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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질구질하고 영화 속 세상은 폭력적이다 <영도다리>
이주현 2010-06-30

<영도다리>의 첫 장면. 만삭의 소녀 인화가 산처럼 부푼 자신의 배를 바라본다. 뱃속 아이와의 따뜻한 교감 같은 건 없어 보인다. 열아홉 소녀는 혼자다. 자신의 부모도, 아이의 아버지도 곁에 없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뱃속의 아이 역시 태어나자마자 혼자가 될 것이다. 세상은 소녀를 미혼모라 부를 테고, 아이는 입양되거나 고아가 될 것이다. <영도다리>는 미혼모 인화(박하선)를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영화는 자식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어미의 마음을 구구절절이 보여주는 대신 폭력적인 세상에 던져진 한 소녀의 현재를 무덤덤한 톤으로 보여준다. 미혼모와 입양을 소재로 한 휴먼다큐멘터리의 감동을 <영도다리>에서 기대해선 안될 것 같다.

<영도다리>는 불편한 영화다. 인물들이 처한 상황은 하나같이 구질구질하고 영화 속 세상은 폭력적이다. 그런 세상에서 인물들은 현실에서 도망치려 하거나, 폭력을 폭력으로 갚거나,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모습으로 비굴해진다. 인화의 친구 상미(허린)는 돈을 벌어 일본에 가는 게 꿈이다. 돈벌이는 원조교제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친구들에게 불려가 구타도 당한다. 무릎을 꿇고 몸을 팔수록 일본에 가야겠다는 생각은 커진다. 인화와 한 동네에 사는 초등학생은 자신보다 어린 아이들에게 돈을 빼앗는다. 인화가 건네는 담배를 피우다가 아이는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는다. 일회적인 폭력이 아니라 일상적인 폭력이다. 입양기관 직원(김정태)은 친절한 미소로 인화에게 입양동의서를 건네지만 아이를 되찾으려는 인화가 회사로 찾아와 귀찮게 굴자, “너 같은 애 내가 많이 봤다”며 인화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영화를 보며 소름이 돋는 건 영화 속 세상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일상의 폭력을 무심한 듯 집요하게 보여주는 전수일 감독의 연출과 신인 박하선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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