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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부산… 여기가 바로 강호다
김혜리 2010-10-29

영화제의 짐

10월10일

<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과 <검우강호>를 보며 다시 피어난 오랜 의문의 불씨. 강호(江湖)란 대체 정확히 어디인가. 문단(文壇)이 무슨 주소라도 있는 데인 줄 알았다고 한숨 쉬던 P 소설가의 얼굴이 떠오를 뿐. 수천년 중국 역사를 판타지의 용광로에 펄펄 끓여 공간의 틀에 부어놓은 거라면 대충 비슷하려나. 역시 썩 성에 차진 않는다. 무협영화 속 고수호걸들이 칩거한 지역과 합종연횡 화살표를 표기한 강호 지도가 나온다면 감사히 장만할 텐데.

뭐 그런 잡념을 집적거리며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 나흘째를 맞은 일요일 오후의 해운대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눈뜸 들여놓은 오늘과 내일의 영화 티켓은 매진이고, 숙소는 한류 스타의 열렬한 팬을 포함한 아시아 관객으로 북적거리며, 행사장으로 향하는 바닷가 도로는 띠 모양 주차장 형국이다. 야심만만한 관객은 올해 칸과 베니스, 토론토의 ‘신상’(新商) 영화와 화제작을 한입에 삼켜버리리라 전의를 불태우고, 초대받은 영화인들은 귀가 걱정없이 밤새도록 친구들과 놀 수 있게 된 캠핑장의 10대들처럼 설렌다. 개막식 레드카펫을 위한 다이어트를 완수하고 500cc의 해방감을 들이켜는 배우들, 오늘 아침 개정 증보한 시네아스트 명단을 교환하는 충혈된 눈의 평론가들. 그러니까… 여기가 바로 강호다.

와이드 앵글 한국 단편영화 경쟁부문 감독 중 여덟분과 만났다. 모두 필모그래피의 첫장을 넘기지 않은 신예지만 영화를 통해 도달하려는 풍경은 각기 선명하다. 더러는 연작으로 한 주제를 완결하려는 의지를 세우기도 한다. 예컨대 <경적>에서 탈북문제를 그렸던 임경동 감독은 새 영화 <여행>에서 현대판 고려장을 다뤘다. 그를 이끄는 주제는 ‘표류’다. <경적>이 한국사회 바깥에서 흘러들어온 떠도는 자들의 이야기라면 <여행>은 가족조차 한 뿌리에 붙어 살아갈 수 없도록 빈곤층을 찢어놓는 사회경제적 압력을 암시하는 셈이다. 그의 차기작은 간첩 침투 사건으로 비상 소집돼 느닷없이 전쟁 상황에 던져지는 예비군 이야기라고 한다. “전작의 배경인 강, 바다에 이어 산에서 표류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셈이죠.” 감독의 요약이다. 한편 <수선火>의 박종철 감독은 소비자 불만에 꽂혔다. 청바지 밑단 수선에서 비롯된 한 남자와 세탁소 주인 세명의 처절한 승강이를 그린 재미난 중편 <수선火>는 두편의 후속작을 낳을 전망인데 주차를 둘러싼 교회 목사와의 끈질긴 시비극 <신성교회>, 그리고 미용실 주인과 고객의 분쟁을 그린 <호일파마 사건>이 가제다. 시리즈의 제목은 ‘火삼부작’. ‘상가수첩’이나‘반품의 제왕’은 어때요, 감독님?

10월11일

<버라이어티>에 실린 솔깃한 뉴스. 무성영화 배우 루이스 브룩스의 일기가 공개되었다. 1985년 타계한 브룩스는 사후 25년간 일기를 봉인하도록 지정했는데 드디어 만기일이 도래한 거다. 명예훼손이라 분개할 만한 인사들이 모두 타계할 때까지 기다렸나보다. 여배우의 30년치 일기에는 동료의 연기에 대한 신랄한 품평이 있어 화제다. 그레타 가르보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뻣뻣하다. 대사를 한줄 한줄 기계적으로 붙여나간다”라 했고 마를렌 디트리히한테는 “가짜 속눈썹 무게로 눈꺼풀이 처져서 어리벙벙해 보인다”고 썼단다. 사실 누가 뭐래도 연기는 속성상 가장 폐쇄적인 전문분야고 연기평론은 영화평론 중 오컬트 장르다. 체계화가 어렵다. 비유하자면 숲에 들어가 곰을 보고 나온 자는 배우들뿐이니, 평자들은 인상기에 약간의 유추를 더하는 게 고작이다. 종종 뜨끔하다. 배우들의 눈에는 기자가 쓰는 연기평이 얼마나 가소로울까. 입과 손은 얼마나 근질거릴까. 내부자의 통찰이 보고 싶다.

