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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꼼꼼히 뜯어보기
2001-12-14

한국 상륙한 메가히트작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그 마법의 비밀

글쎄, 내가 세상을 뒤집어 놨대요 프리벳가 4번지 계단 밑 비좁은 벽장에서 구박덩이로 자란 고아 소년 해리 포터에게,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기적은 아마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알로 호모라! 그의 눈앞에 마법의 성문이 활짝 열린 열한살 생일 이후, 소년은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클래스메이트뿐 아니라 천문학적 머릿수의 독자(4권 <해리 포터와 불의 잔>까지 총 1억1천만부 추산)를 신실한 벗으로 얻었다. 선택받은 아이 해리에 대한 경배의 물결은, 머글(마법사가 아닌 보통 인간)들에게 허락된 ‘소망의 거울’인 영화를 통해 또 한번 파고를 높이고 있다. 지난 11월16일 미국 전역 스크린의 1/4에 해당하는 3672개 스크린을 뒤덮으며 베일을 벗은 영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개봉 닷새 만에 입장 수입 1억달러라는 박스오피스의 골든 스니치(마법사 스포츠 퀴디치의 150점짜리 공)를 잽싸게 거머쥐어 <스타워즈 에피소드1>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12월2일 현재 미국 내 수입 2억1967만달러에 다다랐다. 밖으로는 일본을 비롯한 각국에서 개봉 흥행 기록을 고쳐 쓰며 1억53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이 꼬마 마법사를 물리칠 힘이 없기는 한국 관객도 마찬가지. 개봉을 12일 앞둔 12월5일 현재 <해리 포터…>의 티켓은 11만장이 예매돼 <무사>의 8만6천장 예매 기록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미친 테러 여파 뉴스에 이어 온갖 화제로 외신을 도배하고 있는 <해리 포터…> 관련 최신 소식 중 하나는, 영화가 조성한 붐 속에서 원작자 조앤 K. 롤링과 블룸즈버리 출판사가 원작을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번역해 어린이들의 고대 언어 학습 욕구를 진작시키기로 했다는 것. 이제 똑똑한 헤르미온느를 동경하는 해리 포터의 소녀 팬들은 라틴어 판 ‘아리우스 포터’ 시리즈에 심취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안경테 모양까지 원작 그대로

온갖 소문과 어마어마한 숫자들의 숲 속에 깊숙이 들어앉아 있던 영화 <해리 포터…>는, 벽돌 하나까지 원작의 설계도대로 쌓아올린 ‘고지식한’ 판타지로 마침내 성채(城砦)를 드러냈다. 보통 가족용 영화보다 무려 한 시간이 긴 152분 러닝타임의 <해리 포터…>는, 내러티브 전개 순서는 말할 것도 없고 탄복스러울 만큼 적확한 타이프캐스팅부터 덤블도어 교수의 안경테 모양에 이르기까지 조앤 K. 롤링의 원작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실제로 페이퍼백 판으로 300쪽이 넘는 소설이 셀룰로이드에 옮겨지면서 생략된 부분은 호그와트 입학 전 해리의 생활 일부와 해그리드가 부화시킨 용 노버트를 둘러싼 한바탕 소동, 소리의 요정 피브스의 캐릭터 등이 고작이다. 호그와트 기숙사 배정을 주관하는 말하는 모자가 영화에서는 아이들 귀에 속삭이지 않고 큰 소리로 떠벌린다는 설정이 영화가 꾀한 가장 대담한 변형일 정도.

1999년 9월22일 조앤 K. 롤링의 베스트셀러 영화화 계획과 캐스팅을 공식 발표한 이래 워너는 <해리 포터…>가 일견 상업적으로 안전하기 이를 데 없는 기획으로 보이는 반면, 광범하게 형성된 원작의 팬덤이 언제든지 수호대에서 안티 그룹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냉정한 현실을 감당해야 했다. 시리즈의 문을 연 <해리 포터…>는 4권까지 판권을 획득한 워너브러더스가 택한 전략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즉, 영화 한편의 재미와 카타르시스를 증폭시키기보다, 원작에 대해 철저히 겸손하게 접근함으로써 포터마니아들을 포섭해 7편까지 이어지는 장거리 레이스가 펼쳐질 트랙을 탄탄히 다지는 데에 주안점을 둔 것이다. 하지만 이 사업 전략은 영화의 궁극적 완성도에도 '착한 마법'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치는 간단하다. 만약 사람들이 그토록 원작 소설의 모든 디테일을 사랑했다면 그것들을 영화에 모두 눌러 담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더구나 해리의 환상적 모험담에서 중요한 매혹은 수수께끼 풀이나 특정 사건이 아니라 다양한 캐릭터와 이벤트로 이루어진 파노라마 자체의 풍부한 양감과 색채임을 상기할 때, 편의적 각색에 따르는 위험은 무릅쓸 만한 가치가 없다.

