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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결한 여성을 위해 피 흘리며 구원을 소망한다 <아저씨>
김혜리 2010-08-04

<아저씨>를 본 누군가는, 이정범 감독의 전작인 설경구 주연의 <열혈남아>와 제목을 맞바꾸는 편이 어울린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느 모로 보나 꽃다운 청년인 태식(원빈)이 ‘아저씨’인 근거는 오직 하나, 옆집 소녀 소미(김새론)가 그렇게 부르기 때문이다. 소미를 필두로 영화 속 남녀노소는 일제히 태식을 “아저씨”라고 호명하는데, 이 광경은 아직 소년티가 남은 태식에게 보호자의 정체성을 불어넣기 위해 최면을 걸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 소녀가 ‘아저씨’라고 불러주기까지 태식은 오랜 시간을 주검처럼 살아온 남자다. 과거에 감히 이름도 욀 수 없는 극비 특작부대의 ‘섬멸요원’으로 복무했던 그는, 작전 후의 보복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숨어산다. 태식 자신처럼 쓰임새를 잃고 초라한 담보가 되어버린 물건들과 함께 기거하는 컴컴한 전당포가 그의 은신처다(우유와 선인장 화분은 드러내놓고 <레옹>을 향한 동경을 표하는 소품이다). 이웃집 소녀 소미는 늘 혼자 노는 아이다. 클럽 댄서로 일하는 엄마가 약기운에 신음하거나 술에 취해 같이 죽자고 할 때 소미는 아저씨한테 달려온다. 길에서 도둑질했다고 추궁받는 소미를 태식이 외면한 어느 날 밤, 소미의 집에는 사라진 마약을 찾는 범죄 조직원들이 들이닥쳐 모녀를 납치한다. 전당잡은 물건 때문에 범인들과 맞닥뜨린 태식은 소미를 살리기 위해 조직의 심부름을 맡지만, 소녀는 이참에 마약 거래 이권까지 차지하려는 장기매매 조직의 소굴로 끌려가버린다. “소미를 찾아도 너희 둘은 죽는다.” 라는 대사를 기점으로 태식의 싸움은 세상의 악에 혈혈단신으로 대드는 전쟁으로 승급된다. 소녀가 아저씨에게 마지막으로 선물한 ‘암흑의 기사’ 카드가 예언한 대로.

유괴복수극 <테이큰>의 리암 니슨과 <맨 온 파이어>의 덴젤 워싱턴 그리고 <레옹>의 장 르노에 준하는 인물 태식은 한국영화계로 치면 설경구나 송강호, 김윤식을 떠올릴 만한 배역이다. 살인기계에 가까운 태식을 원빈이라는 비현실적인 외모의 배우가 연기함으로써 이 영화가 그리는 강도 높은 폭력과 금기는 ‘견딜 만’해진다. 스크린의 잔혹함은 얼마간 미학적 감상의 대상으로 전이되고 아동 착취라는 극도로 불편한 소재의 실감은 완화된다. <택시 드라이버>의 유명한 대목을 연상시키는, 태식이 스스로 머리칼을 잘라 얼굴을 드러내는 장면에서 관객은 주인공의 광기에 긴장하는 대신 미모에 감탄하는 한숨을 흘리고 만다. <레옹>과 <맨 온 파이어>와 달리 <아저씨>는 소녀와 킬러가 동등한 힘으로 드라마를 끌어가는 쌍두마차가 아니다. 소미는 어디까지나 인질이며 심지어 때로는 태식을 활성화하기 위해 임한 유령 같기도 하다. 김새론의 얼굴은 여전히 풍부한 느낌을 내지만 전작 <여행자>에 비교하면 박제된 연기처럼 보인다.

경찰과 범죄자들의 생동하는 대사는 <아저씨>의 큰 강점이다. 반면 대화로서의 대사는 현저히 느슨하다. 특히 태식의 대사는 짧은 독백에, 소미의 그것은 긴 독백에 가깝다. 결과적으로 태식의 폭주에 충분한 동기를 마련해야 할, 둘의 초반 장면은 감정의 교류가 빈약하다. 감상적 음악이 보완을 꾀하지만 여의치 않다. <아저씨>에서 드러나지 않는 다른 한쌍의 흥미로운 관계는 태식과 타이에서 온 범죄조직원 람로완(타나용) 사이에 잠복해 있다. 냉혹한 킬러 람로완은 첫 만남부터 태식에게 매료된 기색이 역력하며 헨젤과 그레텔의 빵가루처럼 휴대폰을 흘리고 간다. 나이트클럽에서 군중을 사이에 두고 둘이 교환하는 응시는 영화를 통틀어 가장 맹렬하며, 클라이맥스 난투극에 이르면 그가 태식을 공격하는 건지 최후의 독대를 위해 엄호하는 건지 미묘하게 혼동될 지경이다. <아저씨>는 스타일이 선명한 액션으로 관객의 주의를 장악하는 데에 성공한다. 지갑으로 순식간에 단도를 제압하는 첫 싸움부터, 태식은 상대방 몸의 곧은 부위는 꺾고 마디를 이루는 부분은 혈을 짚듯 칼날을 휘둘러 툭툭 끊어버리는 스타카토 액션을 구사한다. 가벼움과 단호함이 쾌감의 요체다. 그러나 액션의 비중을 고려할 때 증기탕 혈투 외에 인상적인 세트 피스를 더 얻지 못한 점은 조금 아쉽다.

감독의 전작 <열혈남아>와 <아저씨>는 인상은 다르지만 닮은 형제다. <열혈남아>의 재문은 삶을 부지할 핑계를 복수에서 찾고 <아저씨>의 태식은 구출과 복수를 위해 긴 잠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순결한 여성을 위해 피 흘리며 구원을 소망한다. 다만 <열혈남아>가 관객에게 연민을 청했던 자리에서 <아저씨>는 매혹을 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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