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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열과 불안이 뒤섞인 소녀 시절 <크랙>
장영엽 2010-07-28

여학생들이 모인 곳에는 반드시 무슨 일이든 생긴다. 그곳에 공동의 우상이 있을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크랙>은 라틴어 대신 수영을, 오만한 남교사 대신 매혹의 여교사를 끼워넣은 <비밀의 계절>(도나 다트의 소설) 같다. 누군가에게 모든 열정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 신체 건강한 수영반 여고생들은 그 에너지를 도도하고 완벽해 보이는 여선생 미스 G(에바 그린)에게 쏟는다. 그러나 곧 모든 면에서 소녀들을 압도하는 동급생 피아마(마리아 발베르드)가 전학오자 미스 G의 관심은 피아마에게 당도하고, 학생들은 동요하기 시작한다. 수영반 소녀들은 그녀들의 우상을 가로챈 동급생을 응징하려 한다.

소피아 코폴라의 <마리 앙투아네트>가 그렇듯, <크랙>은 미열과 불안이 뒤섞인 소녀 시절을 견뎌낸 이들이 잘 만들 수 있는 영화다. 조던 스콧은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를 통해 사춘기 소녀들의 삶의 조각들을 섬세하게 풀어놓는다. 덕분에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하는 건 디테일이다. 열쇠구멍 사이로 비밀을 엿보거나 타인에 대한 증오를 집단으로 공유하고, 절대적인 존재에 열광하는 성장기 소녀들의 심리 상태 묘사가 인상적이다. 하지만 완급 조절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영화는 ‘균열’(cracks)이란 제목처럼 빳빳하게 날선 긴장감을 마지막까지 살리는 데에는 실패한다. 그렇다고 영화계의 ‘로열 테넌바움’ 가족을 둔 조던 스콧(그의 아버지는 리들리 스콧이며, 삼촌은 토니 스콧이다)에게 벌써부터 실망할 일만은 아니다. 화면과 여자들을 매혹적으로 담아내는 조던 스콧의 재주에서 ‘비주얼리스트’ 리들리 스콧의 그림자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실크 바지를 입고 짙은 눈화장을 한 채 영국식 억양을 구사하는 에바 그린의 팜므파탈 연기는 칭찬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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