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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페셔널] 뭐든지 만져보세요, 어떤 소리가 나는지
김성훈 사진 백종헌 2010-09-07

폴리 아티스트 심규종씨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중공군이 밀물처럼 내려올 때의 행군 소리, <집결호>에서 총 장전하는 소리, <아저씨>에서 원빈의 타격감을 강조하기 위해 나는 소리 등의 공통점은? 전부 폴리 아티스트 심규종(35)씨가 온몸을 이용해 만든 소리다. 그는 <실미도>를 시작으로 곧 개봉예정인 <시라노; 연애조작단>까지 총 80여편의 상업영화에서 폴리(Foley) 작업을 맡아온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남양주 종합촬영소에서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의 폴리 녹음을 앞둔 그를 잠깐 만났다.

-폴리 아티스트는 어떤 일을 하나. =후반작업으로서의 사운드 공정은 크게 대사 파트와 폴리 파트로 나뉜다. 대사 파트는 말 그대로 배우들의 대사를 후시녹음(ADR)하는 것이고, 폴리 파트는 대사 외의 현장음을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현장 사정으로 동시녹음이 놓치는 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에어컨에서 나오는 소리, 소파에 앉았을 때 움직이는 소리, 커피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을 때 나는 소리 등, 한 공간에서 있어야 할 모든 소리를 폴리에서 작업한다.

-어떻게 이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됐나. =2002년 월드컵 때였다. 대학 졸업한 뒤 아는 분의 소개로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폴리녹음실을 견학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직원들이 바닥에 맥주를 쫙 깔아놓고 큰 스크린으로 월드컵 경기를 보고 있었다. 그게 너무 좋더라. 혹하고 있던 중 한분이 “여기서 일 배워볼래?”라고 말씀하셔서 “네! 좋죠”라고 바로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영진위에서 처음 한 작업은 무슨 영화인가. =무보수로 심부름, 잡일 등을 하다가 생활이 어려워져 그만두려고 했다. 배우려고 했던 것은 영화인데 주로 했던 일은 녹음실 꾸미는 공사였다. 그때 옆 녹음실의 김석원 대표님을 만나 블루캡에서 작업하게 됐다. 사운드의 모든 것을 그에게서 배웠다. 첫 영화는 <실미도>인데 작은 소리 하나라도 전부 지시받아 녹음했다. 소리 하나 녹음한 뒤 대표님이 들어와서 “다음 소린 이렇게 내는 거야”라고 보여주면 그대로 따라하는 식이었다.

-초반에는 실수를 많이 했을 것 같다. =실수라기보다는 당시는 멋모르고 했기 때문에 힘든 줄 전혀 몰랐다. 흙바닥에 뒹굴어도 마냥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그냥 보면 아무것도 아닌 소리인데 영상과 붙여놓으니까 진짜처럼 들리는 게 너무 매력적이었다.

-경험도 중요하지만 평소에 청각을 항상 열어둬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생긴 습관이 있다. 지나가다가 새로운 사물을 발견하면 ‘만지지 마세요’라는 경고문이 있어도 쳐본다. 어떤 소리가 날지 궁금해서다. 당 장 활용할 수 없지만 기억해뒀다가 필요할 때 응용할 수 있다. 직업병이랄까.

-유독 만들기 어려웠던 소리가 있나. =전쟁영화가 어렵다. 소리 만드는 것보다 몸이 힘들다. <태극기 휘날리며> 때 중공군이 밀물처럼 내려오는 장면은 실제 군인처럼 무거운 배낭을 메고 몇번을 걸으면서 녹음했다. 전투모에서 나는 소리, 총 부딪히는 소리, 배낭 흔들리는 소리 전부 녹음해야 했다. 함께했던 스탭 모두 녹초가 된 적이 있다.

-이번 <시라노; 연애조작단>에선 어땠나. =로맨틱코미디라 재미있는 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 싸워도 막 싸우는 게 아니라 ‘뽕’ 같은 귀여운 효과음을 냄으로써 상황을 편안하게 만드는 식이었다.

-폴리 아티스트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폴리 전문학원이나 학교에 전공학과가 있는 게 아니라서 다른 파트에 비해 막연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럴 땐 얼굴에 철판 깔고 녹음실로 찾아가면 된다. 한때 폴리하는 사람 사이에서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폴리 아티스트는 신체조건이 175cm, 65kg 이하여야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바는 없다. (웃음)

-폴리 녹음이 훌륭한 작품을 꼽아달라. =<토이 스토리3>는 동시녹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모든 현장음이 실사영화처럼 들린다. <월·E>는 대사없이 로봇의 기계음만으로 정보를 전달하는데 마치 사실처럼 느껴진다. 이런 걸 보면 영화적 리얼리티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바라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영화인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몸이 힘든 건 괜찮은데 생각했던 소리가 안 나올 때는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다. 한 단계를 더 뛰어넘어야 하는데…. 그게 극복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