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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디자이너 톰 포드의 첫 번째 연출작 <싱글맨>

중년의 대학교수 조지(콜린 퍼스)는 연인 짐(매튜 구드)이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상실감에 빠져 살아간다. 매일 아침 눈을 뜨지만 그에게 삶은 더이상 살아갈 즐거움도 가치도 없다. 그를 둘러싼 시간은 무의미하게만 느껴지는 현재와 돌이킬 수 없는 아름다운 과거만 있다. 현재의 시간에서 조지는 전에는 잠시 연인이었으나 지금은 마음을 털어놓고 얘기할 만한 유일한 친구인 찰리(줄리언 무어)와 소란스러운 유흥의 밤을 보내거나 때때로 혼자 남겨질 때는 권총을 머리에 대고 세상을 버리겠다는 흉내를 내곤 한다. 그때마다 짐과 함께했던 시간이 그의 머릿속으로 찾아오고 관객의 눈에도 펼쳐진다. 그들은 조지의 단골 술집에서 만났고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조지가 짐과 만났던 바로 그 술집에 앉아 있는 순간, 그의 수업을 듣는 젊고 싱싱한 청년 케니(니콜라스 홀트)가 그에게 다가온다. 평소 조지에게 관심의 눈길을 보이더니 기어코 그날 밤 조지의 단골 술집에서 우연을 가장하고 나타난다. 외모가 준수하고 말이 잘 통하는 케니에게 조지는 점점 끌린다. 이제 조지는 새로운 연인을 만나고 외로움을 딛고 다시 시작하게 되는 것인가. 영화는 그렇게 1962년 겨울 어느 날의 그를 보여준다.

<싱글맨>은 동성애가 무언가 병적이거나 범죄적이라는 인식이 절대적이었던 그 시절에 소설가 크리스토퍼 이셔우드가 쓴 소설의 제목이다. 1904년생인 원작자 이셔우드는 60살이던 1964년 이 소설을 썼으며 여기에는 그의 성적 소수자로서의 자전적 정서가 배어 있다. 그리고 영화는 동명의 제목을 취했다. 역시 성적 소수자로서 이 소설을 20대에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감독 톰 포드는 그의 데뷔작으로 마침내 이 작품을 택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싱글맨>이 제작과정에서부터 큰 관심을 모은 이유는 영화의 내용이나 동기보다 구치의 수석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 톰 포드의 첫 번째 연출작이라는 점에서였다. <싱글맨>의 주인공 조지는 왜 소수자가 억압받는가 하는 문제에 관해 그건 사람들의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학생들에게 말하는데, 어쩌면 <싱글맨>이 두려움과 외로움에 관한 영화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톰 포드가 그 정서를 어떻게 옮겨냈는가 하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영화의 곳곳에 상존해 있는 죽음에의 통찰 혹은 사랑없이 삶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명상적인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은 당장 눈길을 끈다. 그것들이 원작에서 표현된 심리적 기술을 옮기려는 톰 포드의 노력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영화는 동시에 그 정서를 위해 배우들의 연기에도 많은 부분 기대고 있다. 작은 몸짓으로도 고뇌와 낭만을 던질 줄 아는 콜린 퍼스가 주인공으로 분위기를 이끌고, 대배우 줄리언 무어가 조역으로 그를 도우며, <어바웃 어 보이>의 꼬마였지만 지금은 조각 같은 육체를 과시하는 니콜라스 홀트가 콜린 퍼스의 상대역으로 출연하여 신선함을 준다.

그럼에도 종합적으로 본다면 <싱글맨>이 뛰어난 작품인 것 같진 않다. 물론 영화의 어떤 부분은 자극적이다. 가령, 콜린 퍼스의 차림새는 이상하게도 한 시대를 풍미한 대배우이면서 패션의 아이콘이었던 이탈리아의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의 중년을 떠올리게 한다. 동시에 매우 잘 구획되고 정리된 조지의 집 또는 찰리의 집은 매혹적인 근대식 가옥으로 일단 보기에도 흥미롭다. 또한 감독은 영화 전반의 색감에 예민하게 신경 썼고 그로써 정서의 농도를 표현하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인물들이 활동하고 있을 때 영화의 카메라는 그들을 어떻게 잡아 어떤 공기를 형성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으며, 숏의 운율이나 음악 활용에서도 상당수 초보이거나 기계적이다. 결국에는 영화적으로 빈약하되 패션 화보집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창의적인 패션 디자이너가 영화도 창의적으로 만들거라고 생각하는 건 일부의 기대가 될 순 있어도 논리적으로는 이상한 말이다. 그건 멋진 화면을 만들 줄 아는 감독이 옷도 멋지게 디자인할 거라고 믿는 엉터리 기대와 같다. 데이비드 핀처가 옷을 디자인한다고 해서 그 옷이 뛰어날 거라고 믿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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