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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폭탄을 쥔 어느 대필작가 이야기 <유령작가>
강병진 2010-06-02

“책이 아니라, 폭탄이군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신작 <유령작가>는 시한폭탄을 쥔 어느 대필작가 이야기다. 영국의 전 총리 아담 랭(피어스 브로스넌)의 자서전을 쓰던 작가가 의문의 죽임을 당하고 또 다른 대필작가(이완 맥그리거)가 대신 일을 맡는다. (영화에서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 그는 랭에게 “당신의 유령”이라며 자신을 소개한다. 전임자의 초고를 다듬던 무렵, 언론은 랭이 재임 시절 테러리스트를 고문하려던 CIA를 도왔다는 사실을 밝힌다. 랭의 입지가 위기에 몰린 한편, 유령작가는 전임자가 남긴 자료를 통해 랭의 비밀을 알게 된다.

<유령작가>의 원작은 <당신들의 조국>과 <폼페이> 등을 쓴 로버트 해리스의 동명 소설이다. 폴란스키는 그와 함께 시나리오를 쓰면서 방대하고 다소 무거운 원작의 세계를 가벼운 발걸음으로 누볐다. 그럼에도 원작이 다루고 있던 정치·문화적 풍자를 건너뛰지는 않는다. 오히려 <유령작가>는 블랙코미디와 누아르, 서스펜스 등 다양한 장르를 끌어안으면서 영화적으로 풍부한 재미를 드러내는 영화다. 전반부를 채우는 비 오는 겨울 해변의 풍경에서 비롯된 스산한 기운은 <유령작가>의 전체적인 공기다. 폴란스키는 조용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지켜가면서도 진폭이 큰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특히 유령작가가 자신을 쫓는 차들과 벌이는 추격전은 별다른 충격효과나 빠른 편집없이 느긋한 연출로 긴장감을 일궈내고 있다. 분당 회전수 경쟁을 하고 있는 최근의 스릴러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경험일 듯. 몇몇 장면의 음악과 연출이 히치콕을 의식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유령작가>를 걸작의 반열에 올리기는 머뭇거려지지만, 서스펜스에 능한 장인의 원숙한 결과물로 볼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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