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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레드가 물결쳐도, 때때로 문화활동
문석 2010-06-14

바야흐로 월드컵 시즌이다. 축구를 꽤 좋아해서 클럽 축구만이 진정한 축구라고 부르짖어왔지만 막상 월드컵이 다가오니 가슴이 부푸는 게 사실이다. 대기업의 어마어마한 월드컵 마케팅이 진저리나게 싫고(우리 잡지도 그 혜택을 좀 받는다면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애국심을 강요하는 분위기도 짜증나지만, 결국 경기가 시작되고 나면 그 안으로 빨려들어가게 될 게 뻔하니 월드컵에 대한 불평은 참는 게 낫겠다. 월드컵도 그저 축구다, 라는 말만 하고 싶다. ‘민족적 자긍심’이나 ‘국가의 사기’ 따위의 잣대를 들이대지 말라는 말이다. 축구 또한 실력있는 쪽이, 컨디션이 나은 쪽이, 운 좋은 쪽이 이기는 스포츠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축구 자체를 보면 되고 축구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은 축제를 즐기면 되는 것이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사람들이 월드컵에 온 관심을 쏟는 이 순간이 오면 영화계는 항상 긴장을 하곤 한다. 왜 아니겠는가. 월드컵이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로 군림하는 때이다 보니 사람들이 영화 ‘따위’에 관심이나 가질까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얼마 전 만난 멀티플렉스 관계자는 다 기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2002년과 2006년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영화관객이 크게 줄지 않았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독일에서 펼쳐진 2006년 월드컵의 경우 시차 때문에 거의 영향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긴 극장이야 3D로 월드컵 경기를 상영하기까지 하니 별 타격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 한편을 개봉할 때마다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개별 영화사의 입장은 좀 다르다. 홍보를 해도 월드컵 열기에 가리고 입소문 또한 평소보다 덜 퍼지는 게 사실이니 근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월드컵을 피해 개봉하자니 미리 일정을 확보한 대형 영화와 부딪히게 되니 부득불 월드컵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 외엔 도리가 없다.

<씨네21>의 고민 또한 비슷하다. 사람들이 영화에 관심을 덜 갖는다면 당연 영화잡지에서도 시선을 멀리할 것 아닌가. 그렇다고 해서 명색이 영화잡지인데 축구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펼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월드컵 때마다 축구영화 특집만을 만들 수도 없지 않은가. 이번호 특집은 월드컵 시즌이라 해도 어차피 24시간 내내 축구만 생각하고 보지는 않을 것 아니냐는 발상에서 시작했다. 평소보다 빨리 찾아온 이 여름을 다양한 문화활동으로 시원하게 보내자는 차원에서 ‘Special Summer Vacance Must30’을 마련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월드컵에 ‘맞서는’ 대안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제시한 리스트 외에 보다 좋은 여름나기 방법이 있다면 인터넷과 트위터를 통해 알려주시길 바란다.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팀을 뜨겁게 응원하는 와중에도 좋은 영화도 열심히 보고 알찬 문화생활도 즐기는 6월이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리고 웬만하면 <씨네21>에 대한 관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