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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삶에 대한 소품 같은 예찬 <도쿄 랑데뷰>
이화정 2010-01-27

synopsis 직장을 그만두고 할아버지의 땅을 팔아 빚을 갚으려는 노가미(니시지마 히데토시). 오래된 아파트가 있는 그곳의 땅은 할아버지의 것, 아파트는 동네 주점의 후지코(가가와 교코)의 것이다. 고집스런 할아버지를 설득하지 못해 애쓰던 중, 노가미는 우연히 같은 시기 직장을 그만둔 미사키(가세 료)와 맞선녀였던 프리랜서 푸드 코디네이터 료코(다케하나 아즈사)를 만나게 된다. 갈 곳 없는 둘은 곧 노가미의 낡은 아파트에서 함께 살기로 한다. 그리고 셋은 그곳에서 아무도 살지 않는 미스터리한 방 201호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할아버지의 비밀을 알게 된다.

세 남녀가 있다. 한명은 아버지가 남긴 빚을 갚을 요량으로 직장을 그만두었고, 또 한명은 거래처의 부당함에 욱해서 그만두었다. 맞선을 본 여자는, 결혼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결혼을 하면 삶이 달라질까 하는 희망에서 맞선을 봤다. 지금 세 청춘의 미래는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무기력한 세 남녀를 한 공간 안에 배치한 뒤 감독은 일종의 지켜보기를 진행한다. 무대는 곧 재개발을 해야 할 정도로 낡은 아파트. 시간이 정지된 곳이다.

공간을 지배하는 것은 놀랄 정도로 느린 박자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노가미의 할아버지를 설명하는 이미지는 찻잔이 놓인 툇마루라든가, 구부정한 등, 느린 걸음걸이가 전부다. 답답한 속도의 박자는 후지코가 경영하는 동네 주점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가끔 들르는 그들을 제외하곤 동네에서 다다미시공을 하는 업자가 전부다. 영화는 동작 대신 사색을, 움직임 대신 한장의 스틸 같은 이미지를 담는다.

영화가 활개를 띠는 순간은 미스터리한 방 201호의 비밀을 풀면서부터다. 과거 할아버지와 후지코가 간직한 사연을 알게 된 이들은, 현실을 도피하기에 급급했던 자신들이 비겁했음을 시인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무릎을 탁하고 칠 정도의 충격을 기대하긴 어렵다. 차라리 신예 감독 이케다 치히로가 두고두고 곱씹어볼 만한 가치를 찾으려 고심했다는 흔적이 역력한 정도다. 추진력과 활기를 구하는 대신 감독은 느린 삶에 대한 소품 같은 예찬을 전개한다. 따뜻한 온기의 순간을 완성시키는 건 역시 젊은 배우와 노배우들의 화합이다. 니시지마 히데토시, 가세 료, 다케하나 아즈사와 같은 최근 활동하는 배우들과 전설적인 일본 여배우 가가와 교코 등의 하모니를 지켜보는 건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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