오늘 본 5편의 영화 가운데 불관용에 관한 두 작품이 인상적이다. 퀘벡영화 <그을린>(Incendies)은 레바논 내전을 모델로 극단적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가 주고받는 벤데타의 악순환이 만들어낸 비극이다. 이 영화를 본 관객에게 가장 많이 회자되는 부분은, 더이상 출생의 비밀은 없다 할 만큼 끔찍하게 엉킨 핏줄의 역사다. 그러나 숱한 고문과 살상의 광경보다 더욱 크게 마음의 북을 울리는 것은, 주인공이 학살현장에서 결국 기독교도임을 내세워 스스로를 구명하는 참담한 장면이다. 1996년 알제리에서 희생된 가톨릭 수도사들의 실화 <신과 인간>(Of Gods and Men)은 인간(들)의 형상 자체에 깃든 미학적 경건함을 깨우쳐준 영화로 기억할 것이다. 첫째, 단색 회벽을 배경으로 같은 색과 모양의 옷을 입고 생활하는 수도사들에게 카메라가 한명씩 다가갈 때, 우리는 다른 요소에 방해받지 않은 채 그들의 얼굴에 주의를 집중하고 노동과 수양으로 하루하루 다듬어진 늙은 남자의 얼굴이 주는 감흥에 사로잡힌다. 둘째, 수도사라는 인물의 특성상 직접적 대사 표현이 절제된 이 영화는 구도를 통해 발언한다. 십자가를 소실점으로 늘어선 수도사들의 숏은 스크린 가운데 한 줄기 ‘길’을 만들고, 습격을 앞두고 디귿 자로 앉은 최후의 만찬 장면은 조용히 밥을 먹는 행동만으로도 절박한 투쟁의 느낌을 준다. 자비에 보부아 감독은 일일이 언술하기 힘든 속성의 테마를 우리의 무의식에 친숙한 종교화의 다양한 고전적 구도를 빌려 전달한다.

10월12일

VOD 방식으로 운영되는 비디오룸은 갖은 방법으로도 표를 끊지 못한 기자에게 마지막 구원이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염소영화’로 통칭됐던 화제작 미켈란젤로 프라마티노의 <네 번>(La Quattro Volte)을 보았다. 분식집의 ‘물은 셀프’처럼 ‘이해는 셀프’라고 통보하는 듯한 이 과묵한 영화는 개봉 가능성이 희박한 만큼 영화제에서 어떻게든 보려 했다. 이탈리아 산골마을에서 사계가 바뀌는 동안, 우리는 먼지가 노인의 몸에 들어가고, 그가 죽은 다음 새끼염소가 태어나고, 길 잃은 어린 짐승이 쉬던 커다란 고목이 잘려 석탄이 되고 마침내 재가 되어 땅으로 돌아가는 생명의 환(環)을 지켜본다. 윤회의 관찰이라 해도 좋고 환생을 노래한 시라고 불러도 좋다. 그러고 보면 <엉클 분미>와 짝을 이루는 2010년의 영화다.

<네 번>에는 믿기 힘든 시퀀스가 있다. 마을길을 부감으로 내려다보며 대각선으로 움직이는 긴 숏이다. 예수 십자가 수난을 재현하는 가장행렬이 스크린을 대각선으로 지나가면 강아지 한 마리가 그 뒤를 따른다. 개는 이내 사람들에게 쫓겨 반대방향으로 길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한 소년에게 짖어대고 소동 속에 결국 서 있던 트럭을 굴러 내려가게 해 염소우리를 열어놓는다. 촬영부의 마크와 연출의 사인을 따른다 해도 이보다 정확할 순 없을 듯한 개의 동선을 보며 혹시 감독이 자크 타티의 환생인 개를 캐스팅해 영화의 주제를 궁극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잠깐 의심했다.

10월13일

간밤 광안리에서 열린 와이드 앵글 섹션 파티에서 “배우가 아니라 댄서로서 왔다”면서 춤을 추어 보인 줄리엣 비노쉬는 세계 각지에서 공연한 무용수이기도 하지만, 함께 일한 감독들의 초상화집을 낸 화가이기도 하다. 이번 영화제에 참석한 허우샤오시엔 감독과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어떻게 그렸는지 묻자 이렇게 답했다.

“내가 그림을 그렸다기보다 나를 통해 그림이 그려졌다고 말하는 쪽이 정확하다. 그러니까 완성을 목적으로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 나를 통과하면서 무엇인가 완성된다는 면에서 연기와도 비슷하다. 내게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특징적 이미지는 테두리가 없다는 점이다. 그의 영화는 카메라와 더불어 겪는 경험에 가깝다. 그래서 허우의 초상은 윤곽선의 안과 밖 사이에 멈춤의 순간이 없다. 동자승처럼 웃는 표정으로 그렸다. 그는 한신을 찍고 나면 그저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투로 아이처럼 미소짓기 때문이다. 키아로스타미의 초상은 함께 영화를 찍기 전에 그렸으니 만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궁금했던 내 마음과 기대의 산물이다. 당시 난 연기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감독들의 코멘트를 따고 있었는데, 칸영화제에서 만난 키아로스타미는 선글라스 벗기를 거부하더라. 난 그의 눈을 향해 카메라를 줌인했고 결국 안경알에 비친 내 모습이 함께 잡힌 웃긴 숏이 나왔다. 그래서 초상화는 그의 눈에 집중해 그렸다. 하지만 이제 영화를 같이 만들었으니 키아로스타미의 초상은 새로 그려야겠다.”

영화제의 끝은 각종 시상식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고백했다. 글쓰기의 나쁜 점은 남의 평가에 크게 의존하게 된다는 점이라고. 칭찬받지 않으면 아침에 일어나 글 쓰는 일이 힘들어진다고, 그건 영화도 마찬가지일 거다. 단, 작가는 30분의 의기소침 뒤에 다시 시도할 수 있지만 영화감독들은 다음 시도까지 가라앉지 않고 수면에 떠 있도록 자기를 지탱해야 하는 시간이 아주 아주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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