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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아이 러브 유, 오! 땡큐
문석 2010-09-27

김동호 위원장이 부산영화제를 떠나신다는 소식은 꽤 오래전 들었다. 당시 그 이야기를 믿지 않았던 것은 김 위원장이 그동안 여러 번 위원장직에서 물러나려 하셨지만 주위의 끈질긴 만류로 결국엔 다시 자리에 앉으셨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렇게 되리라 믿었고, 꼭 그렇게 돼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은퇴하신다는 발표를 들으니 약간은 울컥했던 게 사실이다.

김동호 위원장의 퇴임에 부치는 국내외 영화인 15인의 추억담을 읽노라면 그를 설명하는 키워드가 첫째 술이요, 둘째가 열정이며, 셋째가 겸양의 덕이고, 넷째가 친화력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 또한 잊지 못할 기억이 있다. 그중 하나가 2003년 도빌영화제 때다. 당시 도빌영화제의 후원사인 에어 프랑스는 취재기자에게 비행기 표를 협찬해줬는데, 그 등급이 비즈니스 클래스(무려!)였다. 집행위원장이었던 알랭 파텔이 기자들도 게스트급으로 대우하는 엄청난 배려를 베푼 덕분이었다. 김동호 위원장을 만난 건 인천공항이었다. 비즈니스석의 탑승을 알리는 소리에 들뜬 마음으로 탑승구로 들어가려는데 김 위원장은 먼저 들어가라면서 계속 자리에 앉아 계셨다. 알고보니 김 위원장은 이코노미석을 끊으셨던 것. 그는 공금을 쓰는 출장에선 항상 이코노미석을 이용한다고 했다. 너무 면구스러워 자리를 바꿔 앉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지만, 그는 한사코 만류하며 비좁은 이코노미석에 앉았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비즈니스석을 고집했겠지만 그는 60대 후반(내 아버지와 동갑이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꼿꼿하게 이코노미석을 고수했다. 파리까지의 10여 시간 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물론 몸은 편했다- 가끔 몸은 마음과 머리를 배신한다). 비행기에 내린 뒤 그의 ‘가방모찌’를 자처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다소 한가한 영화제였기에 스스로를 ‘비서’로 임명하고 김 위원장을 모시고, 아니 따라다녔다. 참 많은 술을 마셨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며 많은 것을 느꼈다. 상투적인 이야기지만, 부산영화제가 성공한 핵심요인이 바로 김 위원장의 존재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김동호 위원장 없는 부산영화제’를 상상해본 적이 없기에 그의 퇴진이 아쉽게 느껴진다. 하지만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오래전 세워놓았던 퇴임 뒤 계획을 이제야 실현하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차라리 뜨거운 축하의 박수를, 그동안의 노고에 갈채를, 거대한 업적에 찬사를 보내는 게 도리가 아닌가 싶다. 황무지에서 시작해 지금의 부산영화제를 만들어낸 그이기에 앞으로 또 무엇을 이루어낼지 기대도 되는 마음이다.

위원장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P.S. 이번주부터 전 <씨네21> 기자 안현진의 ‘미드 앤 더 시티’가 시작된다. 격주로 연주될 이 칼럼은 미드와 그 배경 도시의 상관관계를 통해 미국사회를 엿보기 위한 것이다. 미드 전문가 안현진의 활약을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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