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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한 아이거 북벽과 싸운 남자들 <노스페이스>
주성철 2010-06-02

“자, 그럼 여기서 저기로 가서, 그리고 그 다음은… 할렐루야.” 실력도 장비도 중요하지만 모든 것은 운명에 달려 있다. 더구나 요즘처럼 모든 것이 현대화되지 못한 그 시절엔 더욱 그러했으리라. <노스페이스>는 1930년대를 배경으로 혹독한 아이거 북벽과 싸운 남자들의 얘기다. 1936년 독일은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국위 선양을 위한 죽음의 아이거 북벽 등반을 위해 전세계 산악인들을 자극한다. 군에서 산악병으로 복무 중이던 토니(벤노 퓨어만)와 앤디(플로리안 루카스)도 처음엔 너무 위험한 일이라 망설이지만, 아이거 북벽을 처음으로 오르고 싶다는 일념으로 등반을 결심한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기자들과 관람객은 아이거 북벽 아래 호텔로 모여들고, 토니와 앤디의 고향 친구이자 토니의 옛 연인인 루이즈(요한나 보칼렉)도 취재차 아이거 북벽을 방문해 이들과 조우한다. 하지만 토니는 그녀 곁에 새로운 연인이 있음을 알고 크게 실망한다.

‘아이거’ 혹은 ‘오우거’라는 이름은 도깨비의 다른 말이다. 산의 거대한 얼음바위에 그 거대한 도깨비가 살아서 근접하는 사람이 있으면 모두 잡아먹는다는 기분 나쁜 전설을 가진 산이 바로 아이거 북벽이다. <노스페이스>는 산악영화의 정석이라 할 수 있다. 오르려고 하는 사람들의 굳은 의지와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 원래 오르려는 마음이 없었지만 친구의 등반을 돕기 위해 함께 오르는 또 다른 친구의 의리,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눈보라와 눈사태를 쏟아붓는 거대한 산의 존재 등 <노스페이스>는 내러티브의 잔기교 없이 두 남자의 등반일지를 따른다. 그러면서 루이즈는 여전히 토니를 향한 자신의 마음이 애틋함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노스페이스>의 이야기는 직진만을 거듭하는 영화 속 주인공들을 닮았다.

아이거 북벽으로 향하기 전 등장하는 산악마을 클라이네 샤이덱의 풍경 등 ‘설산’을 담아낸 장면은 물론, 등반의 사소한 실수부터 거대한 암벽을 로프 하나로 의지해 점프하는 클라이밍 장면 등은 1930년대라는 시대배경과 무관하게 생생한 사실감을 준다. 자일에 매달린 채 구조대를 기다리는 초조함도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보는 사람이 주인공의 의지에 자연스레 감화되게 만든다고나 할까. 오프닝에 등장하는 토니의 등반일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산을 오르기 전에 스스로 묻는다. 내가 과연 오를 수 있을까? 왜 오르려고 하는 걸까? 하지만 오르고 나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모든 걸 잊게 된다.” 산이 바로 저기 있기 때문에 오른다는 고색창연한 얘기가 불변의 진리임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산’과 ‘육체’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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