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11번째 장편영화 <레퓨지>
이주현 2010-07-14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11번째 장편영화 <레퓨지>는 깊은 상실과 아물지 않은 상처에 대한 영화다. “죄책감이 들 겨를도 없었다. 루이의 죽음과 임신 소식. 그가 내게로 들어온 거라 생각했다.” 주인공의 고백처럼 <레퓨지>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함께 헤로인에 취했던 연인 루이(멜빌 푸포)와 무스(이자벨 카레). 루이는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사망하고, 무스는 루이의 아이를 임신한 채 살아남는다. 시골 바닷가 집으로 거처를 옮긴 무스는 부풀어 오르는 배를 보며 아이를 낳기로 마음먹는다. 그런 무스의 집에 루이의 동생 폴(루이스 로낭 슈아시)이 찾아온다. 무스에게 폴은 낯선 방문자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스는 스스럼없고 매력적인 젊은 남자 폴이 자신의 곁에 있어준다는 데 고마움을 느낀다. 폴에 대한 무스의 감정은 고마움을 넘어 질투심, 애틋함으로까지 이어진다.

여배우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스크린에 투영해 복잡미묘한 여성 캐릭터의 심리를 곧잘 묘사했던 프랑수아 오종은 <레퓨지>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한다. 그런데 <레퓨지>에서의 흥미로운 지점은 캐릭터의 심리묘사에서가 아니라 임신한 이자벨 카레의 몸을 카메라가 담을 때 발생한다. 임신한 여배우와의 작업을 꿈꿨던 오종은 마침 이자벨 카레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의 부풀어 오른 배를 에로틱하게 그릴 겁니다. 카메라로 당신의 배를 어루만지려 합니다.” 실제로 카메라에 담긴 이자벨 카레의 배는 묘한 잔상을 남긴다. 다만 오종이 <8명의 여인들>에서 보여준 재기발랄함, <스위밍 풀>의 유혹과 도발, <타임 투 리브>의 죽음에 대한 성찰이 <레퓨지>에서는 잘 엮이지 못하는 편이다. <레퓨지>는 오종이 영화적 신동에서 진중한 작가로 넘어가는 문턱에서 만든 과도기적 작품으로 남을 듯하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