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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뱀파이어 사회 <데이브레이커스>
김도훈 2010-03-17

synopsis 서기 2019년. 대부분의 인류는 전염병으로 뱀파이어가 된 상태다. 뱀파이어들은 인간 문명과 비슷한 사회를 만들고 살아가지만 혈액 공급을 위해 사육하는 인간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인간 사육회사 블러드 뱅크의 연구원 에드워드 달튼(에단 호크)은 인간과 뱀파이어가 공존할 수 있도록 혈액 대체재를 개발하려던 중 뱀파이어들의 사냥을 피해 숨어사는 라이오넬(윌렘 데포) 일행을 만난다. 그리고 에드워드는 뱀파이어를 인간으로 돌릴 수 있는 치료제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지능적인 뱀파이어들이 세상을 지배한다면? 딱 <데이브레이커스>와 같은 세상이 올 법도 하다. 1950년대 스타일의 검은 슈트로 쫙 빼입고 다니는 뱀파이어들은 직장도 다니고 교육도 받는다. 그럼 낮엔 대체 뭘 하느냐고? 고도로 발전한 문명의 뱀파이어들이 집에서 잠이나 잘 리 있겠는가. 도시는 지하보도로 연결되어 있고, 자동차에는 낮에도 운전할 수 있도록 자외선 차단막과 원격 조종 시스템이 장착되어 있다. <데이브레이커스>의 설정은 꽤 재미나다. 석유에 목맨 인간 문명의 메타포 같은 미래 뱀파이어 사회는 장르광들이 낄낄거리며 만들었을 법한 자잘한 아이디어들로 넘친다(혈액을 파는 스타벅스라니, 웃지 않을 수가 없다!).

다만 재미있는 설정과 아이디어로만 좋은 장르영화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데이브레이커스>의 운명은 주인공인 에단 호크의 운명과 닮아 있다. 중절모에 검은 슈트를 입고 파리한 얼굴에 노란 눈동자를 빛내는 뱀파이어 에단 호크는 그의 경력상 가장 근사한 캐릭터 중 하나다. 그러나 그가 치료법을 통해 인간으로 돌아오는 순간 아우라는 사라지고, 영화의 운명 역시 그러하다. 치료법이 발견되고 뱀파이어 사회가 무너지는 후반부는 아이디어로 빛나는 전반부에 비해 지나치게 관습적인 액션으로만 넘쳐난다. 제작사와 타협한 흔적이 완연하달까. 살육장면의 고어를 상업영화가 할 수 있는 최대치로 밀어붙이는 뚝심을 보다보면 더더욱 타협의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그래도 스피어리그 형제의 이름은 기억해둘 필요가 있겠다. 피터와 마이클 스피어리그는 2003년작 호주영화 <언데드>(Undead)를 통해 장편 데뷔한 쌍둥이 형제다. 오래전 부천영화제에서 공개됐던 <언데드>는 묵시록적 좀비 호러와 전통적인 SF 장르를 기묘하게 얽어놓은 쾌작이었다. 6년 만에 할리우드에 진출한 스피어리그의 <데이브레이커스>는 자신들의 가능성을 완전히 증명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스피어리그 형제가 새로운 워쇼스키 형제의 자리를 꿰어차지 못하란 법은 없다. 제작비 2천만달러의 푼돈으로 이런 장르영화를 만드는 데는 어쨌거나 재능이라는 게 필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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