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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로서 쉽지 않은 장르인 시대극 <계몽영화>
이영진 2010-09-15

<계몽영화>의 씨앗은 박동훈 감독의 단편 <전쟁영화>(2005)였다. <전쟁영화>를 편집하면서 박동훈 감독은 1965년이라는 시간에만 카메라가 머무르는 것이 아쉬웠다. 한국전쟁 중에 간신히 살아남은 이야기를 데이트 화제로 삼던 두 남녀만으로는 ‘그땐 그랬지’류의 웃음 이상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모른다. <전쟁영화>의 마지막 장면. ‘시체 이야기’로 여자의 마음을 얻은 뒤 신나게 계란을 까먹던 남자는 사이렌 소리가 들리자 대청마루 아래로 숨어들어가 눈을 질끈 감고 진저리를 친다. 공습훈련에 극렬히 무조건반사하는 남자의 과거는 어떠했을까. 걸핏하면 공포를 집어먹는 남자의 무조건반사는 행복한 가정을 꾸린 뒤 없어졌을까. <전쟁영화>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박동훈 감독의 의문은 3년 뒤 제작에 착수한 장편 <계몽영화>로 이어진다.

먼저 1965년의 서울. 친일파였던 아버지 ‘빽’으로 잘나가는 나일론 회사에 다니는 정학송(정승길)은 참한 여교사인 박유정(김지인)과 네 번째 데이트 만에 티파니 반지를 선물하며 프러포즈한다. 건너뛰어 현재의 서울. 아들의 조기교육을 위해 미국에 머물던 태선(오유정)은 오빠 태한(배용근)에게 아버지 정학송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는다. ‘요시미츠 상’이라는 이름만 부르며 사경을 헤매는 아버지 곁에서 태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장례식 준비를 서두르는 것뿐이다. 거슬러 올라 1931년의 서울. 동양척식주식회사에서 일하는 정길만(이상현)은 우유부단한 성격의 소유자로, 조선인 소작농들에게 고리 받으러 갔다 혼쭐나는 일이 잦은 탓에 일본인 상관들의 눈총을 받는다. 아들 학송이 태어나자 마음이 더 바빠진 길만, 어느 날 독립운동을 하는 친구가 그를 찾아와 중요한 정보를 흘린다.

“정씨 집안 3대를 구성하는 인물들을 통해 그들이 그들의 시간을 어떤 태도로 대면하는지, 그리고 그 태도가 다음 세대로 전이되어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는지 목격하고 싶었다.” 박동훈 감독의 바람대로, <계몽영화>는 ‘어떻게든 살고 보는 게 중요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한 가족의 심상치 않은 역사를 추적하면서, 이들 가족의 죄의식과 폭력이 사라지지 않고 3대에 걸쳐 유전자처럼 대물림되는 상황들을 지켜본다. 목숨을 살려준 친구를 사지로 내몰고 더 많은 것을 얻었던 길만, 요시미츠라는 일본인 이름을 가진 아버지 덕에 부족함없이 모든 것을 누렸던 학송. 태선은 이들을 끔찍한 ‘아버지’라 저주하지만, 그렇게 해도 공범의 혐의를 벗을 수 없다. 자신이 유발한 남편의 예기치 못한 돌발행동에 태선은 오열하지만, 결코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혼란이 어서 수습되기만 바랄 뿐이다. 그들 부모처럼.

<계몽영화>는 생존을 최후의 변명으로 삼은 이들 가족의 생애를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단죄하자고 말하진 않는다. 외려 주목해야 할 점은 카메라가 자세히 보여주지 않는 부분들이다. 인정에 쉽사리 이끌리던 길만은 어째서 고약한 친일파가 됐을까. 예의바르고 다정다감하며 클래식을 즐기던 학송은 어째서 걸핏하면 손찌검을 하는 폭군으로 변했을까, 아버지를 벌레 보듯 했던 태선은 어째서 폭력이 난무했던 옛날 집을 그리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일까. 이러한 궁금증은 1931년과 1965년과 1983년이라는 시점을 택한 감독의 의도를 되묻고, 되짚게 만든다(꼼꼼한 시대 고증은 그저 볼거리를 위해서만은 아니다). 특히 태선이 원망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유년 시절의 태선과 마주하는 마지막 장면은 섬뜩하다.

거대한 역사는 언제나 든든한 알리바이를 갖고 있다. 독립영화로서 쉽지 않은 장르인 시대극을 택한 박동훈 감독의 용기는 기어코 살아남았으나 알리바이 없는 인간들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너 사진을 왜 이리 찍어. 왜 이렇게 구석에 서 있냐고. 야 임마, 가운데 서 있어야지, 가운데!” “주변부에서 너덜거리지 말고 중심에서 사고하라고! 중심!” 영화 속 아버지들의 계속되는 호통처럼, 주변부로 밀려나지 않기 위한 인간들의 안간힘은 지금도 현실에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계몽영화>는 결국 생존을 택한 인간들에 대한 안쓰러운 연민을 유지하지만, 연민이 언젠가 분명코 찾아올 우리의 불행을 치유해주진 못한다는 사실도 미리 일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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