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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의 행복한 동행
2001-03-08

심산의 충무로작가열전 ... 이영일(1931∼2001)

졸업을 코앞에 둔 대학 시절의 마지막 겨울은 암담했다. 친구들은 모두 군대나 감옥으로 떠나고 남겨진 우리에게 갈 곳이라고는 공장밖에 없었다. 아마도 번데기나 뻥튀기쯤을 안주로 삼아 소주병을 서넛 누이고 난 다음이었을 게다. 신촌의 대흥극장(현재의 영화나라)에서 거의 졸다시피하며 동시상영영화를 보고 있던 나는 어느 순간 잠기운이 확 달아나며 눈시울이 뜨거워져 오는 것을 느꼈다. 향심(이혜영)의 농익은 엉덩이 때문만은 아니다. 일제하의 이 땅에서 더는 살아갈 길이 없어 무작정 보따리를 싸서 이고 지고 북간도로 떠나가는 저 유민의 행렬들. 당시 우리의 겨울도 암담했지만 일제하 우리 선조들의 삶도 결코 그에 못지 않게 끔찍했다는 사실에 대한 새삼스러운 깨달음. 내가 거의 울 뻔했던 장면은 그 어리석은 춘호(하명중)가 그동안 업신여겼던 아내 순이(조용원)마저 죽고말자 흐득흐득 울면서도 그 잘난 솥단지를 지고 가려고 새끼줄을 동여매는 장면이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솥뚜껑에 새끼줄이 동여매어지는 장면은 고속촬영으로 처리하였는데, 그 장면 위로 얹혀지는 김영동의 탁한 목소리가 가슴을 쥐어뜯는다. 대사는 단 한 마디뿐이다. 살아야지, 살아야지, 살아야지.

나는 당시 <땡볕>이 내게 던진 그 불합리한 절대명령을 잊지 못한다. 그래, 불사르고 떠나갈 대륙은 없어도(김지하) 우리는 끝까지 살아남아야 돼. 80년대에 청춘을 보낸 사람이 아니라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엉뚱한 결론이 되겠지만 그래서 나는 처연한 심정으로 부평공단에 스며들었다. 그 이후로 오늘날까지 참으로 좆같은 세월을 살아가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나와 우리 세대의 공장행을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당시에는 제대로 읽지 못했던 <땡볕>의 영화미학적 성취가 오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눈에 보인다는 사실이 조금 아쉬울 뿐이다. 평론가들은 동의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 눈에 비친 <땡볕>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걸작이다. 캐릭터와 플롯 그리고 영화적인 표현에서 모두 당대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으면서 일제하의 사회상을 자연스럽게 드러내어 반제반봉건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은근하게 드러낸 솜씨는 분명 일품이다. 감독 하명중과 작가 이영일이 <땡볕> 이후로 별다른 작품활동을 전개하지 못했다는 것은 우리 영화사의 통탄할 만한 손실이라고 생각한다.

이영일은 평북 구성 출신이다. 천진에서 소학교를 마친 그는 해방 이후 월남하여 서울의 경복중학교와 청구대(현재의 영남대) 영문과에서 수학한다. 이영일의 시나리오 데뷔작은 김승호와 박노식이 등장하는 헝그리복서들의 이야기 <피묻은 대결>. 이후 그는 <땡볕>에 이르기까지 20편 남짓한 작품들을 남겼지만, 시나리오 못지 않게 주력했던 분야가 영화평론이다. 특히 1965년 영화평론가협회를 창립하고 이후 10년간 초대회장을 맡았으며, 같은 해 정론비평을 지향하는 영화잡지 <영화예술>을 창간한 이후 줄곧 재정난에 시달리면서도 1996년까지 무려 30여년 동안을 이끌어온 것은 영화사에 남을 만한 굵직한 업적이다. 그의 명저로 꼽히는 <한국영화전사>(1969)와 <한국영화인열전>(1982)은 본 연재물이 가장 많이 기대고 있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평론가 출신의 감독도 제법 있고 작가도 드물게 있지만 평론과 창작을 동시에 병행한 인물은 참으로 찾아보기 힘들다. 비록 반공영화이지만 빼어난 전쟁물로 평가받는 <지하실의 7인>이나 김동리·김동인·염재만의 원작을 솜씨좋게 각색한 <무녀도> <광화사> <반노> 등을 보면 그의 작가적 역량이 결코 평론분야의 업적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사재(私財)를 털어가며 <영화예술>을 간행해왔고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한국영화사 연구에 물꼬를 텄다. 한국영화사는 이영일이라는 개인에게 커다란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 충무로의 거목이 꼭 한달 전인 지난 1월18일 세상을 떠남으로써 그 빚을 탕감해야될 의무는 고스란히 우리 세대에게로 넘어와 버렸다. 괴롭고도 영광스러운 채무다. 별 수 없다. 갚아야지, 갚아야지, 갚아야지. 이 자리를 빌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심산|시나리오 작가 besmart@netsgo.com

시나리오 필모그래피

1960년 김묵의 <피묻은 대결>

62년 엄심호의 <노란샤쓰 입은 사나이>

이봉래의 <구름이 흩어질 때>

63년 이종기의 <율곡과 그 어머니>

67년 황용하의 <숙명>

69년 이성구의 <지하실의 7인>

71년 주동진의 <떡국>

72년 최하원의 <무녀도> ★

74년 김호선의 <환녀>

주동진의 <광화사>

75년 장일호의 <정형미인>

82년 이영실의 <반노>

84년 하명중의 <땡볕> ⓥ★

ⓥ는 비디오출시작

★는 자(타)선 대표작