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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 대한 추억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언제입니까?>
장영엽 2010-05-26

영국 감독과 배우들이 아버지를 주제로 만든, 영국판 <친정엄마> 혹은 <애자> 정도가 되겠다. 영국 작가 블레이크 모리슨이 암 말기의 아버지를 돌보며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기록한 동명의 논픽션이 원작이다. 블레이크(콜린 퍼스)는 오랜만에 집에 들렀다가 아버지 아서(짐 브로드벤트)가 말기암을 선고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부자간의 서먹함은 줄어들지 않고, 블레이크는 오래전 아버지와 멀어지기 이전의 기억부터 되짚어보기 시작한다.

아버지와 아들이 주인공인 많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은 세대와 생각과 타이밍의 차이가 야기한 부자간의 틈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응시한다. 유년 시절의 블레이크에게 아서는 거인 같은 존재다. 수줍고, 여리고, 조심스러운 성격의 블레이크와 달리 아서는 거침없고, 호탕하고, 대범해 보인다. 자신과 너무 다른 아버지에게 블레이크는 열등감을 느끼지만, 현재로 오면 상황은 달라진다. 어른이 된 블레이크의 눈앞에는 마르고, 초췌하고, 심장박동기를 달아야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노쇠한 몸의 아버지가 있을 뿐이다. 이 영화가 승부를 거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과거와 현재의 간극을 극대화함으로써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무난한 방식으로 온갖 종류의 불치병과 자극적인 설정에 단련된 한국 관객을 얼마나 움직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영화는 무덤덤→과거 회상→현실 직시→슬픔 인식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방식을 고수하다가 ‘아버지의 진짜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언제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으로 여운을 남기려 하는데, 곱씹어볼 만한 감흥을 주는 데에는 끝내 실패한다. 이 영화의 유일한 흥미는 한국의 신파물이 얼마나 진화를 거듭했는지 깨닫게 해주는, 하나의 척도가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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