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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실험자들의 허무한 표정 <엑스페리먼트>
강병진 2010-08-11

올리버 히르쉬비겔 감독의 2001년작인 <엑스페리먼트>는 영화 자체가 흥미로운 실험이었다. 영화의 소재가 된 감옥 실험은 1971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진행됐다. 사람들을 죄수와 간수로 구분한 뒤,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관찰한 이 실험은 몇몇 피실험자의 극단적인 돌출행동으로 종료됐다. 히르쉬비겔 감독은 이 실험을 독일로 가져왔고, 그의 <엑스페리먼트>는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것에서 벗어나 독일인 스스로 나치시대의 본성과 대면하는 실험으로 평가받았다. 순서상 2001년작의 리메이크인 2010년의 <엑스페리먼트>는 원작과 달리 사회적 함의를 욕심내지 않는다.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를 연출한 폴 셰어링 감독은 실험의 원래 목적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영화는 지구상의 모든 종들이 서로를 공격하는 자료영상의 몽타주로 시작한다. 이어 피실험자들의 참가 목적이 소개된다. 트래비스(에이드리언 브로디)는 연인과의 여행 경비를 구하기 위해 실험에 참여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배리스(포레스트 휘태커)는 어머니의 치료비와 집세를 구하려 한다. 역할이 나뉘고 배리스는 간수 역을 맡는다. 처음에는 죄수들을 심하게 대하는 다른 간수들을 만류하지만, 권력에 조금씩 취하게 된 그는 결국 종교와 가족에 억눌려 있던 본능을 드러낸다.

오로지 실험 자체에 주목하는 2010년판 <엑스페리먼트>는 2001년 독일 버전이 갖고 있던 설정을 상당 부분 덜어냈다. 피실험자들을 관찰하는 실험자의 시선과 실험 자체를 관찰하려는 캐릭터는 사라졌다. 폭력의 수위 또한 상당히 완화됐다. 대신 할리우드판 <엑스페리먼트>는 실험 종료 이후 피실험자들의 허무한 표정을 담고 있다. 뜻하지 않게 자신의 본성과 대면한 이들의 이후를 궁금해하는 이 부분은 어떤 소재든 게임화하는 할리우드 버전에 대한 선입견을 불식시키는 대목이다. 원작에 비해 충격적인 묘사나 박력은 떨어지지만, 소재를 다루는 태도는 진지하다. 평범한 소시민에서 권력의 맛에 ‘발기’하는 배리스로 분한 포레스트 휘태커의 연기가 무게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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