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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본격 판타지 서사극 <가디언의 전설>
김도훈 2010-10-27

축생들의 세계에도 모험과 신화는 있다. 영국 작가 리처드 애덤스가 1972년에 쓴 <워터쉽 다운의 토끼들>(Watership Down)을 한번 떠올려보시라.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진 <워터쉽 다운의 토끼들>은 토끼라는 연약한 포유류의 세계에 인간적인 모험을 결합한 고전이었다. EBS에서도 방영한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보고 ‘장성한 내가 지금 토끼 따위를 위해 울고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눈물을 줄줄 흘렸을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국내에도 출간된 <가디언의 전설>의 원작 역시 <워터쉽 다운의 토끼들>과 비슷한 종류의 소설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건 올빼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반지의 제왕>, 혹은 <해리 포터>식 본격 판타지 서사극에 가깝다는 거다.

올빼미들의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전설이 있다. ‘순수 혈통’을 내세워 올빼미 세계를 지배하려는 악한 무리와 올빼미들을 보호하는 가디언 올빼미들이 먼 옛날 거대한 전쟁을 벌였다는 전설이다. 이후 전쟁에서 승리한 가디언들은 ‘위대한 가훌의 나무’에 은둔한 채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주인공인 어린 올빼미 소렌(짐 스터지스)은 언젠가 자신도 위대한 가디언의 일족이 될 날을 꿈꾸며 형인 클러드(라이언 콴튼)와 비행 연습에 열중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나무에서 떨어진 두 형제는 순수 혈통들에게 납치당한다. 순수 혈통들은 어린 올빼미들을 납치해서 훈련시키며 다시 한번 세상을 정복하려는 계획을 진행중이다. 가까스로 탈출한 소렌은 마지막 희망인 가디언들을 찾아 가훌의 나무로 향하고, 경쟁심 강한 형 클러드는 동생 소렌을 물리치고 순수 혈통이 되려 한다.

원작은 단순한 동화가 아니다. 작가 캐스린 래스키는 J. R. R. 톨킨이 완벽한 가상의 신화를 완성했듯이 아더왕의 전설, 스파르타와 페르시아의 테르모필레 전투, 혹은 셰익스피어의 <헨리 5세> 등을 다양하게 차용해가며 올빼미 세계의 신화를 정립했다. 영화 <가디언의 전설>이 단순히 동물을 의인화한 디즈니 3D애니메이션의 또 다른 변용에 그치지 않는 것은 이처럼 단단하게 자기 완결성을 지닌 원작 덕분일 거다. 게다가 올빼미는 인간과 가장 닮은 얼굴을 한 조류다. 인간에 가까운 감정 표현이 영화적으로 가능하다는 소리다.

<300>과 <왓치맨>의 잭 스나이더 감독을 선택한 이유는 영화를 보면 분명해진다. 잭 스나이더는 가상 세트에 걸맞게 스타일화된 액션 연출에 재능이 있는 감독이다. 특히 그의 장기는 액션 시퀀스에서 과장된 슬로 모션을 미학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잭 스나이더는 <가디언의 전설>을 위해 ‘올빼미 스턴트팀’을 만들어서 전투장면을 연출했다. 이게 무슨 소린고 하니, 올빼미처럼 분장한 스턴트맨들의 액션을 모션 캡처 기술을 빌리지 않고 그대로 촬영한 다음 애니메이터들의 솜씨로 시각화했다는 이야기다. 실사 액션영화를 만들 듯이 접근한 덕에 몇몇 액션 시퀀스는 올빼미 버전의 <300>이라고 부를 법한 시각적 쾌감을 안겨주는 데 성공한다. 3D 안경을 쓰고 보는 올빼미들의 활강 시퀀스도 꽤 역동적이다.

그런데 잭 스나이더 감독이 좋은 이야기꾼이던가? 그는 긴 원작을 2시간 남짓한 장편영화로 요약하고 압축하고 변용하는 능력이 부족한 편이다. <가디언의 전설>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원작은 모두 15권으로 완결된 거대한 서사극이며, 영화 <가디언의 전설>은 그중 국내에도 출간된 첫 3권의 책을 토대로 한다. 제작진은 긴 원작을 단출한 96분 속에 우겨넣기 위해 잔가지들을 많이 쳐냈다. 다양한 올빼미의 종류와 습성에 대한 원작의 자세한 기술이 삭제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거다. 하지만 각 캐릭터의 성격은 좀더 시간을 들여 설명할 필요가 있었을 듯하다. 이를테면, 소렌의 형인 클러드가 왜 그토록 쉽게 혈육을 배신하고 올빼미 나치 유겐트의 길을 택했는지 영화는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올빼미 캐릭터와 목소리 출연자를 머릿속으로 매치해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소렌과 클러드는 각각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짐 스터지스와 TV시리즈 <트루 블러드>의 라이언 콴튼이 연기하고, 둘의 주위를 헬렌 미렌, 제프리 러시, 휴고 위빙, 애비 코니시, 샘 닐 같은 영국, 호주권 배우들의 목소리가 근엄하게 감싸고 날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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