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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형언할 수 없다!
주성철 2010-07-20

나카다이 다쓰야가 들려주는 나와 일본영화

1. <요짐보>에서 자꾸 어깨를 들썩이는 미후네 도시로

10대 때부터 구로사와 아키라와 미후네 도시로의 팬이었다. 나중에 두 사람과 함께 영화를 하게 된 건 꿈만 같은 일이다. 미후네 도시로는 실제로는 굉장히 과묵한 분이여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 기억은 별로 없다. <요짐보>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첫 장면부터 어깨를 으스대듯 들썩이며 등장하는 그의 모습인데, 나중에 듣기로 그것은 감독님의 지시가 아니라 미후네의 설정이었다고 한다. 사무라이들은 목욕을 잘 안 하기 때문에 몸에 이가 많아 가려워서 그런 동작을 취했다고 한다. 아무튼 다찌마와리 액션신에서 도시로 미후네가 보여주는 박력에 있어선 일본에서 대적할 배우가 없었다. 전문적으로 무술을 익힌 배우가 아님에도 그 동작의 민첩성과 간결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는 진정으로 동물적인 배우다.

2. <쓰바키 산주로> 라스트 결투신의 비밀

<쓰바키 산주로>

시나리오에는 마지막 장면에 대해 ‘산주로(미후네 도시로)와 무로토(나카다이 다쓰야)가 조용히 대결을 벌인다. 마지막은 말로 형언할 수 없다’라고 써 있었다. (웃음) 그 장면을 위해 검을 재빨리 꺼내는 일본 검술의 이아이누키(발도술) 훈련을 한달 동안 받았다. 좁은 공간에서 습격받았을 때 검을 옆으로 길게 빼지는 못하니까 순간적으로 위로 뽑아 내려치는 훈련이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미후네는 나를 베기 위해 어떤 훈련을 받고 있는지 전혀 가르쳐주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왼쪽에서 검을 뽑아 오른팔에 얹혀서 상대의 심장을 단칼에 내려치는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서로 모른 채로 훈련받다가 드디어 촬영 당일이 됐고 리허설은 전혀 없었다. 미후네와 내가 마주보고 있는 가운데 노가미 데루오 여사가 하나 둘 셋 하고 세고 카메라가 돌아가면 정확하게 28초 뒤에 연습한 대로 검을 뽑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렇게 28초가 됐을 때 검을 뽑았는데, 가슴에는 철판 같은 게 의상 아래 깔려 있고 그 밑의 호스가 10m 정도 저 멀리 큰 통과 연결돼 있었다. 미후네에게 베이는 건 알고 있었고 그 호스로 피가 좀 흐르나보다 했는데, 순간 온몸이 터질 것처럼 엄청난 압박이 가슴에 전해지면서 피가 솟구쳐 올랐다. NG를 안 내려고 이를 악물고 버텼는데 정말 내 눈앞으로 온통 세상이 빨갛게 보였다. 내가 20대였기 때문에 그 압력을 참을 수 있었을 거다. 그 모든 상황에 대해 미후네도 몰랐고 오직 감독과 무술지도 스탭만 알고 있었다.

3. 나루세 미키오, 그리고 다카미네 히데코와의 기억

구로사와 아키라와 나루세 미키오, 두 사람 모두와 똑같이 5편씩 작업했다. 두 사람 다 정서나 스타일상으로 완전히 다르다. 구로사와의 현장이 분노와 기쁨, 호통이 정신없이 뒤엉키는 아비규환의 세계라면(웃음) <아라쿠레>(1957)에서 처음 만난 나루세의 현장은 조용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함께 일한 감독 중 나루세가 가장 특이한 사람인데 그렇게 조용한 영화감독은 처음 봤다. 그리고 나루세는 구로사와의 선배이기도 한데, 내가 구로사와 영화를 끝낸 직후 그의 촬영장으로 가게 되면 ‘구로사와 영화에서 하듯 내 영화에서 연기하면 안된다’고 직접적으로 말씀하기도 했다.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는 지금 봐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 걸작인데 상대역인 다카미네 히데코와는 여러 작품을 함께했다. 나보다 8살이 많았는데 나루세 영화의 여성상을 대표하는 배우였고 <딸, 부인, 엄마>(1960)에서는 부부로 나왔다.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에서 그녀의 뺨을 때리는 장면이 있었는데 차마 못할 것 같다고 했는데도 감독님은 무조건 진짜 때려야 한다고 했다. 무사히 촬영을 마쳤고 그녀에게 너무 미안했지만 뭐 그런 걸 가지고 고민하냐고 얘기해줬다. 나루세 영화가 일상적 리얼리즘의 연기라며 그녀는 종종 긴장하고 있는 나에게 ‘그렇게 눈을 크게 뜨지 않아도 돼요’라고 웃으며 얘기해주곤 했다. 그렇게 나루세, 다카미네 히데코와 함께하면서 연극과 영화의 차이를 느끼며 내 연기가 더욱 성숙할 수 있었던 것 같다.

4. <>과 셰익스피어

나 역시 연극무대에서 종종 리어왕을 비롯해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하긴 했지만 맨 처음 리어왕을 연기한 것은 <>을 통해서였다. 물론 <>이 <리어왕>의 번안이기에 리어왕이라고 하면 안되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셰익스피어에게 혼날지도 모르지만(웃음) 구로사와는 자기만의 <리어왕>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일본에서 셰익스피어 극을 무대에 올릴 때는 희곡을 그대로 번역하고 배우들은 머리를 노랗게 염색해서 외국인처럼 그걸 연기했는데, 구로사와는 그것과 무관하게 자신이 선택한 시대 속으로 들어가 <리어왕>을 만들었다. <>은 감독님의 주문이 가장 많았던 작품이기도 한데, 현장에서 그는 나에게 절대 일부러 미친 척하지 말고 쓸데없이 소리를 지르지 말라고 했다. 전에 영국에서 <>에 대해 연극인들과 얘기한 적이 있는데 셰익스피어의 시적인 대사들은 다른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기가 굉장히 힘든데도, 구로사와는 그 시대 속에서 적절한 자기의 언어를 찾았고 그보다 더한 영상미가 압도적이라고 얘기해줬다. 부자간의 유대나 영주의 광기가 절묘하게 표현됐다고도 했다. 말하자면 <리어왕>과 다른 <>의 여러 요소들이 있는데, 원작과 달리 딸 대신 세 아들이 나오는 것에 대해서는 부자간의 골육상쟁의 장렬한 다툼을 그리기 좋을 거라 하셨다. 그리고 원작의 정서와 달리 ‘신도 부처도 없다’라는 대사도 있는데, <카게무샤>로 칸영화제에 가던 비행기 안에서 그가 다음 작품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문득 ‘지구에서 인간의 증오나 전쟁은 언제쯤 끝나게 될까’라며 인류멸망론에 대해서 얘기한 적 있다. <>에는 평소 구로사와의 정의와 악에 대한 생각들, 권력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들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은 구로사와 감독의 철학과 세계관의 집대성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