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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터지 마법의 강` 에 빠져볼까요?
2001-12-21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 이어 조만간 <반지의 제왕:반지원정대>가 상륙하면서 겨울 극장가를 팬터지 영화가 점령할 태세다.

왜 사람들은 팬터지를 보는 것일까. `팬터지 - 공상, 환상, 백일몽` 이라는 직역처럼 팬터지는 우리가 꿈꾸는 그 무엇이다. 그리고 우리가 팬터지에서 보고 싶은 것은, 우리의 마음 속에 내재된 그 무엇이다.

팬터지 장르의 효시는 54년 출간된 <반지의 제왕>. J.R.R. 톨킨이 쓴 <반지의 제왕>은 인간과 엘프, 드워프, 오르크, 호비트 등 다양한 종족이 함께 살아가는 `중간계`(Middle Earth)라는 가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선과 악의 싸움을 그리고 있다. 톨킨은 켈트와 북구 유럽의 신화, 중세 기사 전설 등에서 전해지던 요소들을 창조적으로 변용하여 팬터지라는 독특한 장르를 만들어냈다.

전통적인 팬터지는 마법사, 기사, 도둑 등 개성적인 능력을 가진 인물들이 팀을 이루어 모험을 떠나는 형식이다. 그 과정에서 각자의 능력을 높이고, 깨달음을 얻으며 종국에는 악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원한다. 팬터지는 가상세계에서 벌어지지만, 기본 원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선과 악이 대립하고, 개인들은 고통받는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단을 이루고, 투쟁을 한다. <반지의 제왕>이 `세계대전을 둘러싼 정치적 상황의 패러디'라든가,`기독교 신화의 재창조`란 평가를 받았던 것처럼 팬터지는 결코 헛된 공상이 아니다.

팬터지 안에는 사람들이 원하는 소망이 담겨 있다. 최근 <반지의 제왕> 개봉을 앞두고 미국에서는 `테러 사건 이후 어두워진 미국인의 마음을 달래는 영화'란 말이 나오고 있다. 엄혹한 투쟁의 과정에서 궁극적으로 선이 승리하는 이야기는, 바로 지금 미국인들이 필요로 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팬터지에서 `선의 승리'만을 바라보는 것은 허황된 시각이다. <반지의 제왕>에서 세계의 종말을 좌우할 절대반지는, 가장 약하고 능력이 없는 호비트 종족의 프로도란 청년에게 맡겨진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모험을 떠나면서 모든 것을 배운다. 우정과 사랑 같은 중요한 덕목부터 자신의 내부에서 용솟음치는 거친 욕망의 존재까지도. 스페이스 팬터지라고 부르는 <스타 워즈>의 주인공 아나킨과 루크 스카이워커는 작은 개인에서 출발하여 악이건, 선이건 우주 전체를 휘두르는 영웅으로 성장한다. 악과 선은, 언제나 우리 마음에 동거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런 공상적인 팬터지를 보면서, 현실의 자신을 되돌아본다. 잠시 현실을 잊으면서, 현실로 돌아올 무엇인가를 축적하고 있다. 팬터지 장르가 이식된 주요한 매체가 컴퓨터 게임이란 것은, 그런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드래곤 퀘스트> 같은 롤 플레잉 게임은 자신이 직접 하나의 역할을 맡아 모험을 떠나면서 능력을 높이고, 악을 무찌르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게임 속에서 게이머는, 하나의 역할에 자신을 동화시킨다. 그 캐릭터가 성장할 때 희열을 느낀다. 그 팬터지는 단순한 공상이 아니라, 현실의 깨달음과 즐거움까지 안겨주는 자신만의 새로운 경험이 되는 것이다.

물론 영화로 만들어진 팬터지는, 게이머가 개입하지 못한다. 영화가 팬터지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 무한한 상상력이다. 서구에서 고전으로 자리잡은 <반지의 제왕>을 50여년간 영화로 만들 수 없었던 이유는, 톨킨의 문학적인 상상력은 물론이고 글로 묘사된 풍경조차 표현할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100% 디지털로 만들어진 캐릭터가 가능하게 된 지금에야 <반지의 제왕>은 스크린에 옮겨질 수 있었다. 그것은 조지 루카스의 덕이다. 조지 루카스는 80년대에 <라비린스>와 <윌로우> 같은 팬터지를 제작했고, 팬터지를 표현하기 위한 특수효과를 끊임없이 발전시켜왔다. 특수효과는 인간의 상상력을, 팬터지를, 그대로 재현시켜준다. <해리 포터 와 마법사의 돌>와 <반지의 제왕>을 보면 그것을 실감할 수 있다. 책에서 읽었던 장면들이 육신을 얻어 움직이는 것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영화는, 인간의 상상력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이제 테크놀러지는 팬터지의 상상력을 따라잡고 있다. 남은 것은 팬터지의 이상과 내재된 영혼을 어떻게 담아내는가이다.

김봉석/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