크리스 콜럼버스, “손쉬운 감상주의 감염을 막는다”

감독 인선도 <해리 포터…> 시리즈의 지향과 무관하지 않다. 1999년 내내 <해리 포터…>를 손에 쥐고 고민하던 스티븐 스필버그가 끝내 <A.I.> 프로젝트로 발길을 돌리면서 오디션에 모여든 아이반 라이트먼, 브래드 실버링, 테리 길리엄 등 쟁쟁한 이름들을 제친 크리스 콜럼버스(43)는, 일단 멀티플렉스와 어린이 관객 시장에서 신뢰도가 높은 감독이다. 그는 확실한 소재만 골라 안정된 오프닝 성적을 유지해 왔으며 셜리 템플 이후 가장 큰 센세이션을 일으킨 아역스타 매컬리 컬킨을 키워낸 장본인이다. 그런가 하면 <나홀로 집에> <미세스 다웃파이어> <스텝맘> 같은 콜럼버스 전작은 해리처럼 부모로부터 유기 내지 방기당한 아이들의 스토리를 직간접적으로 다룬 바 있다. 촬영 현장에서 온화하고 요구조건이 까다롭지 않은 스타일로 알려진 크리스 콜럼버스는 슬기롭게도 조앤 K. 롤링이 창조한 세계에 그가 보탤 것이 없으며 설령 그가 첨가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 해도 관객이 그리 반기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재빨리 깨달았고 원작자의 크고 작은 조언과 권고에 충실했다. 특이한 카메라 앵글도 삼가며 한번에 한 조각의 감정을 전하는 데에 자족한 콜럼버스의 연출은,“머글이 부린 마술을 보는 듯하다”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러나 <해리 포터…>가 많은 장소와 사건을 일주하는 원작의 복잡한 여정을 꼼꼼히 뒤밟으면서도 겅중대거나 숨가쁜 느낌을 피할 수 있었다는 점은 눈에 띄지 않는 중요한 성취다.

크리스 콜럼버스의 감독 낙점 소식에 제일 먼저 제기된 우려는, 쉽게 치유될 법하지 않은 그의 센티멘털리즘에 관한 경계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 영화는 밝은 조명뿐이었다. 한번도 원했던 만큼 시각적으로 흥미롭지 않았다. 왜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해리 포터…>는 어두운 이면으로 데려가고 싶은 영화다. 이것이 내게 얼마나 큰 해방감을 주는 일인지 모른다”고 일찍이 밝혔던 콜럼버스는 <해리 포터…>가 손쉬운 감상주의에 감염되는 불상사를 막았다. 해리는 원작과 다름없이 의연하게 비범한 숙명을 받아들인다. 관객의 눈물을 은근히 바랄 때도 영화는 해리가 모두 잠든 기숙사 창가에 말없이 앉아 있게 하거나 거울에 비친 죽은 부모님의 영상을 가만히 어루만지게 하는 데에서 손을 거둔다. 여기에는 아이들을 주인 대접하는 척하면서 그들의 세계를 어른의 눈으로 내려다보기 일쑤였던 할리우드 어린이영화의 나쁜 습관도, <나홀로 집에> 시리즈의 웃음 뒤에 석연치 않은 그늘을 드리웠던 사디즘도 흔적이 없다.

결과적으로 작가 조앤 K. 롤링의 비전에 할리우드의 호화로운 프로덕션 파워가 충직한 시종으로 복무한 <해리 포터…>는 문법적으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상당한 거리를 둔, 대단히 영국적인 영화로 태어났다. 애초 스튜디오의 걱정거리였던 이같은 ‘이국성’은 테러 이후 도피욕이 어느 때보다 강한 미국 시장에서도 뜻하지 않은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되고 있기도 하다. 영화 시사 뒤 영국 언론이 보인 압도적인 호의는 영국인들이, 영국 배우 인명사전을 그대로 캐스팅한 듯한 출연진과 영국식 퍼블릭 스쿨의 풍경, 의젓한 영국 어린이, 유산영화로 낯익은 영국의 풍광으로 채워진 <해리 포터…>를 자국 영화로 간주하고 있음을 뒷받침한다. 실제로 1999년 워너가 판권을 획득하자마자 영국 필름 커미션의 공무원들은 워너브러더스를 방문해 제작비의 대부분을 영국 안에서 소비하는 대신 로케이션 헌팅과 리브스덴 스튜디오의 장기적인 제공을 약속하기도 했다.

누구도 <해리 포터…> 시리즈가 독창성을 발판으로 걸작의 반열에 올려질 영화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조앤 K. 롤링의 소설이 성경과 신화의 해묵은 원형 위에 신데렐라의 수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체스 게임, <피터팬>의 비행, <백설공주>의 요술 거울을 문양으로 배치한 것처럼, 크리스 콜럼버스의 영화도 <수퍼맨> <데이비드 코퍼필드> <글래디에이터> <에이리언>을 기억하게 하는 이미지 편린들을 구석구석에 끌어들인다.

<해리 포터…>는 왜 특별한가?

