다. 뭐 그리 대단한 표는 아닐 수도 있지만, 내 의식이 반영된 표다. 대학생들의 영화지만 내게 충격을 줄 정도로 뛰어난 작품도 발견했다. 아직 밝히긴 곤란하다. (웃음)

-이번 영화제 참가뿐만 아니라 부쩍 한국에서의 활동이 많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 =그 이유는 내가 더 궁금하다. (웃음) 생각해보니 타이밍이 아닐까 싶다. 최근 들어 일본영화계에 비해서 한국영화계가 더 발전했다. 한국은 작품성있는 영화가 꾸준히 생산되는 곳이고, 좋은 감독도 많다. 그러다보니 나 역시 한국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비몽> 개봉 인터뷰 당시, 기회가 있다면 한국영화 출연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했다. =일단 소속사에서 걸러낸 작품만 받게 되니, 정확히 어느 정도 한국쪽에서 섭외가 오는지 잘 모른다. 난 받은 작품에서 시나리오를 보고 판단한다. 비즈니스적인 관심은 거의 전무한 편이라, 한국영화 중에서도 액션, 멜로와 같은 엔터테인먼트 영화에는 관심이 없다. 봉준호, 이창동, 박찬욱 감독 등과 같이 메이저 영화계에서도 실력을 발휘하면서 작가성을 가진 감독과 함께 일하고 싶다. 제안이 온다면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다.

-<꿈속에> <스크랩 헤븐> <유레루> 등 독립영화에서의 역할도 당신의 배역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젊은 감독, 인디영화쪽에서 일하는 감독 중 재능있는 인재가 많다. 그들과의 작업을 통해서 나 역시 재능을 얻고 싶다. 메이저 감독이 대중에 접근하기 위해 알기 쉽게 표현하는 작품들은 나의 관심 영역 밖이다. 그들과는 다른 유니크한 재능을 가진 이들과 일하고 싶다. 그게 내 연기에도 결국 자극이 된다.

-작품 활동 영역이 다양하다. 자신을 감춘다는 이미지와 달리, 실은 다양한 교류가 있는 게 아닌가. =전혀 아니다. 일을 위해서 누군가와 교류하는 일은 없다. 난 보이는 이미지 그대로, 언론에서 알려진 그대로의 삶을 산다. 집에서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자주 누구를 만나지도 않는다. 내가 하는 음악, 미술 등 거의 모든 작업을 집에서만 한다.

-현재 계획 중인 작품이 궁금하다. =일본에서 곧 들어갈 영화 한편이 있다. TV쪽은 아직 고민 중이다. 벌써 10년 정도 일하고 있는데 일하다보면 생각할 게 많다. 내 요구뿐만 아니라 이 시대, 사회가 뭘 원하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TV와 영화는 관객층이 확연히 달라진다. TV는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다 봐야 하는 엔터테인먼트의 성향이 강한 매체다. 모든 사람이 즐기는 작품을 하자니 코믹 연기도 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는 그래서 다른 타깃을 목표로 한 작품들을 고르게 되고, 작은 역할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옛날에 같이 일했던 스탭이 감독이 되면,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하게 된다. 또, 좋아하는 감독이 있다면 작은 역할이라도 그의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

-감독들이 들으면 정말 좋아할 말이다. =그런가. 그러고 보니 난 어떤 역이든 다 괜찮을 것 같다. (웃음)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