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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부산영화제가 다시 뜨는 이유
문석 2010-10-11

열다섯 번째 부산국제영화제의 막이 올랐다. 수영만 요트경기장 앞에 깔린 레드카펫 주변이 혼잡스러운 것으로 보나 “최근 3년간 찾은 개막식 중 줄이 가장 길다”는 김성훈 기자의 트위트로 보나 조용했던 해운대 바닷가가 시끌벅적해진 것으로 보나 올해 행사도 어느 해 못지않게 후끈한 열기 속에서 진행될 게 틀림없다. 영화제 데일리 제작 때문에 이 거대한 축제를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지만 그저 지금 이 공간에 함께한다는 점만으로도 뭔가 차오르는 느낌이다.

사실 부산영화제는 관객만의 축제가 아니다. 영화계 입장에서도 부산영화제는 일종의 잔치판 구실을 해왔다. 그 잔치란 대형 투자·배급사들이 주최하는 화려한 호텔 파티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수많은 감독을 비롯해 중소 제작사 임직원, 프리랜서 프로듀서, 독립영화 관계자들은 해마다 부산으로 찾아와 다채로운 술자리를 가졌다. 따지고 보면 그들 또한 축제의 분위기에 젖어 신나는 판을 벌이는 셈이지만, 영화인들은 기가 막힌 핑곗거리를 찾아내곤 했다. 이를테면 그해 최고 흥행작을 만든 제작사의 대표를 물주로 내세우거나 대작을 제작 중인 관계자를 주최자로 (몰아)세워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게 수많은 영화인들이 한데 어울리다 보니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가 생겨나기도 했고 네트워크도 만들어져왔다.

하지만 이런 전통은 수년 전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다. ‘충무로’라는 연대의식이 희미해진데다 극심한 돈가뭄으로 영화계의 분위기가 침체되면서 부산을 찾지 않는 영화인들이 점점 늘어났다. 그들의 입장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형편도 어려운데 부산까지 와서 시시덕거릴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분위기 탓이었는지 지난해 해운대 밤거리에서 만난 한국영화인은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가게마다 영화인들이 그득해 약속장소에 가려면 모든 자리에서 한잔씩은 걸쳐야 통과할 수 있었던 횟집 거리도, 어디를 가도 영화인들과 합석할 수밖에 없었던 그랜드호텔 뒷골목도 지난해에는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올해 부산영화제가 기대되는 또 다른 이유는 영화인들이 부산으로 모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제가 열리기 전부터 ‘부산에서 만나자’는 영화인들의 연락이 많았고, 영화인들의 트위터에도 ‘부산 회동’과 관련된 멘션들이 폭증하고 있다. 혹시 이것은 한국영화계가 오랜 터널에서 빠져나오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물론 그런 단순논리로 한국영화의 재기를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는 있다고 본다. 영화진흥위원회 같은 공적 기구가 사실상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영화인들이 함께 있다 보면 발전적 논의로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인들이여, 부디 부산에서 (술 많이) 먹고 (한국영화의 재기를) 기도하고 (서로를) 사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