<해리 포터…>를 통해, 4부까지 영화화가 확정된 이 시리즈가 보유한 ‘포스’의 세목은 드러났다. 첫째는 캐릭터의 매력. 각기 다른 콤플렉스와 장점을 지닌 해리, 론, 헤르미온느는 부모의 곁을 떠나 학교의 엄격한 규율과 줄다리기를 하며 목표를 성취해가는 당당한 영웅이다. 특히 선악의 경계에서 피를 흘리며 싸워나가야 할 숙명의 주인공 해리는 그저 착해빠진 어린 왕자가 아니라 <스타워즈> 시리즈의 아나킨 스카이워커처럼 끝없이 새롭게 발견되는 매혹적인 캐릭터로 성장할 싹을 보인다. 자신을 괴롭히던 이들이 마법으로 응징당하는 순간 천진한 해리의 얼굴에 어떤 연민도 없이 피어나는 눈부신 웃음이나, 석상들과의 체스 경기에서 친구의 희생을 받아들이며 “멈춰, 우리는 아직 게임중이야!”를 외치는 단호한 목소리는 이 사랑스런 소년 속에 잠들어 있는 냉정한 품위와 어두운 운명을 상상하게 만든다.

둘째로 <해리 포터…>는 여름방학마다 꼬박꼬박 프리벳가로 돌아가야 하는 주인공처럼,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되 주기적으로 동시대의 현실로 착륙하는 독특한 재미를 자랑한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약물학, 변신술 수업의 교실을 들여다보고 기숙사간의 경쟁, 학교 스포츠를 훔쳐보는 ‘학원물’의 재미는 10대 관객을 붙들어둘 만하다. 인종주의를 비롯한 갖은 편견을 경고하는 동시대적인 교훈이 발생하는 것도 이 대목. 또한 <해리 포터…>는 착실하고 평면적인 연출법을 선택한 대신 프로덕션 디자인이 그려내는 정적인 스펙터클에 주안점을 둘 것임을 예고한다. 그저 충실한 것이 아니라 ‘리크리에이션’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호평을 끌어낸 <해리 포터…>의 세트와 소품들은 잠시 태초에 영화가 있었고 혹시 소설이 그 줄거리를 받아 쓴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장교하다. 이렇듯 만족스러운 1편의 미술은 포터시리즈가 확보한 큰 자산이기도 하다. 괴물 바실리스크는 어떻게 생겼는지, 비밀일기장 안에 잠든 기억의 세계는 어떻게 연출될지, 생각을 담아두는 대야 펜시브는 어떤 모양일지, 세계 각처에서 온 네 마리 용의 자태는 어떤 장관일지에 대한 궁금증은 포터마니아들을 지속적으로 박스오피스로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한편 ‘그림’ 위주로 단선적으로 풀려나가는 내러티브 위에 또렷한 액센트를 찍는 1편 퀴디치 게임(미식축구, 크리켓, 폴로를 결합한 규칙을 지닌 공중 구기종목)의 짜릿한 클라이맥스를 속편에 등장할 퀴디치 월드컵이나 트리위저드 게임의 역할을 짐작하게 한다.

이미지의 마법이여, 오라

크리스 콜럼버스가 계속 요술 지팡이를 휘두르고 케네스 브래너가 허영덩어리 교수 질데로이 록허트로 합류할 해리 포터 시리즈 2편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은 1편 개봉과 거의 동시에 속편 제작에 착수했으며, 시나리오 작가 스티븐 클로브스는 3편의 각본을 거의 마무리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리얼타임으로 주인공들의 성장을 따라가는 이상적 스케줄이 실현된다면 해리가 호그와트를 졸업하는 2007년경 마지막 일곱 번째 봉인을 떼게 될 해리 포터 시리즈의 성공 여부는, 해리가 성년에 다가감에 따라 필연적으로 한층 복잡하고 어두워질 동화의 에테르를 얼마나 제대로 살려내느냐에 달렸다.

해리가 되뇌듯 어차피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작가 조앤 K. 롤링의 펜은 우리에게 이미 해리와 친구들의 운명과 모험의 우여곡절을 소상히 가르쳐 주었으나, 우리는 여전히 그것들이 스크린 위에 어떻게 ‘현현’할 것인가를 놓고 다시금 마음을 졸인다. 다이애건 앨리(마법사들의 쇼핑 거리)의 요술지팡이 가게 주인 올리밴더는 해리에게 사악한 마법사 볼더모트의 지팡이와 같은 불사조의 깃털이 나눈 형제지팡이를 권하며 말한다. “볼더모트가 한 일은 위대한 일이었단다. 사악했지. 하지만 위대했다.” 영화 <해리 포터…>가 펴든 기나긴 ‘원더랜드 연대기’의 두루마리는 건망증 심한 머글인 우리에게 이미지의 마법을 상기시킨다. 암흑에 속하건 빛에 속하건, 위대함을 부인할 수 없는 그것을. 김혜리 vermeer@hani.co.kr ▶ 김혜리의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꼼꼼히 뜯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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